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Katherine Kellgren을 추모하며

 작년에 그레타 거윅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덕에 엘리자베스 보웬의 [The Death of the Heart]를 처음 접한 후 나는 이 책을 세 번이나 다시 읽었다. 부모를 잃고 이복 오빠인 토마스와 그의 부인 애나와 함께 런던에서 살게 된 16살 소녀 포샤를 주인공으로 하는 [The Death of the Heart]는 냉정하지만 잔인하지 않고, 감상적이지는 않지만 너무나도 섬세하게 공감하는, 대단한 성장 소설이며, 어떤 요령이나 방어막 없이 어른들의 세계에 내던져진 어린 소녀의 마음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인 듯 다루는 진지한 심리 연구이기도 하다. 내 계산이 맞다면 그레타 거윅은 [레이디 버드]를 쓰면서 이 소설을 읽었을 텐데 분명히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이제 훌륭한 감독으로도 인정 받은 그가 [The Death of the Heart]를 차기작으로 골라준다면 정말 멋진 작품이 탄생하겠지만 엘리자베스 보웬은 어째서인지 살아 생전의 명성과 실력에 비해 너무 많이 잊혀져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레타 거윅의 뜻이 있는 곳에 또 다른 여성 주연작이 있으리라 믿어볼 뿐.

 하지만 이 글은 그레타 거윅이나 엘리자베스 보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는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재능을 가진 창작자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The Death of the Heart]의 오디오북을 읽은 배우 Katherine Kellgren이다. 나는 눈으로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오디오북을 듣는 것도 좋아한다는 얘기는 이미 한 적이 있는데, 모든 분야가 그렇듯 오디오북에도 슈퍼스타들은 존재한다. [The Death of the Heart]를 읽은 Katherine Kellgren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나도 처음부터 알고 찾아 들은 건 아니었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영국인들이 주인공인 [The Death of the Heart]는 내용 면에서나 언어 면에서나 모두 녹록하지 않은 책이고, 엘리자베스 보웬은 헨리 제임스에 자주 빗대어지며 종종 능가하는 작가라는 말도 듣는 사람이다. 날카로운 심리 분석을 매우 우회적인 방식으로 펼쳐보인다는 뜻. 그렇기에 외국인으로서 눈으로만 읽어서는 등장 인물들의 목소리를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많았고, 그럴 때는 오디오북 만큼 도움이 되는 것도 없기에 별 생각 없이 찾아들은 것이 Katherine Kellgren이 녹음한 버전이었다. 그리고 조금의 과장도 없이 말하는데 [The Death of the Heart]는 지금까지 내가 들어 본 오디오북 중에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모든 역에 뛰어난 배우들을 고용하여 실제 연극 작품으로 무대에 올리고 그걸 녹음한다고 해도 Katherine Kellgren의 버전보다 훌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의 연기는 뛰어나다. Katherine Kellgren이 영국의 연기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미국인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계급과 성별, 나이에 따른 인물간의 차이는 엘리자베스 보웬이 정확하게 잡아냈지만 각 인물에게 딱 맞는 억양을 부여한 건 모두 이 배우의 공이다.

 여기서 글을 끝낼 수 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Katherine Kellgren은 티비나 영화에서 유명한 배우는 아니었지만 오디오북 세계에서는 메릴 스트립에 버금가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 정도를 덧붙이면서. 300권이 넘는 작품을 녹음했고, 그 중에서는 유명한 청소년 대상 시리즈들도 있어서 그 시리즈의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는 얘기도 좋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주 전 출퇴근 길에 [The Death of the Heart]를 연속해서 두 번이나 듣고 난 후 다시금 감탄하며 내가 이 배우를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뜬 기사는 부고였다. 오디오북계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고, 300권이 넘는 작품을 녹음했으며, 결코 작지 않은 오디오북 세계에서 인정 받는 수십 개의 상을 거머쥔 Katherine Kellgren은 2018년 1월 몇 년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떴다. 내가 뒤늦게 오더블 사이트에 리뷰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추모한다는 것은 언제나 조금 외로운 일이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그와 함께했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며 위로 받을 수도 없고, 마지막 대화를 마음 속에서 되새겨 볼 수도 없다. 당신의 뛰어난 재능이 내게 정말 큰 기쁨을 줬다고 이메일이라도 보내볼 걸 그랬다. 역시 그런 생각이 든다.그랬다고 해도 역시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겠지만 역시 그래도. 진심으로 Katherine Kellgren의 명복을 빈다.

(+)  Katherine Kellgren의 오디오북을 들어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역시 나는 [The Death of the Heart]를 가장 추천하지만 코니 윌리스의 시간 여행 시리즈 최종판이라 볼 수 있는 [Black Out]과 [All Clear] 역시 읽은 적이 있다. 매우 재미있는 작품이니 코니 윌리스의 팬들이라면 이 시리즈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모두 Audible에서 구입할 수 있다.

written words

와조스키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