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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3.11.

안톤 옐친에 대해서는 늘 좋은 말만 들었다. 아역으로 시작해서 좋은 영화도 많이 찍었지만 연기 신동이다, 오스카 감이다 하는 그런 거창한 말들이 아니라 그냥 작고 좋은 것들이었다. 캣 데닝스의 팬들은 찰리 바틀렛에 함께 출연한 후 허물 없는 친구가 된 안톤 옐친과 그녀가 같이 찍은 사진들이 귀엽다고 좋아했고, 또 어떤 사람은 스타트렉이 개봉한 후에야 자신의 사촌동생과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는 절친한 친구가 안톤 옐친이었다는 걸 알았다며 둘이 우연히 같은 옷을 입고 등교한 날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스타트렉이 끝난지 얼마 후 LA에서 연극을 했던 크리스 파인을 보러 개막날 극장을 찾았던 사람들은 안톤 옐친이 크리스 파인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냈으며,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온 팬들과 기꺼이 함께 사진을 찍어주며 친근하게 대화를 하더라는 목격담을 전했다.


 안톤 옐친에 관한 얘기는 다 이런 식이었다. 그를 모르거나 배우로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심심풀이로 들어볼 만한 재미있는 일화로의 가치도 없을, 그냥 작고 좋은 얘기들이었다. 러시아 망명자의 외동아들이었던 그는 부모님과 평생 매우 가까웠고,  모국어 공부를 꾸준히 한 덕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원서로 읽을 수 있는 걸 자랑스러워했으며, 스타트렉 시사회를 위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는 통역 없이 인터뷰를 진행해 그런 그가 기특했던 에이브럼스 감독이 사방팔방 자랑을 하기도 했다. 스타트렉에 함께 출연한 동료들은 늘 안톤 옐친이 얼마나 똑똑한지, 얼마나 착하고 또 웃긴지에 대해서 얘기했고 뛰어난 체스 실력으로 파이크 함장역을 맡았던 배우 브루스 그린우드를 무참히 무찌른 걸 두고 다들 즐거워하곤 했다. 그는 스타트렉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고, 배트맨에는 빠삭했다. 하지만 영화에 캐스팅 되고 난 후 다른 배우들이나 감독과는 달리 그는 곧장 오리지널 티비쇼를 찾아 봤고, 체콥이 주변 상황에는 아랑곳없이 멋대로 행동하는 괴짜 같은 면이 있는 걸 알게 되자 그가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처음 가 본 콘서트는 엔싱크의 콘서트였지만 자라면서 락에 흥미가 생겼고 직접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고, 조예가 깊었으며, 연주도 직접 했기에 러덜리스 같은 영화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배우였다. 그가 잡지 데이지드 앤 컨퓨즈드에서 추천했던 음악들 리스트 덕분에 나는 크래쉬의 ruddie can't fail 같은 노래를 처음 들었고 아마 앞으로도 이 노래는 계속 안톤 옐친이 추천했던 노래로 기억될 것이다.

 

 그가 죽고 나서 팬들이 올렸던 그와의 만남도 다 이런 얘기들이었다. 한 팬은 뉴욕에서 구직 활동에 지쳐가던 중에 몇 안 되는 친구들마저 떠나보내는 환송회를 하고 술에 취해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다가 안톤 옐친을 만났던 얘기를 올리면서 감사를 표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먼저 스스로 안톤 옐친이라고 밝혔다는 그는 술이 많이 취해 횡설수설하던 팬의 말을 한참 동안 들어주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라고, 앞으로 다 잘 될 거라고 위로를 했다고 한다. 나는 그에 관한 이런 얘기들을 앞으로 계속 더 많이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7-8년 전부터 내가 이미 이 배우에 대해 너무 많은 쓸데없는 것들을 알고 있다고, 내가 안톤 옐친 엄마도 아닌데 왜 이런 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우스갯소리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은 내가 알아갈 얘기들이 없다. 안톤 옐친은 이제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들은 이제 과거의 기록으로 정지되어버렸다. 이걸 생각하면 나는 너무 끔찍한 심정이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이제 겨우 27이었는데. 그를 두고 명복을 빈다는 말을 이렇게 빨리 쓰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기에 이 말은 도저히 할 수 없다. 며칠 전만 해도 너무나 당연하게 물결 표시로 남아있었던 그의 이름 뒤에 사망 날짜가 붙은 것도 견딜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이렇게만 적어두려고 한다. 1989년 3월 11일에 태어난 안톤 옐친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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