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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천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천천히

 [케이트 앤 레오폴드] 풍으로, 그러나 이번에는 거꾸로, 존 조의 얼굴을 한 미래인 히카루 술루씨가 내 앞에 나타났다고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스타플릿의 자원으로서 유능한 미래인인 그는 자신이 직접 미래로 돌아갈테니/혹은 엔터프라이즈에게 연락을 취할 테니/혹은 그냥 구출 될 때까지 심심한 김에 과거의 생활상이나 연구하게 집안의 간단한 가전 기기의 원리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할 것 같았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 번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단 나는 아무리 존 조의 얼굴을 가졌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을 집 안에 들이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두 번째는 어떻게 경계심을 극복했다고 해도 우리 사이는 휴 그랜트와 맥 라이언처럼 발전하는 대신 어색한 침묵만이 흐를 것 같았다. ([비기닝]쯤의 술루라서 아직 남편인 벤을 만나기 전이라고 대충 가정해보자. 어차피 더 슬픈 얘기는 뒤에 나온다.) 나는 전기에 대해서 좋은 감정과 매우 혼란스러운 지식을 갖고 있었고, 인터넷에 대해서는 지극히 사적인 애증을 품고 있었을 뿐이며, 와이파이의 원리는 배우이자 과학자였던 뛰어난 여성이 발견했다는 정도의 상식밖에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후나 날씨는? 운에 맡긴다. 화학은? 복숭아와 돼지고기를 같이 먹으면 탈이 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도 쳐주나? 아니 감이었나? 어쨌든 둘 다 술루에게 대접하진 않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혹시 모르니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 마음씨에는 대체로 문제가 없었다. 부족한 건 지식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3세기의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 눈에 나는 번개가 치면 토르나 제우스의 분노를 겁내는옛 사람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번개에는 관심이 없어졌지만 인터넷이 끊기면 어떤 영적 존재를 막연하게 설득하려 든다는 것 정도겠지. E.T.를 보면 외계인 본인이 워낙 똑똑하니 어린이의 도움 정도로도 어떻게든 알아서 했던 것 같지만 나는 히카루 술루를 자전거 바구니에 담아 숲으로 데려가는 정도에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필연적으로 이별을 하더라도 그 주의 게스트가 죽지 않는 닥터후 에피소드처럼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 21세기의 인간으로서 나는 수많은 훌륭한 책들에 접근이 가능했기에 학창시절 멀리했던 과학과 가까워지기 위해 트위터로 동시대인들에게 과학책 추천을 부탁했다. 그리고 실제로는 백권쯤, 느낌상으로는 수천권쯤 소개를 받았다. 그게 벌써 2년 전의 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글은 그때 추천받은 과학책들을 읽고 리뷰하는 자리는 아니다. 추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건 열심히 읽었지만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과학책은 따로 있었고 이번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소개 할 차례. 다른 책들은 또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 나는 이 책을 만난 이후 열심히 공부중이고 92세쯤 과학 천재가 될 예정이다. 히카루 술루가 그때 날 만나러 와준다면 도와줄 자신 있다. 

지금은 홈페지이가 바뀌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카툰 네트워크 공식샵에 들어가보면 [어드벤쳐 타임] 주인공들의 얼굴이 새겨진 양말을 20대가 신어도 되냐는 질문이 올라와있곤 했다. 나 역시 사서 신으려고 들어갔기 때문에 '어탐'의 대상은 주로 6-7세며, 그렇기에 양말도 아동용이라는 답변을 보고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안 맞는 양말을 사서 신을 수 없어도 배움에는 나이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 소개하려는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쳐 타임] - 영웅을 위한 초간단 과학 상식 시리즈는 7세 이하와 20대 이상이 함께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독자가 막 세상의 신비에 눈을 떠 가고 있는 똑똑한 6세건 출근해서 매일 보면서도 팩스의 원리는 일종의 마법이라고 생각하는 성인이건 상관 없는 것이다. 2016년 12월에 첫 선을 보인 후 부지런하게 달려와 벌써 6권이 출간되어 있는 '어탐 과학책'의 구성부터 알아보자. 이미지 출처는 모두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다.

우선 1편의 구성만 가져와봤는데 나머지 권도 비슷하다. 아무리 그래도 아동용 과학책을 성인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위 목차 속 26가지의 질문에 몇 개나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지 세어 보길 권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13개 쯤에는 신화적이고 미신적인 설명을 내놓을 수 있었고 5개는 전혀 답할 수 없었으며 8개 정도만 어렴풋하게 맞는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똑똑한 7세가 나를 가르치다 피곤해져서 다음 날 유치원을 못 갈 수준이 아닌가 싶었지만 좌절하는 대신 나는 이 시리즈를 모조리 사보는 것으로 긍정적 방향 전환을 택했다. 지금은 퇴근 후 너무 졸리지만 않으면 저 중 약 17개의 질문에는 빠르고 정확하게 답할 수 있다! 이 정도 속도라면 92세 과학 천재의 꿈은 틀림없이 이룰 수 있다. 지금 막 용기를 얻은 분들께, 아동용 작품 테마에 맞춰 [나니아 연대기] 식으로 말해보자면 내가 할 수 있다면, 여러분도 할 수 있다.

어탐 과학책의 또 다른 장점은 카툰 네트워크에서 내놓은 원작의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따르는 이야기 구성이다. 예전에 트위터에서 이 책을 만드시는데 참여한 분이 스토리를 바꿔 보려고 했으나 카툰 네트워크 측에서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을 언뜻 해 주신 적이 있는데,  금방 지우셔서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건 간에 결과는 훌륭하다. [어드벤쳐 타임] 원작이 얼마나 흥미롭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들로 가득한지는 본 적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 텐데 매 에피소드에 맞는 과학 상식들이 이런 이야기들 속에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다. 아이스 킹이 주인공인 에피라면 '서리는 왜 내릴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식. 버블검 프린세스가 원작에서부터 모럴은 매우 의심스럽지만 무시무시하게 뛰어난 과학자인 것도 과학책에 매우 적절하게 어울리는 설정이다. 팬이 아니라고 해도 어탐 특유의 밝고 귀여운 화풍을 그대로 재현한 그림들은 지루할 틈이 없게 해준다. 교과서도 만드는 출판사답게 미래엔은 어탐의 매 에피소드를 적절하게 요약, 활용한 훌륭한 구성을 보여준다.   

사기 전에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들은 알라딘을 비롯한 인터넷 서점에 가면 1권의 꽤 많은 페이지를 미리 보기 할 수 있다. 직접 실물을 보고 싶다면 동네 서점의 어린이 대상 책들을 모아둔 코너로 가면 된다. 내 경험상 마법 천자문과 인기 많은 동화책 사이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형 서점들에도 당연히 들어와 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미래엔과 카툰 네트워크는 물론이고, 어떤 동네 서점과 대형 서점도 나에게 이 책을 홍보하라고 돈을 주지는 않았다. 이 글은 이상적으로 교육받은 성인이 갖춰야 할 기준의 약 50% 정도에 해당하는 과학 상식과 인류의 발전을 기원하는 100%의 진실한 마음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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