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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친절한 구석

 나는 톨킨의 단편 [니글의 이파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남에게 공개하기 좀 쑥스럽지 않나 싶을 정도로 직설적인 자기 투영이기도 하고 거대한 연대기를 이루는 다른 작품들과는 뚝 떨어져 고집스럽게 존재하는 작은 작품이지만 애정이 간다. 2007년 잡지 [판타스틱] 덕분에 만났을 때부터도 좋았고 그후로도 생각나면 종종 다시 찾아 읽는다. 이제 속속들이 아는 작품이니 찾아서 대자면 이유는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작은 이야기가 친절함을 묘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기 때문. 톨킨은 도입부에서 주인공 니글의 마음을 이렇게 묘사한다. 

니글은 화가였다. 하지만 성공한 화가는 아니였다. 얼마간은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 또 다른 방해 요인은 그의 마음에 다소 친절한 구석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친절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여러분도 알고 있으리라. 그런 마음으로 인해 실제로 그는 어떤 일을 하기보다는 그저 불편해 하는 경우가 더욱 많았고, 막상 어떤 일을 하더라도 투덜거리거나 화를 내고 (대개는 혼자서) 욕을 하곤 했다. 어쨌든 친절한 마음씨 때문에 이웃인 패리시 씨를 위해 여러가지 잡다한 일들을 해줘야 했다. 그 이웃이 한쪽 다리를 절기 때문이었다. 때로 멀리 사는 사람들이 찾아와 그에게 도움을 청하면 그들을 돕기도 했다. (...) 그는 마음 속에 자리한 친절을 없애버릴 수가 없었다. "마음이 좀더 강했으면 좋겠어." 이따금 혼잣말을 하곤 했따. 그 말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정말 무뚝뚝하게 멋진 묘사가 아닌가? 게다가 "그런 친절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여러분도 알고 있으리라."라니. 어떻게 알았지? 우리는 이런 순간들을 위해서 남이 쓴 글을 열심히 읽어대는 게 틀림없다. 아니 이건 바로 나잖아! 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을 위해. 처음 이 글을 읽은 순간부터 나는 알았다. '다소 친절한 구석이 있는 사람', '그 친절함 때문에 성가셔 하는 사람'이야말로 나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말이라고. 

 이 단편을 읽고 난 후에도 친절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수많은 글을 읽긴 했다.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너무 친절해서는 안 되고, 하지만 너무 무뚝뚝해서도 안 되며... 친절의 의무는 여성에게만 부여된 족쇄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를 구원할 작은 온기이기도 하고... 바운더리는 중요하지만... 낯선 이의 친절이야말로 문명의 증거이며... 등등. 하지만 아무리 많은 글을 읽어도 여전히 [니글의 이파리]만큼 즉각적으로, 거의 신체적인 현상에 가까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을 만나지는 못 했다. 여전히 나는 친절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마음 속에 '다소 친절한 부분'이 있는 사람에 가깝다. 성가셔 하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크기를 알 수 없는 이 친절한 부분이 시키는대로 하는게 맞다고 생각해 대체로 따르고 있지만 그래도 귀찮은 건 귀찮다. 투덜거리는 버릇도 못 버렸다. [니글의 이파리] 결말 부분에서 니글이 이른 경지까지는 가지 못 한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다고도 생각한다. [니글의 이파리]는 어쨌든 사후 세계 이야기니까. 톨킨이 자신을 모델로 한 니글이 하루 아침에 변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듯 나 역시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톨킨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하는 말인데 혹시 주변 사람에게 엄청나게 개자식이라서 하루라도 성격을 빨리 고쳐야 하는 사람이었던 건 아니길 바란다.) 물론 세월을 거저 먹은 건 아니라서 2007년의 나는 잘 몰랐지만 2018년의 나는 확실히 안다. [니글의 이파리]에서 결국 니글의 친절함이 구원한 사람이 이웃인 패리시가 아니라 니글 본인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내 마음 속의 '이 다소 친절한 구석'도 결국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돕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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