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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여, 나는 차였다

 1844년 1월 브뤼셀의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샬롯 브론테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먼저 집으로 돌아와 고향에서의 조용한 삶으로 곧장 돌아갔던 동생 에밀리와는 달리 그는 행복과 불행을 모두 맛 본 브뤼셀에서의 삶을 끝없이 곱씹으며 추억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 삶의 중심에는 콘스탄틴 헤그너가 있었다.

 에밀리의 논리성과 간결한 문체를 더욱 높게 평가했으나 샬롯과 더 친밀한 사이가 된 콘스탄틴 헤그너는 브론테 자매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다. 부인과 함께 브뤼셀 시내에서 평판이 좋은 기숙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던 그는 열정적인 교사로 20대의 나이에 어린 외국인 소녀들 사이로 떨어진 외톨이 영국인 자매의 교육에 많은 힘을 쏟았다. 원체 영민했던 그들은 가르칠 보람이 있는 학생들이었을 것이다. 두 자매는 헤그너의 지휘 아래 작문을 연습했고 부족했던 프랑스어를 빠르게 습득했으며, 음악과 독일어, 수학까지 포함한 폭 넓은 교육을 받았다. 어느 정도의 교육은 받아들였으나 대체로는 외부의 영향에 고집스럽게 맞서며 자신의 세계를 끝내 지켰던 에밀리와는 달리 그의 열정에 큰 감화를 받은 샬롯은 이 시기에 자신의 작문 스타일을 재정립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학생의 커져가는 열정은 분명했으나 교사 쪽에서도 우정 이상의 마음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천재성의 문제를 두고 함께 토론했고(샬롯은 자신이 따로 훈련이 필요없는 타고난 천재 중 한 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는 종교관의 차이이기도 했다.) 때로 싸웠으며, 많은 글을 주고 받았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그 이상 발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샬롯은 친구와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브뤼셀에서의 삶이 힘들어진 이유로 헤그너 부인의 태도를 들며 비난하지만 두 사람의 갈등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과 질투, 종교관의 차이 등 복잡한 원인들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독실한 칼뱅파 목사의 딸답게 샬롯 브론테는 가톨릭 신도들의 삶의 방식이나 종교관에 심한 반감을 품고 있었고 이는 작은 기숙학교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다른 교사들과의 사교를 방해하는 큰 요소 중 하나였다. 헤그너 부인이 실제로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든지 , 실제로 서로 질투를 했든지 아닌지 간에 샬롯 브론테 역시 대하기 쉬운 인물은 아니었던 게 틀림없다. 

 샬롯 브론테가 세상을 뜬 후, 친구의 삶을 전기로 써내기로 결심하고 작업에 착수한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에게 콘스탄틴 헤그너는 자신의 쪽에서는 전혀 거리낄 것이 없음을 분명하게 한다. 자칫하면 스캔들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었던만큼 그로서는 필요한 조치였다. 확실히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그가 걱정할 일은 없어 보인다. 영국으로 돌아간 후 샬롯 브론테가 헤그너에게 보낸 편지들은 답장을 받지 못한 슬픔으로 가득하다. 브론테 연구자들조차 헤그너가 분명히 느꼈을 난처함에 다소 동정을 표할 만큼 강렬한 어조로 쓰여진 이 편지들은 브론테 자매가 자신들만의 상상 속에서 살았던 비현실적인 존재들이었으며, 실제 세상에서의 인간적 감정은 전혀 몰랐다는 이미지를 반박하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외국에서 훌륭한 고급 교육까지 받고 돌아왔지만 앞날은 요원했던 영민하고 열정 넘치는 여성이 갈 곳 없는 열정을 쏟아 낸 이 편지들은 물론 읽고 있으면 가슴 아프다. 학교 설립 계획은 허사로 돌아갔고 [제인 에어]도 세상에 나오려면 아직 2년이나 남았으니 본인은 얼마나 답답했을 것인가. 하지만 결말을 아는 우리들은 그렇게 안타까워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쓰라린 경험에서 기이하고도 멋진 [빌레트]와 [교수]가 탄생할 것을 알기에. 이 두 권의 소설에서 변덕스럽지만 매력적인 교수들에게서 콘스탄틴 헤그너의 모습을 읽어내는 것은 너무나 쉽다. 브뤼셀에서의 다양한 경험 역시 거의 변형되지 않은 채 그대로 등장한다. 1845년 더 넓은 세계와 열정으로 통하는 유일한 출구가 냉정하게 닫혀버렸다고 느꼈던 샬롯 브론테는 믿지 못했겠지만, 이 쓰라린 고통 속에서 새로운 싹은 이미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원본은 엘레너 배스가 편집한 편지 모음집 [Yours Always : Letters of Longing]에서 가져왔고 번역은 내가 했다. 영어로 옮겨져 있지만 샬롯 브론테는 네 통의 편지를 모두 프랑스어로 썼다. 앞의 편지들에는 프랑스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편지를 쓴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지금 옮기는 마지막 편지에서는 그런 가면마저도 벗어던진 채 헤그너에 대한 갈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외국어로 썼기에 가능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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