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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읽지?

#2018_여성작가 (1-4월)

한 해 동안 여성 작가가 쓴 책만 읽어 본다는 이 참신한 도전은 내가 생각해내지는 않았다. 여성들이 만든 책과 영화 추천을 찾아보던 중 미국의 한 여성 저널리스트가 시도한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트위터의 해시태그로 시작해서 연말에 정리할까 했지만 보나마나 미루면 안 할 테니 미리 옮겨둔다. 앞으로도 읽은 책은 트위터와 이곳에 함께 업데이트 될 예정. 지금도 많은 분들이 해시태그를 통해 참여하고 있으니 오늘 뭘 읽을까 고민 중인 분들은 트위터에서 #2018_여성작가를 눌러보시라. 태그된 책들만 다 읽어도 2020년까지는 여성 작가 책만 읽어야 할 정도. 세상에 글 잘 쓰는 여자가 이렇게 많다. 글 잘 쓰는 여자를 알아보는 여자들도 많고.

 

이 글을 쓸 때는 닉 혼비가 문예 잡지에서 읽은 책들을 소개하던 글을 쓰면서 잡지 측의 요구로 고수해야 했던 원칙을 빌려왔다. 읽은 작품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하고,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의 작품이면 아예 언급하지 않기로. 닉 혼비는 꽤나 힘들었는지 상당히 투덜거렸지만(이 소개 글들은 묶어서 한국에는 [런던 스타일 책 읽기]라는 책으로 나와 있다.) 나로서는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아쉬운 점이 언급된 책이 있긴 해도 아예 빠질 만한 책은 없었다.


[1월]

  •  [프랑켄슈타인] - 메리 셸리

나는 [프랑켄슈타인] 원작을 20살 때 처음 완독했고, 곧장 열광했다. 시험 때문에 원서를 읽어야 한다는 고통도 거의 잊을 정도였다. 메리 셸리가 누군지도 몰랐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라는 걸출한 인물의 딸임은 더더욱 몰랐기에 '의의'에 점수를 준 것도 아니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정말로 재밌는 SF고, 패기가 넘치며, 한 순간도 멈칫대지 않고 달려 나가는 소설이다.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밖에 없는 괴물의 복잡한 심정도 매력적이었지만 나는 처음 읽은 순간부터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원형성에 감탄을 금치 못 했다. 그는 무슨 절박한 사정 때문에, 하다못해 죽은 가족이나 애인이라도 되살리고 싶어 애를 쓰다 어쩔 수 없이 괴물을 창조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하고 싶어서 새로운 종을 창조해버리는 '미친 과학자'의 원형이다. 19살의 나이에 메리 셸리는 과학이 신을 대체해버린 불온한 무신론적 세상을 그려낸 최초의 SF를 써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수없이 되풀이 될 하나의 유형을 창조해버린 것이다. 정규 교육은 한 번도 받지 못 했고, 아버지의 서재에서 독학을 하며 불행한 가정생활을 견뎌야 했던 젊은 여성의 머릿속에서 고대의 연금술과 최신 과학 모두를 섭렵한 무신론자 대학생 과학자가 태어났다니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나는 19살 때 뭘 하고 있었던가? 집에 오는 길에 버스나 잘못 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 박연선

#2018_여성작가 도전의 가장 좋은 점은 사놓고 모셔두기만 했던 여성 작가들의 책들을 우선순위로 올려주었다는 것이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도 자자하던 입소문을 듣고 금방 구입했다가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첫 문장을 읽자마자 흥이 나기 시작하더니 결국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나는 읽는 속도가 빠르고 잡으면 끝까지 다 읽는 버릇이 있어 완독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이 정도의 고강도 흥을 줄곧 유지하는 작품을 만난 건 매우 오랜만이었다. 아직도 고색창연한 종갓집이 존재하는 충청도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취업 준비생 백수 20대 손녀와 할머니, 그리고 종갓집 도련님이라는 뜻밖의 조합이 주는 신선함과 소녀들의 실종을 파헤친다는 탄탄한 플롯이 즐거운 조화를 이룬다. 정말로 웃긴 이야기만 해도 찾기 어려운데 미스 마플 뺨치는 동네 미스터리까지, 이런 귀한 조합을 책장에 그냥 꽂아둔 채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새삼 이 도전을 처음 시작한 미국의 저널리스트 분에게 마음으로나마 감사를 보낸다. 읽어 본 사람 모두가 입을 모아 얘기하고 있듯이 영화나 티비 시리즈로 나와도 정말 재밌을 작품.

 

  • [페미니즘 이후의 문학] - 리타 펠스키

이 책도 언제 샀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꽂혀 있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여성 작가들의 책을 더 읽겠다고 다짐한 건 맞지만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기억에도 없는 구매를 이렇게 많이 해 뒀을 줄이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조화롭게 악수하는 시간들이었다. 선생님 안목이 있으시군요.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페미니즘 이후의 문학]은 페미니즘을 '넘어' 문학을 바라보자고 하는 이론서가 아니다. 리타 펠스키는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 문학 비평이 등장한 후 쏟아졌던 수많은 반응들을 폭 넓게 아우른 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분류한 후, '페미니즘이 문학 감상을 망쳤다!' 유의 엉뚱한 소리들은 근거를 들어 반박한다. 기존의 페미니스트 비평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인 레즈비언 독자나 흑인 여성 독자, 그리고 제 3세계 여성 독자들만의 반발을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관점을 옹호하지는 않으면서도 리타 펠스키는 페미니즘 비평이 독선적인 태도로 독자의 사고를 제한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믿는 것은 엉뚱한 편견의 산물임을 분명히 한다. 페미니즘 비평은 텍스트의 권위에 끝없이 도전하는 동시에 텍스트에게 유혹 당하는 경험도 부정하지 않는 능동적 읽기이며, 그동안 닫혀 있었던 새로운 영역으로 사고를 뻗어나가게 도와주는 확장적인 이론이다. [페미니즘 이후의 문학]은 일반 독자로서 다양한 페미니즘 비평의 갈래를 접하면서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꼭 집어 말할 수 없었던 사각지대들에 환하게 불을 밝혀주는 작품이니, 나처럼 [다락방의 미친 여자] 등을 통해 처음으로 페미니즘 비평을 접했던 사람이라면 꼭 필요한 업데이트를 한다는 느낌으로 찾아 읽어보자. 전공자만 읽어낼 수 있는 책은 결코 아니며, 일반교양서의 매우 우수한 사례.

  •  [휴먼 에이지] - 다이앤 애커먼

[휴먼 에이지]는 누가 올리셨는지는 잊었지만 #2018_여성작가 해시태그에 올라온 [프랑켄슈타인]을 언급한 대목이 너무 흥미로워서 찾아 읽었다. 다이앤 애커먼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다방면에 빼어난 논픽션 작가라는 것은 뒤늦게 알았는데 [휴먼 에이지] 단 한 권만 써냈다고 해도 천재 소리를 충분히 들을 만한 작가. 몰아치기식 성장을 통해 전후의 개발도상국에서 급하게 도약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떠올리면 막연한 죄책감을 느끼며 분리수거에 힘쓸 뿐, 인간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미래에 대해 그려보게 되었다. 간단하게 요약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내용이지만, 이제 와서 야생으로 돌아가자고 외치기에는 이미 인간은 너무 많은 것을 바꿔버렸기에 오히려 지금부터는 적극적으로 좋은 의도를 가진 인간의 능동적인 개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매우 인상 깊은 작품. '패러다임의 전환'은 요즘 시대에 실제 변화도 없이 그저 흔하게 쓰이는 말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내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때 큰 경외감을 느낀다. 다이앤 애커먼의 책은 모조리 다 찾아보겠다고 결심했던 2월이었다. 

  • [나일강의 죽음] - 아가사 크리스티

난 아가사 크리스티를 작년에 처음 읽었다! 안 읽은 작품이 아직 한 오 천권쯤 남아 있다는 뜻이니 느낌표를 붙여 축하할 만하다. 라로 님이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 전권 독파하기를 목표로 매진하시는 걸 보고 덩달아 흥이 나서 작년에 [오리엔탈 특급 살인]으로 시작했는데 세상의 그 어떤 추리소설 속 탐정보다도 범인을 먼저 아는 법이 없는 나로서는 정말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심지어 나는 그 유명한 '누구도 요리사는 의심하지 않는다'는 오리엔탈 특급 살인 사건 농담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범인이 기차칸 요리사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즐겁게 놀랄 수 있었다. 추리 소설을 즐기고 싶으면 작가보다 영리하지 않으면 된다. 그럼 무조건 즐겁다.

 [아크로이드 살인사건] 다음으로 [나일강의 죽음]을 택한 이유는 코니 윌리스가 쓴 으스스한 동명의 단편 때문이었다.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 등으로 이미 유명인사가 된 포와로가 그 유명세 때문에 수사에 방해를 받는다는 현실적인 제약도 좋았고, 사랑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 너무 큰 사랑을 받는 것은 일종의 재앙이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냉정한 태도도 매우 흥미로웠던 작품. 이 소설을 보면서도 다시 느꼈지만 포와로는 소문에 비해 딱히 오만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변형이 등장할 때마다 더 괴팍해지는 셜록 홈즈가 원작 속에서는 멀쩡히 대학 동창도 잘 챙기듯이 포와로도 읽어보면 새침하게 예의가 바른 점잖은 사람이라는 인상. 은퇴 후 지루함에 몸부림치다 좌절하여 호박을 집어던지면서도 이웃에게는 깍듯하지 않은가. 

  • [달콤한 노래] - 레일라 슬리마니

프랑스 문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레일라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는 트위터에서 프랑스 문학에 대해 종종 알려주시는 츠타님의 추천으로 읽어 보았다. 원래 신작을 바로 읽지는 않는 편인데 재능 있는 여성이 등장했을 때 반응이 있어야 앞으로도 좋은 번역 작들이 잘 나온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구매한 책. 맞벌이 부부와 그들의 두 아이, 그리고 중년의 가사 및 육아 도우미의 복잡한 관계를 팽팽하게 끌고 나가는 [달콤한 노래]는 얼마 전 개봉해서 여성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던 한국 영화 [미씽]과 매우 비슷한 면이 있다.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너무 유사한 점이 있어 깜짝 놀랄 정도. 이웃이나 가까이 사는 가족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핵가족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가족 속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타인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아는가? 더 정확히는 얼마나 알려고 하는가? 라는 섬뜩하고 껄끄러운 질문을 당사자인 여성들을 비난하지 않으면서 던지는 이야기. 프랑스 사회의 큰 문제인 인종 간의 관계를 독자들의 기대와 어긋나게 뒤집은 것도, 결말을 먼저 제공하고 이른바 '사회파 추리'가 시작될 시점에서 끊어버리는 방식도 기발했다. 

  • [랩걸] - 호프 자런

책 좋아하는 여성 독자들 사이에서 작년부터 엄청난 호평을 받았던 화제의 [랩걸]. 역시 애독자 여성들의 소문난 잔치에는 읽을 책이 꼭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책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나무나 숲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 본 적 없었건만 [랩걸]을 읽고 나서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뛰쳐나가서 거리에 서 있는 나무를 한 번씩 쓰다듬곤 했다. 이름부터가 랩'걸'인 이 책은 읽는 독자를 들뜨게 할 만큼 뭔가에 미쳐서 온 삶을 다 바치는 전문가의 모습은 늘 남자의 몫이었다는 것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역사에서 잊힌 숨은 조력자로서가 아니라 동시대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맹렬하게 돌진하는 괴짜 과학자 여성의 이야기라니,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다가도 호프 자런의 자전적 일대기가 얼마나 그동안 만나보기 힘들었던 이야기인지 놀라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다이앤 애커먼의 작품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과학자가 글까지 이렇게 시적으로 잘 써도 되나 혀를 내두를 정도로 멋진 책. 나무의 삶과 자신의 삶을 엮어서 서술하는 형식이 특히나 매력적이다.

  •  [업루티드] - 나오미 노빅

영국인 장교와 용의 모험을 다룬 작가의 전작 [테메레르]도 재밌었지만 [업루티드]는 '용에게 바쳐진 소녀'라는 오래된 이야기 구조를 뒤집은 데다가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좋았다. 책에 쓰인 대로, 즉 고정된 형태를 가진 절대적 진리로서의 마법만을 신봉하면서 살아있는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거부하고 고립을 택한 마법사 드래곤과 좀 더 유연하면서도 폭발적인 내면의 힘을 가진 마녀 주인공이 서로를 각성시키면서 어둠에 맞서는 과정이 섹시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좀 더 전통적인 형태의 이야기에서는 희생양이 되었을 주인공의 절친한 여자 친구가 살아남아 초인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되는 것도, 남성의 배신과 폭력 때문에 악으로 변한 여성이 다른 여성의 도움을 받아 안식을 찾는 결말도 여성 작가 나오미 노빅의 뚜렷한 전복 의지가 엿보이는 훌륭한 대목들. 나는 늘 실제 이런 시도를 꾀하는 작품들의 수는 적은 반면 지나치게 페미니즘적 의도가 엿보이면 재미없고 교조적이며 불쾌한 작품이 될 거라고 염려하는 목소리는 너무 크다고 늘 생각하는데 [업루티드]는 그런 지레짐작들을 가볍게 무시하면서 모든 대목에서 여성이 중심이 되는 선택을 한다. 고전 동화들을 페미니즘 적으로 재해석했던 앤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이 노회하고 능청맞게 매력적이었다면 나오미 노빅의 [업루티드]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확실하게 아는 젊은 선장의 지휘 아래 처음 출정에 나선 배처럼 씩씩한 느낌. 영상화가 되어도 정말 재미있을 작품인데 니에슈카로는 시얼샤 로넌이 완벽하지 않을까. 

  • [청년 데트의 모험] - 권교정

나는 권교정 작가님의 작품을 매우 늦게 알게 된 편인데 [디오티마] 1편을 읽자마자 절판되지 않은 작품들을 한 번에 모조리 사 모은다고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청년 데트의 모험]도 이때 사서 몇 번이고 읽었지만 매우 추웠던 1월의 어느 날 불현듯 다시 읽고 싶어져 퇴근하자마자 달려와 배를 깔고 누워 열심히 재독을 했다. [청년 데트의 모험]은 [디오티마]에서도 나타나는 권교정 작가님 특유의 넓은 세계관과 시간에 대한 흥미로운 인식이 엿보이는 작품. [청년 데트의 모험]은 [왕과 신부]라는 작품을 통해 결말을 미리 알 수 있는 독특한 모험기인데 이런 설정 덕분에 독자들은 주인공 데트보다는 여러 시간대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마법사와 비슷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우리는 그 미래의 일부인가 아니면 맞설 수 있는가? 등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과거에 대한 후회를 마음에 품고도 몸은 하나의 시간대에만 존재할 수 있는 인간에게 영원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사고 실험인데 [청년 데트의 모험]만큼 흥미롭게 풀어나간 국내 작품을 나는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 했다. 권교정 작가님이 미국에서 태어나서 활동했더라면 여러 작품이 영화와 티비로 만들어졌으리라는 말들을 괜히 팬들이 하는 게 아니다. 배경과 작풍은 전혀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컨택트]로 훌륭하게 옮겨졌듯이 [청년 데트의 모험]과 [왕과 신부]는 빼어난 티비 시리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을 테니 작가님이 어서 쾌차하셔서 [청년 데트의 모험] 다음 편을 내주시기를. 냉정한 듯 하면서도 정이 많고, 야심가인가 하면 고향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청년 데트는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둠용을 물리치고 데트 왕이 되는 걸까? 왜 그는 영웅으로 영광 속에서 죽지 않고 모두를 잃은 채 씁쓸한 노인 왕이 되어 혼자 남았을까? 어둠용에 대한 예언은 어떤 식으로 그를 통해 이루어질까? 과장 좀 보태서, 매일 궁금하다.

  •  [피프티 피플] - 정세랑

미국의 유명한 목사 출신 방송인 중에 어릴 적 자신이 사람들에게 닥친 무서운 일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상황에서는 언제나 돕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테니 그들을 찾아보라고 어머니가 충고했다는 회상을 남긴 사람이 있었다. [피프티 피플]의 추천사로 써도 좋은 말이 아닐까. 서로 느슨하게 관계가 있는 50명 (이상의) 사람들이 때로 비틀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함께 걷는 이 책을 읽고 내가 인간에게 지쳤다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어 온 건 아닐까 계속 생각했다. 우리는 물론 서로를 지치게 하고 상처 입히지만 또 회복시키고 손을 내미는 존재인데 나 역시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인데. 서로 조심하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자, 의 단계에만 너무 오랫동안 멈춰 서 있었던 게 아닌지. [피프티 피플]은 다정하지만 마냥 응석을 받아주지는 않기에 더 믿을 수 있는 친구처럼 꼿꼿한 선의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작품이다. 유달리 사람에게 질렸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이 책을 읽어보자. 수액 맞은 듯 인류애가 빠르게 차오르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2월]

  •  [은수미의 희망 마중] - 은수미

[은수미의 희망 마중]은 내가 살면서 얼마나 우회적인 말하기에만 익숙해져 있었는지 깨닫게 해줬다. 정치적인 것은 무엇이든 불온적이라고 경계하는 사회에서 불편한 일이 생기면 돌려 말하거나 혹은 아예 말하지 말라는 직간접적인 압박을 받으며 살다 보면 결국 언제 목소리를 내야 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된다. [은수미의 희망마중]은 숨죽이며 사는 것에 익숙한 한국 국민들에게 함께 목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나아가자고 격려하는 책이며, 저자 본인이 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살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내적 갈등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다양한 인권 운동에 앞장 서 왔지만 전문 정치인으로서의 경력보다는 논평가와 연구가로서의 세월이 더 길었던 은수미 작가인 만큼 독자가 알기 쉽게 많은 자료와 통계들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능력도 매우 뛰어나다. 한국에서 여성이 뚜렷한 정치관을 드러내며 어려운 문제 앞에서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걸 들을 기회가 얼마나 적은지 생각해보면 [은수미의 희망 마중]은 매우 귀한 사례. 한국 사회 민주화를 이끌었던 학생 운동의 가치를 일깨워 주면서도 더 큰 목표를 위해 뭉친다는 명목 하에 제대로 청산되지 못 했던 운동권 내 여성 혐오 및 멸시 문화에 대해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 [보건교사 안은영] - 정세랑

이쯤 되면 내 방은 거의 도서관 수준이다. [보건교사 안은영] 역시 여성 독자들 사이의 입소문에 힘입어 몇 년 전에 사 둔 책이었다. 눈에 띄는 노란색 표지를 매일 보면서도 왜 안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다른 책을 읽느라 그랬겠지만 한국 문학을 자꾸만 뒤로 미루는 버릇 때문일 가능성도 높겠지. [피프티 피플]처럼 [보건교사 안은영]은 녹록하지 않은 세상에서 열정적이라기보다는 꾸준하게 선의를 유지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오로지 재미를 위해 썼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쉴 틈 없이 흥미진진하다. 참으로 은근하게 성실한 영능력자인 보건교사 안은영 씨는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동료 교사의 도움을 받아 싸움도 하고 구마도 하고 결국은 연애도 하면서 사람들을 지켜준다. 보통 사람은 가지지 못 한 힘을 가지고 세계를 구한다는 슈퍼 히어로 장르가 한국에 제대로 이식된다면 어떤 형태일까 궁금해 하면서도 제대로 상상하기가 어려웠는데 이 소설을 읽은 후로는 늘 안은영 씨가 떠오른다. 유행이 지났건 돌아왔건 상관없이 끈질기게 꽃무늬를 고집하고, 머릿결도 그다지 좋지 않으며, 무기로는 장난감 칼을 휘두르고 다니는 매우 빼어난 영능력을 보유한 30대의 보건교사. 이런 여성이 한국 대표 히어로라니 너무 멋있지 않은가. 

  •  [현남 오빠에게] - 조남주 외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 되었을 때는 소위 말하는 '청소년 필독 도서'류의 소설은 모조리 독파한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알려진, 그러니까 정전화 되어 중요하다고 취급되는 한국 근현대 소설은 모조리 다 읽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큰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고 책이라면 손에 잡히는 대로 모조리 다 읽는 버릇 때문이었다. 어차피 책은 취미로 읽는데 '문학'이라는 과목이 따로 있다니 한 과목 정도는 거저먹는 거 아니냐는 헛된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결국 그렇게나 시대별로 잘 분류된 몇 백 개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었어도 여성 작가는 계보조차 제대로 그려볼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 내가 한국 문학과 멀어진 결정적인 계기였다. 여성은 늘 주체로 등장하기보다는 대상으로만 등장하며, 어느 시대건 간에 지나친 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그런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폭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남성을 이해하라는 식의 태도가 반복되는 것도 지겹고 짜증스러웠다. 여성 독자인 내가 끼어들 수도 없고, 애초에 초대하지도 않는 곳이 한국 문학이라는 게 내 마음이었다. 그 후 많은 다른 여성 독자들이 한국 문학에도 여성 작가의 계보는 분명히 존재하며 재능 있는 여성 작가들을 필두로 변하고도 있다고 외치는 모습을 여러 번 봤지만 흘려들었는데, [현남 오빠에게]를 읽고 나서야 내가 외면하고 있는 사이 정말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구나 깨달았다. 한국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친구와 나눠봤을 이야기들을 존댓말로 풀어나가다 반말로 변하는 순간 짜릿해지는 완급 조절에 박수가 절로 나오는 [현남 오빠에게]를 시작으로 평소 좋아하던 구병모 작가의 스릴러에 본격 SF까지, 여러 장르의 기발한 작품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대놓고 표방하는 작품집은 외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계속 그렇게 믿다 놓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지는 책. 모국어로 쓰인 여성들의 이야기에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울림이 있었다. 내 독서 경험을 연대기적으로 정리 해 본다면 [현남 오빠에게]는 큰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한국 현대 문학에 대한 나의 태도는 이 작품의 전후로 나뉠 수 있을 테니.

  •  [외로운 도시] - 올리비아 랭

인간은 누구나 외롭지만 외로운 인간 모두가 이런 책을 쓸 수는 없다.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는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갑작스럽게 혼자가 된 저자가 자신이 느끼는 고독감의 원인을 자서전적으로 파고들기 보다는 고독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들을 깊게 연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매우 독특한 책. 에드워드 호퍼나 앤디 워홀처럼 유명한 화가들부터 헨리 다거처럼 살아생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의 삶과 작품에 깊게 파고든 후, 올리비아 랭은 고독을 치료해야 하는 질병처럼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함을 깨닫는 동시에 개인을 고독에 빠트리는 스티그마와 배제에는 저항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오로지 고독 속에서만 가능한 깊고 느린 성찰의 힘이 느껴지는 매우 아름다운 논픽션으로, 예술을 이야기하는 책이 그 자체로서 다시 예술이 되는 드문 성취를 이뤄냈다. 2018년에 읽은 책 중 가장 요약하기 어려웠고 동시에 가장 마음에 드는 책.

  •  [펀 홈] - 앨리슨 백델

'백델 테스트'의 창시자인 앨리슨 백델이 매우 뛰어난 그래픽 노블 작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읽어보고 싶던 차에 번역본이 나왔다기에 냉큼 집어들었다. [펀 홈]은 레즈비언인 작가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게이였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를 복잡한 심경으로 회고하는 자전적인 작품으로, 부모라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더 큰 의문과 내적 갈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또 다른 그래픽 노블 [쥐]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사실 앨리슨 백델과 아버지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단절된 부모와 자식 사이는 아니었다. 백델 부녀의 사이는 훨씬 더 복잡했다. 앨리슨 백델은 게이임을 숨겨야 했던 아버지가 레즈비언인 자신에게 여성성을 강요했던 것에 압박감과 분노를 느꼈지만, 두 사람은 비밀과 단절로 인한 거리감을 항상 느끼면서도 문학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기도 했다. 문학 교사였던 앨리슨 백델의 아버지는 우회적이고 간접적으로나마 책을 좋아하는 딸에게 남의 글을 빌려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으며, 그 기억이 있었기에 앨리슨 백델은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 그를 자신이 풀어봐야 할 퍼즐처럼 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펀 홈]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거나 해소해보려는 딸의 시도로 읽히지 않는다. 앨리슨 백델의 냉정하면서도 거리를 두는 말하기 방식은 오히려 연민을 억누르고 그를 일종의 연구용 프로젝트로 대해 보려는 절박한 노력처럼 보인다. 힘든 과정을 거쳐 화해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해 받을 자격이 없는 부모를 너무 빨리 이해해버렸기에 그런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스스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 같다고나 할까. 읽고 있으면 몹시 심란하면서도 아버지의 비밀로 인해 빚어진 혼란을 초연하게 직면해보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마는 딸의 태도가 묘하게 감동적인 작품. [펀 홈]은 비밀 때문에 평생 고통 받았던 아버지가 직접 빌 용기가 없었던 사과에 대한 딸의 대답처럼 보인다. 당신이 용서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 다 끝났으니 편히라도 쉬세요, 라고 말하듯이.

  •  [소공녀] - 프랜시스 호지슨 베넷

종종 듣는 영미문학관에서 [소공녀] 특집을 시작한 이후 계속 다시 읽고 싶었는데 라로님 덕분에 완전한 판본을 접할 수 있었다. 아동용 축약 본에 다 나오지 않았던 부분까지 다 읽어 보니 많은 부분을 잘못 기억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는 사라 크루의 아버지가 살아 돌아왔지만 기억 상실로 딸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었다.) 사라 크루가 얼마나 특이한 아이인지도 미처 실감하지 못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지않게 개성 넘치던 작가의 다른 책 [비밀의 정원] 메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교화가 되고 남자 사촌의 이야기가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존재감이 희미해지는데 반해 사라 크루는 끝까지 이야기의 중심으로 남는다는 것도. [소공녀]는 또 다른 고전인 [피터 팬]처럼 수년에 걸쳐 극본과 소설을 넘나들며 개정을 거듭하다 뒤늦게 완성본이 나온 작품인데 그 과정에서 사라 크루의 개성이 점점 더 또렷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소개에 붙어 있는 프랜시스 호지슨 베넷이라는 작가에 대한 정보도 읽어볼 만하다. 그는 지금은 훨씬 더 고평가를 받고 있는 헨리 제임스가 부러워했던 맞수였으며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성공하는 매우 드문 성취를 이뤄 낸 작가였다. 영국 출신 이민자로서 가족 모두가 정착에 실패했으나 홀로 사람들이 원하는 '영국적임'이 무엇인지를 간파해 영국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로 미국 시장을 사로잡은 프랜시스 호지슨 베넷의 수완에는 감탄스러운 데가 있다.

  •  [젠더, 만들어진 성] - 코델리아 파인

코델리아 파인의 [젠더, 만들어진 성] 역시 한참 전에 사 놓고 잊어버리고 있다 영국의 코미디언 로버트 웹이 유해한 남성성을 주제로 엮어낸 자서전 [How Not to be a Boy]에서 인용한 걸 보고 찾아 읽어보게 되었다. 로버트 웹은 이 책에서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부모들조차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본질적인 차이라는 허구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강력하게 비판하는데 이때 인용하는 자료가 코델리아 파인의 저서 [젠더, 만들어진 성]. 성별에 따른 뇌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오래 된 주장을 뒷받침 하는데 사용되어 온 실험 결과들을 모조리 추적해 진실을 밝혀내는 이 책은 과학의 탈을 쓴 편견을 격파하려는 학자로서의 열정이 탄생시킨 놀라운 결과물이다. 하도 많은 근거 없는 주장들이 존재하다보니 마치 아무리 목을 베어도 죽지 않는 불멸의 적과 치열하게 싸우는 전투의 기록처럼 보일 정도. 지금껏 어떤 실험도 성별에 따른 유의미한 뇌 기능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증명한 적은 없으며, 설령 차이가 있다고 해도 어떤 식으로 실제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다는 신중한 과학적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코델리아 파인은 수백 년간 두텁게 쌓여온 수많은 유사과학의 탈을 쓴 주장들과 참으로 열심히 맞선다. 혈압이 걱정된다고 할 정도로 저자 본인에게는 고생스러운 작업이었겠지만 덕분에 독자인 나는 편하게 앉아 각종 '카더라'들이 격파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멋진 책.

  •  [히든 피겨스] - 마고 리 셰털리

마고 리 셰털리는 세계대전부터 우주 탐험 시대까지 긴 시간 활약해 왔지만 역사에서 잊힌 흑인 여성들을 발굴해 낸 이 멋진 책을 쓰는 내내 자신이 들떠 있었음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 작가의 이런 기분 좋은 흥분은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며 참으로 그럴 만하다는 공감을 끌어낸다. 미국에서 크게 흥행했고 한국에서도 여성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영화 [히든 피겨스]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마고 리 셰털리가 방대한 조사를 통해 찾아 낸 흑인 (그리고 백인) 여성 수학자 및 기술자, 그리고 행정 담당자의 수는 어쩔 수 없이 대표성이 강한 인물 몇 명에게 집중해야 했던 영화에서 보여준 것보다 훨씬 많았으며 그들이 해낸 업적 또한 훨씬 더 다양했다. 최근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히든 피겨스]는 티비 시리즈로 다시 만들어질 예정이라는데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 편의 영화로 끝내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일을 해냈고 그들 모두는 알려질 자격이 있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공헌이 잊히거나 지워지는 일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냉전 시대나 우주 경쟁처럼 속속들이 잘 알려져 이제는 일반 상식이 된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저 백인 남성의 얼굴로만 기억되고 있었음을 실감하게 된 건 상당한 충격이었다. [히든 피겨스]를 읽어 본 여성 독자라면 누구나 자국의 중요한 역사적 고비마다 활약했지만 조용히 잊혀 왔을 여성들의 공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지 않을까. 

[3월, 4월]

  •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 케이트 윌헬름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는 어딘가 고전적인 인문학 풍의 SF이었다. 부족에 가까운 규모를 자랑하는 한 대가족이 아포칼립스에 맞서 자신들의 유전자를 사용해 복제 인간을 만든다는 내용으로, 세대가 교체되고 주인공이 바뀌면서 개별적 개체가 갖는 고유한 자아는 분열의 씨앗인가 아니면 진화의 필수 조건인가를 토론하듯 보여주는데 분명히 진화론에 기반을 둔 생물학적 설정임에도 철학적 사고 실험의 느낌이 더 강하다. 케이트 윌헬름은 마치 맨델이 완두콩 교배를 통해 유전자 이론을 입증했듯이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에서 유전자를 공유하는 한 가족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데, 덕분에 일반적인 복제 인간 이야기에서도 늘 등장할 수밖에 없는 근친상간의 문제가 훨씬 더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가를 탐구하는 사색적이고 서정적이고 문체와 복제를 통한 가족 간 '접붙이'라는 찝찝한 소재가 희한한 조화를 이루는 다소 고지식하게 흥미로운 SF.

  •  [고양이 발 살인사건], [빨간 구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 - 코니 윌리스

코니 윌리스는 늘 굳건하게 보수적인 편이었지만 위의 두 단편집은 소재가 소재인 만큼 그런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내가 크리스마스에 거의 아무런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너무 기분 좋은 작품들로만 꾸려진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조합. 워낙 못 하는 게 없는 작가인 만큼 코니 윌리스는 야단법석 소동극만큼이나 어두운 소재도 잘 다루며, 또 많이 쓰기도 했다. 작품들이 꾸준히 소개되고 있으니 앞으로는 어린 소녀의 관점으로 태양 폭발을 다룬 [Daisy, in the Sun]이나 [고양이 발 살인사건]에 실린 [동방박사의 여정]처럼 성경 속 이야기를 소재로 하되 아포칼립스물로 재해석한 [Lost and Found] 같은 작품도 소개되길 바라는 마음. 물론 이 작품집 속 단편들도 재미가 없진 않다. 코니 윌리스는 재미 없는 이야기는 쓸 수 없는 작가 중 한 명이고 그래서 모두 크리스마스용 영화처럼 기대되는 포인트는 제대로 갖춘 매력적인 작품들이긴 하다. 

  •  [This One Summer] - 질리안 타마키, 마리코 타마키


사촌인 질리안 타마키와 마리코 타마키가 합작한 그래픽 노블 [This One Summer]은 과거가 아닌 2010년대 후반인 바로 지금 아동기를 벗어나 청소년기에 돌입하려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둘째를 유산한 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 때문에 복잡한 심정으로 여름을 맞은 주인공 로즈는 언제나처럼 아와고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며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척 지내려고 애를 쓴다. 다행히 아와고 해변에는 매년 여름 함께 노는 여동생이나 다름없는 친구 윈디가 기다리고 있고 덕분에 로즈는 힘든 시기를 홀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것은 과거를 배경으로 여자아이들에게 더 가혹했던 시절에 그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상처를 중심으로 유년기를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 매우 인상적인 한 장면에서 여전히 어린아이적인 솔직함을 간직하고 있는 윈디는 로즈의 가혹한 발언이 성차별적이라고 지적한다. 잃어버린 아이 때문에 자신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보이는 엄마에게 화가 난 마음을 마을의 임신한 다른 여자아이를 비난하는 것으로 풀려고 했던 로즈는 윈디의 말에 발끈하지만 틀린 말이 아님을 알고 있다. 너무 많은 성장기들이 여자 아이들이 자라면서 여성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그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는 점은 명확히 하지 않는다. [This One Summer]은 유년기와 사춘기 사이의 혼란스러움과 상처받은 여자아이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 그가 다른 여자아이를 비난하게끔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린 시절 놀러갔던 바닷가의 냄새마저 환기될 정도로 생생하게 아름다운 그림과 어린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변해가고 있는 여자아이들을 바라보는 다정한 시각이 멋진 조화를 이루는 책. 국내에는 [그해 여름]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도 나와 있다.

  •  [The Prince and the Dressmaker] - 젠 왕

[어드벤쳐 타임]의 그래픽 노블 작업에도 참여한 적 있는 젠 왕의 [A Prince and Dressmaker]는 케이트 비튼의 강력한 추천을 보고 고민 없이 바로 구매했다. 케이트 비튼 외에도 수많은 동료 작가들이 추천을 쏟아내고 있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재단사 소녀 프란시스와 남몰래 드레스 입기를 즐기는 소년 왕자 세바스찬. 개성 있는 성격의 귀족 여성을 위해 프란시스가 디자인 한 독특한 드레스를 보고 한 눈에 재능을 알아 본 세바스찬은 자신만을 위한 드레스를 만들도록 프란시스를 고용하고, 둘은 친구가 되지만 왕자의 비밀을 지켜주려면 프란시스는 영영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다양성 존중과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존중을 기반으로 싹트는 우정과 사랑이라는 좋은 주제를 생기 넘치는 그림 속에 담아낸 멋진 성장물. 왕자의 약혼녀부터 프란시스의 롤 모델인 전설적인 무대 의상 디자이너까지 작가가 골고루 신경 쓴 티가 나는 멋진 여성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작가가 실제 드레스 디자인을 깊이 연구한 후 수십 벌을 그린 만큼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더욱 즐겁게 읽을 만한 작품.

  •  [페미니즘 정전 읽기2] - 송명희, 안숙원, 이태숙 편저

[페미니즘 정전 읽기]는 1,2 두 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은 2년 전쯤 읽었던 것 같다. 2를 집어 드는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복잡하고 어두운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쉽게 읽히는 작품들은 아니었던 게 원인이 아닐까 싶다. [페미니즘 정전 읽기]는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정전에서 너무 오랫동안 제외되어왔던 한국 여성 작가 작품들을 재 발굴하고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장점과 한계점을 읽어내고자 하는 목적이 뚜렷한 시리즈. 나혜석이나 지하련처럼 그동안 그나마 작품들이 소개되어 찾아볼 수 있었던 작가들과 이름조차 생소한 작가들이 골고루 소개되어 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1세대 신여성으로서 사회의 억압에 부딪혀 사라졌지만 90년대 중후반까지도 살아있었던 작가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우면서도 씁쓸했다. 멀쩡히 살아 있었던 분들의 작품을 이렇게까지 모르고 지내왔다니. 그래도 일반 독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는 비평집이 두 권이나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한국 여성 작가들의 계보의 빈 부분을 메우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 

  •  [다윈 영의 악의 기원] - 박지리

역시나 여성 독자들 사이에서 강력하게 추천되었던 작품. 계속 궁금해 하고 있던 차에 앨리스님이 감사하게도 선물해주셨는데 기차 안에서 빠르게 다 읽어버렸다. 한 번 잡으면 놓기 어렵다는 말과 소재만 듣고는 정유정 작가의 [28] 풍일까 막연하게 짐작만 했는데 그보다는 좀 더 YA에 가까운 느낌. 계급의 구별이 뚜렷하게 존재한다는 점 외에는 정체성이 다소 모호한 가상 국가의 엘리트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종의 뒤틀린 성장기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설정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쭉쭉 달려 나가는 점이 시원스러운 장점이기도 하고 다소 아쉬운 한계이기도 하다. 기숙학교 성장물 장르의 매력을 잘 살려내고 있긴 하나 한국 사회의 어떤 부분과 실존하는 영미권 국가의 사회의 어떤 부분이 어색하게 섞여 있어 사회의 축소판 격으로 등장하는 학교 역시 다소 엉성하다는 느낌. 하지만 갈등 구조가 뚜렷하고 해결 과정도 박력 있어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로서의 재미는 충분히 보장된다. 읽으면서 세세한 설정보다는 인물 간의 관계와 뚜렷한 갈등이 더 중요한 뮤지컬에 어울릴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실제로 올해 안으로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고. 박지리 작가가 이를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하니 정말 안타깝다. 이렇게 큰 재능을 지니고 너무 빨리 세상을 뜬 작가님의 명복을 빕니다.

  •  [죽은 숙녀들의 사회] - 제사 크리스핀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작가가 모든 걸 버리고 죽은 예술가들의 흔적을 쫓아 기약 없는 여행길에 오른다. 이미 비슷한 [우울한 도시]를 재밌게 읽은 경험이 있었던 터라 트위터에서 소개를 보자마자 장바구니에 넣어버렸다. [우울한 도시] 쪽이 좀 더 내향적이고 치유의 갈망이 느껴지는 여정이라면 [죽은 숙녀들의 사회]의 장점은 더 잃을 것도 없다는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패기. 죽은 작가들이 이미 밟고 간 땅을 다시 한 번 밟으면서 그들이 바라보았던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다시 한 번 바라보려는 시도는 책을 살아있는 친구처럼 느껴 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매혹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보통 이런 논픽션은 남성 예술가의 뒤를 쫓는 경우가대부분인데 [죽은 숙녀들의 사회]는 고집스럽게 여성 작가들의 발자취를 쫓고 남성 작가들을 다룰 때는 늘 침묵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그들의 부인을 잊지 않는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뾰족하게 모가 나 있고 비틀대면서도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여행기.

  •  [킨] - 옥타비아 버틀러

나는 그동안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을 세 번 샀는데 한 번도 읽지 못 했다. 한 번은 배송 중에 어디론가 사라졌고 한 번은 손에 넣었다가 읽기 전에 잃어버렸으며 마지막으로는 [블러드 차일드]와 혼동해서 잘못 구매했다. [블러드 차일드]를 너무 재밌게 읽었기에 어떻게든 이 악연의 고리를 끊어내겠다고 다짐한 후 남의 손을 거쳐 가면서까지 번거롭게 다시 구매한 보람이 있다. 1970년대를 사는 흑인 여성이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조상이 살고 있는 19세기로 계속해서 소환되는 내용을 다룬 [킨]은 한 번 펴면 덮을 수가 없는 책이었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이 책을 다 읽었고, 읽는 동안 19세기의 야만적인 인종차별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던 흑인 여성 운동가 아이다 B 웰스의 삶부터 코니 윌리스의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까지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미래에서 온 사람이 유럽이나 미국의 과거를 자유롭게 여행한다는 설정 자체가 언뜻 보기엔 중립적인 소재 같지만 매우 보수적이고 백인 중심적 사고가 아닌가. 오죽하면 자타 공인 영국 애호가인 코니 윌리스조차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서 흑인 학생에게 시간 여행을 강요하는 미국인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한다. [킨]은 기존 SF 들의 그런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가짜 중립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자유로운 인간이 폭력과 억압 속에서 노예로 길들여지기 얼마나 쉬운지를 섬뜩하게 그려낸다. 혈연을 의미하는 [킨]이라는 제목처럼 주인과 노예로 만났지만 후손들에게는 공통의 조상이 되기도 하는 미국의 흑인과 백인과의 복잡한 관계를 에두르거나 미화하지 않으면서 솔직하게 그려내는 책. 시간 여행 소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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