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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증언(2-1)

1914-1915


1914년 7월, 베라 브리튼과 그녀의 아버지는 또 한 번 격렬하게 부딪힌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이자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중류층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베라의 아버지는 전쟁이 코앞에 들이닥친 상황에서 옥스퍼드 최종 합격 소식을 자랑스럽게 들고 온 딸을 이해하지 못했다. 1년간 홀로 고군분투했던 베라 역시 남동생의 교육에는 전적으로 후원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서도 딸인 자신에게는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분노를 터뜨리는 아버지의 태도에 상처를 받는다. 부녀의 격렬한 언쟁은 남동생인 에드워드가 베라가 가지 못한다면 자신도 옥스퍼드에 가지 않겠다고 차분하게 선언하고 나서야 겨우 마무리 된다. 21살의 여름에 일어난 이 다툼을 기억하며 36살의 베라는 쓴다. "1차 대전은 처음에는 나에게 전세계적 대참사라기보다는 짜증스럽게 내 앞을 가로막는 개인적 장애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땠을까? 오랜 시간 동안 베라 브리튼을 밀접하게 연구하였으며 평전을 집필하기도 한 영국의 작가 마크 보스트리지는 당시의 일기와 편지를 바탕으로 베라 브리튼은 이미 유럽 각국의 불안한 정세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심한 반대에 맞서 입대를 하려고 애를 썼던 에드워드에게도 큰 힘을 실어주었음을 지적해낸다. <청춘의 증언> 속 1914년의 베라는 에드워드와 아버지의 갈등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역에 그치고 있지만 실제의 베라 브리튼은 염려하는 부모님에게 당시 입대를 거부했던 남성들에게 찍혔던 불명예스러운 낙인에 대해 경고하여 결국 마음을 돌려놓았으니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또한 베라는 일기에서 자신에게 청혼을 했던 벅스턴의 부유한 집 아들이 자신이 물려받아야 할 사업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입대를 고민하자 그를 "겁쟁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청춘의 증언> 속 베라 브리튼은 실제의 베라 브리튼에서 선별되고 걸러내어진 버젼인 것이다. 그렇다면 1914년의 베라 브리튼은 전쟁을 반대하고 폭력에 반대하면서도 왜 사랑하는 남동생이 제한 연령이 되기도 전에 입대하는 것을 강력하게 지지했으며, 1933년의 베라 브리튼은 왜 이 사실을 독자들에게 말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일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다층적일 수 밖에 없다. 우선 1914년 1차 대전 발발 당시 각각 18살과 20살이었던 브리튼 남매의 태도는 영국 내에서 'lost generation'으로 이름 붙여진 집단의 사고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이 계급상으로는 중상류층으로 1차 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10대 후반에서 20대, 즉 예비학교에서 옥스브리지로 진학할 예정이었거나, 이미 재학중이었던 학생들이었고 예비 군사 훈련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바로 임관이 가능했는데, 맹목적이고 호전적인 애국주의적 교육을 받은 탓에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자원 입대율이 높았기에 필연적으로 사망률도 높을 수 밖에 없었다. 베라는 1914년 7월 남동생 에드워드와 롤랜드, 빅터가 함께 다녔던 어핑햄 예비학교의 졸업 축하 연설에서 교장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나라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자는 죽는 것이 낫다." 어핑햄 예비학교는 졸업생 중 무려 20%가 1차 대전에서 사망했는데 다른 예비 학교들의 상황 역시 비슷했고 이렇게 특정 집단에 몰려있는 사망률은 'lost generation', 즉 한 세대의 남자들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듯한 인상을 영국인들에게 남겨 주었다. (참고로 이것은 통계적으로 따져보았을때 결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일종의 신화인 셈이다.) 그러므로 겨우 18살이었던 에드워드와 빅터 그리고 롤랜드가 학교를 다닐때는 운동이라면 질색하고 음악과 문학에 뜻이 있었던 소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발발하자 국가의 부름에 열정적으로 답했던 것은 전혀 특이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서 베라의 글이 의의를 가지는 것은 lost generation이 전장에 나가 싸운 소년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1차 대전에서 사망한 소년들의 여자 형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1명의 소년에게 단 한 명의 여자 형제가 있었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그 수는 결코 적지 않다. 반쯤은 들떠서 반쯤은 우쭐대면서 영국이 유럽을 구해야 한다는 명분을 가슴에 새긴 채 전쟁터로 달려나가는 남자 형제들을 보면서 당시의 젊은 여자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여자 형제들이 집에 앉아서 마음을 졸이며 형제들과 애인의 안전을 빌며 기도를 하거나 뜨개질만 하고 있었다는 '이미지'는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너무나 많은 부분을 가리고 있기에 완전한 진실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전쟁 초기에 영국을 휩쓸었던 집단적 흥분은 남성들에게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베라처럼 남자 형제들에게만 주어졌던 교육과 사회 진출의 기회가 여성에게도 주어져야 하며, 여성이 남성보다 선천적으로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1세대 페미니즘의 주장을 접하며 자란 젊은 여성들 역시 공포감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여러 면에서 20세기 최초의 대규모 전쟁이라는 상황에 애국주의적 흥분을 느꼈지만, 동시에 전쟁으로 인해 여성의 역할이 더욱 제한되고 주변부로 밀려날 것이라는 예감에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이런 복합적인 감정은 당시의 여성들로부터 언뜻 보면 서로 상반되는 반응을 끌어낸다. 대표적으로는 많은 서프라제트(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관련되어 있었던 흰 깃털 운동과 V.A.D. 활동이 있다. 흰 깃털 운동은 1차 대전때  군에 입대하지 않은 남자들에게 겁쟁이를 상징하는 흰 깃털을 건네주는, 당시에도 악명 높았던 일종의 캠페인으로 서프라제트들을 비난하는 좋은 구실이 되어주기도 했다. 구할 수 있는 신문을 모조리 읽으며 국내외 정세를 살폈고 늘 기민했던 20살의 베라가 에드워드의 군 입대를 지지한 이유도 아마도 이 흰 깃털 운동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 캠페인은 후에 버지니아 울프의 유명한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반박하는 논지로 사용되기도 한다. "여성에게 조국은 없다" 라는 말은 여러 의미에서 버지니아 울프 자신이 속해 있었던 참전을 거부했던 예술가 그룹에게만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전쟁에 대한 여성의 반응이 오로지 공포감뿐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당시에도, 지금에도 옳지 않다. 1차 대전은 젊은이들에게 재앙이었지만 동시에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여성들에게는 이런 의미에서 V.A.D. 활동이 있었다.

1914년 롤랜드가 제일 먼저 전선으로 배치되고 나자 베라는 짧았지만 즐거웠던 옥스퍼드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자원 간호사로서의 힘든 생활에 몸을 던지는데, 베라는 <청춘의 증언>에서 이러한 결정의 원인을 전쟁에 나간 연인 롤랜드에 대한 사랑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본인도 덧붙이듯이 사건의 중심에 있고 싶은 마음,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가치 있고 쓸모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 역시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V.A.D.는 말 그대로 자원 봉사의 개념으로 시작되었기에 업무 환경도 열악했고 무엇보다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만큼의 급료가 주어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곧  자원한 많은 젊은 여성들이 가족의 원조를 기대할 수 있는 계층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여성이 입대해서 싸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기에 V.A.D는 여성들에게 있어 가장 자원 입대와 가까운 행위인 셈으로, 베라와 롤랜드가 서로를 영혼의 짝으로 인식한 것은 결코 무리한 생각이 아니었다. 둘은 각각 lost generation의 양면이었다. 베라와 롤랜드, 빅터와 에드워드 그리고 후에 베라의 삶에 소중한 인물이 되는 에드워드의 군 동료였던 조지 (그는 전쟁과 폭력을 몹시 꺼려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1차 대전에서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아름다운 젊은이의 상징이 된 루퍼트 브룩의 시에 열광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눈에 당시 전쟁의 반대편에는 불명예스러운 사회적 죽음 혹은 끝없는 변방으로의 퇴출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루퍼트 브룩은 1차 대전에서 총 한 번 쏘아본 적이 없는 채로 전장으로 떠나는 배 안에서 병으로 죽었다. 그는 전쟁이 실제로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내는 것은 그의 시를 가슴에 품은 채 각각 참호로, 병원으로 떠났던 젊은이들의 몫이었다.

 이런 부분을 빼놓았다고 해서 베라 브리튼을 정직하지 못한 작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사실 베라가 이 책을 출간한 33년은 1차 대전 "붐"이 일어났던 시기로 좀 더 애국주의적 관점을 드러냈더라면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손해를 볼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베라는 꾸준한 정치적 활동을 통해 이미 2차 대전을 예감하고 있었기에 또 다른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참상을 드러내는 글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회고록이라는 글의 특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회고록과 자서전은 픽션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던 일을 일어난 그대로 기록하는 것도 아니다. 회고록을 쓴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을 하나의 흐름이 있는 이야기로 구성해내는 작업이며, 그렇기에 어떤 일들은 강조되지만 어떤 일들은 숨겨지고 과거의 자신이 갖고 있던 여러가지 면들 중에서도 그 흐름에 맞는 것들만이 살아남게 된다. (물론 이것은 매우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서사를 갖고 있는 회고록에 국한되지만, <청춘의 증언>은 형식 면에서 새로움을 꾀하고 있지는 않으므로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실수는 과거의 나를 실제보다 더욱 현명하게 그려내는 경향이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이 경우는 실수라기보다는 다분히 의도적인 기법으로, 과거의 자신을 좀 더 순진하게, 실제보다 더욱 근시안적인 존재로 그려내는 것이다. 베라 브리튼은 후자를 택하고 있는데, 이는 미몽에서 깨어나서 회의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겠지만, 어느 정도는  '여성적 말하기'라는 전통에서 오는 압력을 의식한 탓이라고도 나는 생각한다.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당시에는 특히나 여성이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모두에게 공개하는 것은 환영받지 못했으며, 특히 전쟁 당시의 여성의 경험은 무시되다시피 했는데 이에 분개했지만 출간을 의식할 수 밖에 없었던 베라 브리튼은 <청춘의 증언>을 '전쟁 중의 러브 스토리'라는 좀 더 받아들여질만한 부분에 집중한 홍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베라 브리튼 본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틀을 거부했듯이 그녀의 글 역시 전쟁 중의 러브 스토리로만 읽히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1914-1915년의 기록에서 베라는 가장 먼저 전선으로 배치받아 프랑스로 떠나게 된 롤랜드와의 깊어져 가는 관계에 중점을 맞추면서도 짧았지만 빛났던 옥스퍼드에서의 1년부터 계란 하나 삶을 줄 모르던 부잣집 아가씨가 제대로 된 간호사가 되기까지의 과정까지 자신의 삶에 일어났던 변화들에 데해서 특유의 철저함으로 기록하고 분석하여 논평한다. 롤랜드와의 관계 역시 당시의 일기와 편지 등을 바탕으로 그때의 열렬했던 감정을 되살려내는 동시에 진실에 가깝게 묘사하려는 기록자로서의 엄격함도 보여준다. 원래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1914-1915 한 해를 한 포스팅에 담으려고 했으나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포스팅으로 넘긴다.


#청춘의증언 #베라브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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