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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사람들

대학생일때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렸다. 나처럼 음악을 잘 안 듣는 사람이 내내 음악만 듣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고, 책을 들고 읽자니 멀미가 나서 결국 택한 것이 오디오북이었다. 그게 1946년이었으니까 그 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내가 들은 목록도 많이 쌓여서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처음에는 나도 그저 좋아하는 책을 좋아하는 영미권 배우들 목소리로 읽어주는 걸 듣고 싶어서 시작한 취미였는데 영어를 익히는데 확실히 도움도 되긴 했다. 하지만 진지하게 공부라고 생각했으면 역시 짜증나서 금방 그만뒀겠지. 그러니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이번 추천 목록에는 드라마부터 사운드트랙까지 뒤죽박죽이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세워놓은 나름의 원칙이 있는데 그것부터 간단하게 적고 간다. 오디오북을 처음 들어보려는 분들은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다.


1. 등장 인물이 너무 많은 작품은 좋지 않다. 라디오 드라마는 배우나 성우가 모두 다르므로 괜찮지만 오디오북인 경우 한 사람이 다 읽기 때문에 텍스트가 없이 귀로 들어야 하는 청자 입장에서는 대화가 많으면 혼란스럽고 동시에 빠르게 지루해진다. 내향적인 텍스트일수록 오디오북에는 적합하다.


2.  고전이 다 좋은 것이 아니다. 특히 영국 배우들은 고전을 많이 읽어주는데, 남의 나라 말임을 염두에 두고 내가 글로 읽었을때 이해하기 너무 힘든 어려운 글이면 피한다. 흔히 외국어로 된 책을 읽을 때 한 페이지에 3-5개 이상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읽지 말라고 하는데(이건 정말 맞는 말이다) 귀로 들을 때도 마찬가지.


3. 글이 없어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오디오북은 들으면서 글을 따라 읽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무리 외국어라도 사람의 눈이 훨씬 빠르므로 그렇게 들으면 지겨워서 금방 내던지게 된다. 그렇기에 역시 2번과 연결된다. 너무 어려운 작품을 고르면 하나도 안 들리고, 글과 같이 보면서 듣지 뭐, 하고 사면 절대 안 듣는다. 운전하거나 걸어다닐 때, 혹은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 때 듣는다고 생각해보고 골라야 한다.


4. 좋아하는 작품을 좋아하는 배우가 읽으면 좋겠지만 아닐 경우 신중하게 생각한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장르인데 좋아하는 배우가 읽었다고 사두면 결국 안 듣게 된다. 특히 평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취향이 확고할 터인데 좋아하는 배우 목소리만으로는 아무래도 극복이 잘 안 된다. 최대한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찾아 보고, 없으면 잘 모르는 전문 성우가 읽은 좋아하는 작품이 좋아하는 배우가 읽은 싫어하는 작품보다 낫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나도 깨달은 사실.기본적으로 전문 성우들은 청자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쯤하고 그럼 추천 시작해야지. 여기 추천한 작품들은 전부 내가 직접 들어봤고, 계속 업데이트 될 예정이다. 나도 처음 오디오북을 들을때 여기저기 검색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내 추천 목록을 보고 원하는 걸 찾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면 기쁘겠다. 최대한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것만 모았으니 누구나 구해볼 수 있다.


로버트 션 레너드


[죽은 시인의 사회]와 [하우스]로 잘 알려진 로버트 션 레너드는 오디오북 명예의 전당이라는 것이 있다면 올라가 있어야 할 배우다. 연극 무대에서 오래 활동한 그는 훌륭한 발성과 목소리,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 실제로 오디오북 관련 상도 많이 받았다. 다만 그가 했던 작품 중 가장 훌륭한 것들은 90년대에 만들어져 이제는 구할 수가 없다. 피츠제럴드의 작품에 정말 어울리는 사람인데 그마저 카세트 테이프로만 남아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 웹에서 파일을 구해 들어봤던 RSL의 작품 중 최고는 제인 해밀턴의 [Short History of the Prince]라는 작품으로, 월터라는 주인공이 본인의 성 정체성과 가족의 죽음이라는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자라나는 내용이었다. 월터는 발레리노를 꿈꿨던 소년인데, 뻔하다면 뻔하지만 솔직하고 매우 섬세한 성장물이라서 귀를 쫑긋하고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 역시나 9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20대였던 RSL은 주인공 월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발성도 너무나 멋지고 또렷했다. 이제는 구할 수 없게 된 작품을 이렇게 길게 칭찬하자니 또 절판왕이 된 기분이지만 혹시 구할 수 있는 분은 꼭 들어보셨으면. 나도 다시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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