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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이런 글을 읽어야 합니까

  얼마 전에 수전 셀러스의 소설 [그녀들의 방]을 읽었다. 자매였던 바넷사 벨과 버지니아 울프의 관계를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를 연상시키게 하는 시적인 문장들로 풀어낸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 말을 하기 때문에 내 트윗이나 블로그를 본 사람들은 질릴 만큼 잘 알겠지만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열광적인 팬이고 블룸스버리 그룹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다. 그래서 그들을 소재로 하는 좋은 작품이 새롭게 등장하면 자연히 신이 나고  여기저기 얘기하고 싶어진다. [그녀들의 방]에 대한 감상도 이렇게 긍정적으로 끝날 줄 알았다. 뒤에 붙은 글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애초에 우리 나라에서 출간되는 글들에 왜 이렇게 많은 '해설' 이나 '후기'가 붙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영어권에서 출간되는 작품들도 서문은 늘 꽤 긴 편이고 해설이 종종 붙지만 주로 작가 본인의 글이거나 가족의 글, 혹은 그 작가의 작품에 대해 오래 연구한 전문가의 해설일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은  꼭 그렇지는 않은데, 역자 후기가 긴 것도 특징이지만 일단 그건 그렇다고 치자. 어쨌든 책을 번역했으니 내용은 잘 알고 있을 테니. (아닌 경우도 많은 건 알지만 여기서 들어가긴 너무 긴 주제이므로 우선 넘어가자.)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역자도,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의 글이 사족으로 붙어있을 때로서, 특히나 엉뚱한 내용이면 대체 왜 이런 글을 싣는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그녀들의 방]도 이런 경우다. 이 작품의 뒤에 붙은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버지니아가 남성보다 여성을 더 편안해했던 레즈비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그녀들의 방>이란 제목으로부터 야릇한 상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만약 당신이 그랬다면, 상상은 이 소설이 레즈비어니즘을 전투적으로 옹호하는 작품일 것이라는 데까지 한달음에 달려갈 것이다. 나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게 버지니아 울프와 바넷사 벨의 관계를 다룬 소설 뒤에 붙을 말인가?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우선 버지니아 울프는 양성애자였다. 그는 예술가로서 여성만의 언어를 깊게 연구했고 여성의 권리를 옹호했으며 실제 여성들과 성적인 관계를 맺기도 했지만 남편인 레너드 울프와도 평생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보다 진짜 문제는 '야릇한 상상'이다.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작가가 레즈비언이면 레즈비언이지 독자가 왜 당연히 '야릇한 상상'을 할 거라고 예상하며, 이런 노골적인 대상화를 공식적으로 책 뒤에 붙여도 된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블룸즈버리 그룹의 남자들 역시 대부분 양성애자였는데 그들 중 한 명이었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이론이나 그를 다룬 글을 접할 때도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야릇한 상상'을 하리라 기대하시는지 정말로 궁금하다. 지금 앉아있는 책상으로부터 1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케인스의 두꺼운 전기가 꽂혀 있고 무려 허마이오니 리의 버지니아 울프 전기 옆에 꽂혀 있는데 나는 어떻게 이성을 유지한 채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상상력이 부족한 모양이지.


저 부분 뒤에도 이 '해설문'은 버지니아 울프의 평전 두 권에 기반하여 버지니아 울프의 의붓 오빠였던 조지의 성추행이 그녀의 정신병과 동성애 성향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연구자들이 본다고 적어두었다. 나는 이 부분을 보자마자 제목을 읽기 전에도 무슨 평전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예상은 맞았다. 이 해설문의 필자가 읽은 평전은 버지니아 울프와 한때 연인이었던 작가 비타 색슨의 아들 나이젤 니콜슨이 쓴 평전이었다. (참고했다는 다른 한 권은 나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이 평전은 버지니아 울프에 관련된 글을 쓴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살아 생전 실제로 그녀와 접촉한 적이 있다는 데서 권위를 끌어내고 있다. 문제는 이 평전이 버지니아 울프를 소재로 하는 글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 결코 아니며 두 번째로 뛰어나다고조차도 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저자인 수전 셀러스는 이미 자신의 소설이 4권의 뛰어난 전기에 바탕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 이 중 한 권이 바로 허마이오니 리의 울프 평전이다. 이 작품은 먼저 나온 퀜틴 벨과 나이젤 니콜슨의 평전 뿐만 아니라 버지니아 울프의 방대한 일기와 작품들, 그리고 블룸스버리 그룹 멤버들이 남긴 수많은 기록을 꼼꼼하게 분석하여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수많은 편견을 타파한 가장 뛰어난 평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해설문을 쓴 필자가 스스로 말했듯이 사실과 허구 사이의 간격을 밝혀주는 것이 본인의 의무라고 생각했더라면 저자가 인정한 소스인 허마이오니 리의 글을 읽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평전을 읽었더라면 버지니아 울프의 정신병과 '동성애 성향'이 성추행 때문이라는 말은 절대 못 했을 것이다. 허마이오니 리는 많은 챕터를 할애하여 수많은 증거들을 통해 버지니아 울프의 정신병이 유전과 트라우마의 결합이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왜냐면 어느 누구도 단언할 수는 없기 때문에) '동성애 성향'이 성추행 때문이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전자는 버지니아 울프에게 가해진 의붓 오빠의 성적 폭력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들이 '진짜 폭행'이었냐 아니면 '추행'이었냐 같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적이 뚜렷하게 느껴지고 (울프의 평전을 여러 권 읽어본 사람으로서 하는 말인데 이런 식으로 '진짜 강간이냐'를 둘러싸고 논쟁을 전개하면서 의붓 오빠인 조지의 명예가 여기 달려있으니 일방적으로 피해자인 버지니아 울프 얘기만 들어서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식으로 구는 사람들은 대체로 남자들이다.) 후자는 맞는 말이라서가 아니라 레즈비언에 대한 가장 오래된 편견이기에 권위 있는 전문 학자인 허마이오니 리로서는 응대할 가치를 못 느껴서였을 것이다. 다시 반복하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해설문에 싣는단 말인가? 처음엔 레즈비언이라는 말만 들어도 야릇한 상상에 빠진다더니 '전투적인 레즈비어니즘을 옹호'하는 건 대체 뭐고, 성추행의 기억 때문에 레즈비언이 되었다고 보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라니? 나이젤 니콜슨의 평전은 나도 읽어봤는데, 어째서 허마이오니 리의 작품이 아닌 이 사람의 평전을 택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평전은 그다지 공정하지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할 제대로 된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하는 흥미로운 일화 모음에 가깝다. 쉽게 읽히긴 한다. 일단 짧아서.


 나는 저자 수잔 셀러스가 소스로 명시한 안젤리카 가넷트 (바네사 벨의 딸)의 전기와 허마이오니 리의 평전을 이미 다 읽었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데 [그녀들의 방]은 수많은 부분을 이 전기들에서 빌려왔으며 특히 허마이오니 리는 공저자로 올라도 될 정도이다. 이 명민한 학자의 분석은 누가 봐도 이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들의 방]을 읽고 바넷사 벨과 버지니아 울프의 삶에 호기심이 생긴 분들은 뒤의 해설이나 해설을 쓴 필자가 읽었다는 평전보다는 곧장 허마이오니 리의 평전으로 달려가기를 추천드린다. 그리고 해설문을 쓰신 필자분과 이 글을 굳이 뒤에 삽입하기로 결정한 출판사 안나푸르나의 분들도 이 평전을 꼭 읽어보셨으면 한다. 이 해설문은 버지니아 울프 자체에 대해 틀린 정보가 많다기보다는 레즈비언에 대해 괴상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대상화를 하고 있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도 허마이오니 리라는 뛰어난 여성 학자이자 작가가 쓴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의 훌륭한 전기를 읽다 보면 저절로 깨닫게 되시라고 믿는다. 이 전기는 수많은 세월 동안 남자 작가들이 자신들의 견고한 편견과 대상화를 기반으로 만들어 낸  왜곡되고 일그러진 버지니아 울프의 상을 깨트리는 일종의 디벙킹과 전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 책 세상에서 내놓은 번역본이 있다. 링크도 걸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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