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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브는 추한 단어입니다

  내가 헤퍼에게 그 말의 진의를 묻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존경받는 노동계급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사라진 거에요. 그들은 열망이 있었고, 사회가 그 열망을 충족시켜줬거든요." 그들은 사회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그들은 "대학에 갔고 화이트칼라 전문직 종사자가 되었으며 그래서 중간계급이 되었다."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수백만의 사람들 또는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까지 이런 주장에 들어 맞느냐는 문제 제기는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헤퍼에 따르면 영국 사회에는 두 주류 그룹이 있을 뿐이다. "그런 종류의 존경받을 만하고 소박한 환경을 대대로 누리는 가정은 더이상 없어요. 그들은 복지국가의 식객인 하층계급이 되었든지 아니면 중간계급이 되었죠."

 이것이 바로 헤퍼의 시각에 비친 사회의 모델이다. 그에 따르면 한편에는 중간계급이, 다른 한편에는 구제불능의 쓰레기(열망은 물론 열의조차 없는 노동계급)가 존재한다. 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구축되었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 도대체 왜 그걸 알아야 한단 말인가? 결국 이런 견해를 쏟아내는 저널리스트들이란 자신들이 깎아내리는 사람들과 어떤 접촉도 하지 않는다. 헤퍼는 뼛속까지 중간계급 출신인 인물로 자기 아이들을 이튼에 보낸 사람이다. 어느 순간 그가 덧붙인다. "나는 하층계급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그러면서도 그는 잘 모르는 하층계급을 물어뜯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차브'라는 말을 옹호하면서 주장하기를, 노동계급은 전혀 악마화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차브'는 그저 반사회적 훌리건이나 폭력배를 지칭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건 좀 문제다. 우선, 싫어도 그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확실히 노동계급이기 때문이다. 2005년 '차브'라는 말이 처음 콜린스 영어사전에 등재되었을 때, 그 말은 '캐주얼 스포츠 복장을 한 젊은 노동계급'이라고 돼 있었다. 그때부터 이 말의 의미는 상당히 확대되었다. 급기야 차브가 '공영주택에 거주하는 폭력적인 사람들(Council Housed And Violent, CHAV)'을 뜻한다는 유명한 신화까지 만들어졌다. 많은 경우 그 말은 신중하고 우아한 부르주아와 달리 소비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조잡하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돈을 쓰는 노동계급을 향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차브>, 오언 존스

 나는 오언 존스의 패기 넘치는 저서 <차브>를 꼼꼼하게 정독하기 전까지는 '차브'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다. '차브'라는 말이 있는지도 몰랐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하지만 저 단어가 2015년에 개봉한 <킹스맨>의 주인공 엑시 언윈를 묘사할때 사용되자 금방 감을 잡을 수 있었는데, 영국 사회 전반에 대해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이 있지도 않은 외국인인 내가 이 단어가 묘사하는 캐릭터를 보고 어느 계층을 말하는지는 대충 알겠다, 라고 감이 왔다는 것, 그러면서도 영국이 이런 특정 계급 때리기를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해 온 탓에 이 단어가 딱히 비하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에는 뭔가 아주, 아주 심란한 구석이 있다. 이 단어를 더 알아보기 위해 찾아 읽었던 <차브>에서 오언 존스는 이 심란함을 깊게 파헤치면서 더 많은 영국인들에게 좀 더 심란하기를 강력하게 촉구하는데, 읽다 보면 결코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에 뺨을 한대 맞는 기분이 드는 좋은 책이다. 줄여 말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내용이지만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오언 존스는 <차브>에서 1. 대처때부터 시작된 정부 차원의 일자리 파괴가 노동 계급의 자부심과 경제력을 동시에 박살냈고 2. 그 결과로 등장한 여러가지 문제들은 극단적 사례들이 전체의 문제로 확대 해석되어 되려 노동 계급 전체를 비난하는 근거들로 사용되었으며 3. 결코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계급 전쟁은 끝났으며 모두가 중간 계층 이상이라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계속 심어주고 있고 4. 이러한 현대 영국 사회 특정 계급 악마화를 지적하고 비난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이유는 '백인' 노동계층의 이야기는 인종차별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서 이들을 '무식하고 인종차별이나 하는 사회의 쓰레기' 식으로 비난하는 것을 정당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임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외국인인 내가 보기에 애초에 영국인이 '계급 전쟁은 끝났습니다. 우리 모두 중간 계층이죠.' 라고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한국인이 '한국인은 단일 민족이라서 인종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는 거랑 비슷하게 미친 소리처럼 들리는데 실제로 저런 말을 하는 한국인도 많이 있으니까 역시 그렇게 미친 소리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그렇겠지만, 오언 존스만이 이런 위에서 밑으로 행해지는 일방적 계급 때리기가 역겨운 유일한 영국인은 아닌 것 같다. 신선하고 발랄하다는 평과 끔찍하게 생각 없고 계급주의적이라는 평을 동시에 받은 영화 <킹스맨>에서 영국인들이 흔히 '차브'라고 할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캐릭터화한 주인공 엑시 언윈을 연기했고 그 전에는 <The smoke>라는 티비 드라마에도 ASBO* 라는 별명을 가진 노동 계층의 문제 많은 젊은이를 연기했던 배우 태론 애저튼은 킹스맨이 개봉하기 전에 이미 '차브'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표한 적이 있었다. <킹스맨>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거지 별로 계급주의적인 건 아닌 것 같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내가 '차브'라는 단어가 가진 비하적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오언 존스의 <차브>까지 읽게 한 계기 중 하나가 이 인터뷰였으므로 여기에 기록해둔다. 태론 에저튼이 킹스맨으로 제대로 영화판에 데뷔한지 1년 밖에 안 됐는데 벌써 나에게 <청춘의 증언>과 <차브>라는 좋은 책들을 두 권이나 읽게 하다니 정확히 뭘 줘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상 같은 걸 주고 싶다. 로얄 라이브러리언 컴패니언 어워드 그런 거 어디 없나.

Q:  당신은 <The Smoke>에서는 ASBO라고 불리는 캐릭터를 연기했었는데 이번에도 엑시라는 캐릭터를 맡았다는 건 흥미로운 것 같다. 영화평과 기사들에서 엑시를 '차브'라고 묘사하는 걸 봤는데,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서 쓰고 있지만 이 말이 노동 계층을 악마화시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신은 엑시를 '차브'라고 부르겠는가? 그 단어를 사용하는데 거부감이 있는지?

A: 이건 좀 모욕적인 표현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이 단어가 상당히 추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아주, 아주 게으른 일반화이기도 하고. Plan B(벤 드류)가 이 단어의 뜻이 '공영주택에 사는' (Council House and something**) 뭐 그런 의미라고 말한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무조건 반사회적일거라고 생각하다니 너무 심한 일반화 아닌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단정짓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다. ASBO와 엑시는 둘 다 매우 입체적인 캐릭터들로 비록 자신을 잘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선량한 사람들이다.

내 생각에는 우리는 이제 '차브'라는 단어를 어휘에서 아예 없애버리기 시작해야할 것 같다. 우리가 더 이상 사람들을 'poof***'라고 불러대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그건 옳은 행동이었다. 난 '차브'라는 단어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단어는 서로 다른 다양한 부류의 수많은 사람들을 묶어서 묘사하는 게으르고 비하적인 표현이다.

*ASBO - Anti-social behaviour order의 줄임말로 1998년 토니 블레어가 내놓은 반사회적 행동 방지법. 처음부터도 사회적 편견을 강화한다는 비판이 있었으며 반사회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일삼는 노동 계층의 젊은이들을 타겟으로 하여 단속하기 위한 법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위의 인용에 나와있듯이 CHAV는 Council Housed And Violent(거주하는 폭력적인 사람들)이라는 일종의 썰이 있다고 한다. 에저튼은 이 인터뷰를 할때 앞부분까지만 생각이 난 것 같다.

***poof - 남자 동성애자를 비하적으로 부르는 말

**** 인터뷰 전문은 여기에. 2015년 1월 30일에 한 인터뷰로 아직 킹스맨도 개봉전이라 Eggsy 스펠링도 틀리게 적어놨지만 읽어볼만한 좋은 내용이 많다.


#차브 #태론에저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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