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Game changer


존 조가 2009년 7월 3일에 APA (Asia Pacific Arts)와 가졌던 긴 인터뷰인데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왔다. 원문은 여기에. 트렉 1편이 막 개봉했을때 나온 인터뷰로 나도 한창 존조에게 빠져있던 시기라 열심히도 번역해서 옮겨두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보니 너무 길어서 내 스스로 가상하기까지 한데, 여하튼 재밌는 인터뷰입니다.

나는 1994년 봄 UC 버클리에서 존 조를 처음 만났다. 우리는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때마다 나는 그가 따뜻하고 친근하며 생각이 깊은 - 쉽게 응원하고 싶어지는 -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곤 했었는데 결국 그는 그 이후 곧 여러 사람들로부터 응원을 받을 만한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존은 1994년 맥신 홍 킹스턴의 <여전사> 를 바탕으로 한 연극에서 처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3년이 지난 후 "Class of 1997" (1997년에 등장한 혁신적인 네 편의 아시안 미국인 영화) 의 가장 중요한 배우들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그는 Chris Chan Lee의 <Yellow> 에서는 작은 역할을 맡았지만 감독 경험이 처음이었던 Quentin Lee과 Justin Lin의 <Shopping For Fangs>에서는 좀 더 비중이 큰 역을 연기했다. (그 해의 다른 두 중요한 작품은 Rea Tajiri의 Strawberry Fields와 Michel Idemoto/ Eric Nakamura의 Sunsets 이다.)

1997년이 존 조에게 있어 "아시안 미국인으로서의 해" 였다면 99년은 그의 "미국인으로서의 해" 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네트 빙의 캐릭터로부터 집을 소개받는 역할로 샘 맨데스의 <아메리칸 뷰티>에 등장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이 없겠지만 선정적인 십대 코미디물인 <아메리칸 파이> 에서 존은 M.I.L.F.* 라는 짧은 약어를 미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속어에 포함시키는데 도움을 줬다. 만약 그의 연기 생활이 거기서 끝이 났다고 해도 그는 최소한 " The MILF Guy" 라는 이름은 얻었을 것이다.

대신에 존은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시안 미국인 배우가 되었다. 현재 그는 두 개의 중요한 작품에 참여중이며 - <해롤드와 쿠마> 시리즈 (곧 3편이 나올 예정)와 조지 타케이의 자리를 물려받아 술루로 등장중인 새로운 <스타 트렉> 시리즈 - 이번 가을에 ABC에서 시작할 예정인 <플래쉬 포워드> 라는 새로운 티비 시리즈에도 참여했다. APA를 대표해서 나는 존에게 그의 훌륭한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BEARS* 화이팅 !

* MILF - Mother I'd like to fuck. 섹시한 엄마라는 뜻의 속어.

* Bears = UCLA의 마스코트.


APA : 어릴 적부터 연기가 하고 싶었나

존 조 : 나는 한 번도 내가 연기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배우가 되는 꿈을 꾸었던 기억은 없다. 한국에서 그 곳의 영화 제작자들과 함께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배우들의 세계에서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이 존재감이 있는 이유와 왜 다들 우리에게 그렇게 주목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날 우리가 내린 결론은 나의 세대는 - 나는 72년에 한국에서 태어나 78년에 미국으로 왔는데 - 자랄 때 케이블 티비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 티비 프로그램들을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젊은 층 - 80년대와 90년대에 태어난 1.5와 2세대 한국계 미국인들 - 은 한국 티비 프로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고 실제로 매일 밤 그런 프로들을 보면서 자라났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이 세대의 많은 이들이 한국의 대중 문화를 더 좋아하고 한국 음악 CD를 산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은 한국인 댄스 그룹이나 힙합 아티스트들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느꼈겠지만 우리 세대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들에게 그것은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APA : 흥미롭다. 나는 한 번도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 역시 72년에 태어났는데 우리는 정말로 아시아의 대중 문화나 미국 대중 문화 속의 아시아인들에게 노출될 기회가 없었다. 이 대화에 적절하게 들어맞는 예인 술루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하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오늘날의 십대들과는 달리 예전에는 아시아 미디어의 영향력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존 조 : 기술의 발달이 이런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것 같다. 케이블 티비의 발달 덕분에 여러 가지 것들이 태평양을 가로질러 사람들의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APA : 당신의 아버지는 목사셨다고 들었다. 종파가 무엇이었나?

존 조 : Church of Christ (그리스도의 교회) 라는 종파였다.

APA : 내가 아는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 친구는 자라면서 교회를 다녔다. 주말이면 노래 부르기나 악기 연주등의 공연들이 계속됐다고 들었는데 당신 아버지의 교회도 그런 분위기였나?

존 조 : 그렇지는 않았다. 교회 내에는 어떤 악기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었다. 신약에서 악기를 금지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APA : 그럼 오르간이나 기타도 없었겠는데?

존 조 : 그 교회는 그런 것들을 모두 오락 활동으로 여겼다. 교회는 오락 활동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우리는 성가대도 없었다. 신도석에서 다 함께 노래를 불렀지, 누군가 앞으로 나가서 독창을 한다든가 특정 사람들에게만 조명이 비춰진다든가 하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APA : 고등학교에서도 연기를 했었나?

존 조 : 좀 까불거리는 편이긴 했지만 연기는 한 적이 없었다.

APA : 이걸 안 물어볼 수가 없다. 글렌데일의 후버 고등학교에서 에바 멘데스의 2년 선배였던 걸로 알고 있다. 조금이라도 알고 지내던 사이였나?

존 조 : 전혀 모르는 사이었다. 운이 없었지. (웃음)

APA : 좀 더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건 언제였나?

존 조 : 버클리에 다닐때였다. 전에도 한 번 한 적이 있는 얘기긴 한데 이게 진짜 있었던 일인지 나도 이젠 모르겠다. 얼마 전에 <투나잇 쇼>에 나가게 됐는데 프로듀서가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는지를 물어봤었다. 그들은 쇼가 시작되기 전에 항상 제이와 인터뷰를 미리 함께 검토하는데 제이가 이 얘기를 믿지 못하겠다는 거다. "너무 귀엽다" 나 (웃음) 하지만 내 기억에 따르면 이건 사실이다. 나는 대본 팀에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 댄 권이라는 친구다 - 내 몸무게랑 키를 물어보더니 " 아파서 연극에서 빠진 애가 있는데 니가 옷이 맞겠다 " 고 했던 게 시작이었다.

APA : 제이 레노의 못 믿겠다는 말에 스스로의 이야기가 의심스러워졌다는 건가?

존 조 : 그렇다 ! 확실히 너무 귀엽게 들리는 이야기긴 하다. 게다가 내 생각에도 허리 치수나 셔츠 사이즈 대신에 키랑 몸무게를 물어봤다는 게 좀 말도 안 되게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그 친구가 워낙에 좀 극적인데다 엉뚱한 구석이 있었던지라 아주 이상하게 느껴지긴 않는다. 여하튼 그게 내 기억이다.

APA : 연기의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꼈는지?

존 조 : 나는 무엇보다 리허설이 좋았다. 우리는 Zellerbach Hall 밑에 있는 7번 방에서 리허설을 했었는데 지하에 있는 그 암실에서 나는 자궁 속에 있는 듯한 안전함을 느꼈다. 나처럼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다른 배우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다. 그들은 모두 나처럼 재밌고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이었고 우리 사이에는 동질감이 있었다. 내가 리허설을 할때마다 느끼는 흥분감은 다른 사람들이 요리나 음악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하나의 과제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그런 느낌인 것이다. 나는 다른 모든 것은 잊어버린채 그 암실로 들어가서 문제 - 대본 상의 문제- 들을 해결해나가는 리허설이 즐거웠다. 왜 안 될까, 왜 이 대사가 잘 안 될까? 한 번 해 본 다음에 해결책을 찾아보자. 이런 것들 말이다.

APA : 실제 공연을 할때쯤에는 이론상으로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한 후겠다.

존 조 : 그것이 다들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영화에 비해 연극이 좋은 점이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는 거다. 매일 밤마다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몇 주 동안 더 주어지는 것, 그것이 내가 연극에서 느끼는 매력이다.

APA : 코미디와 드라마 중 어느 것에 더 끌렸는지 ?

존 조 : 나에게 첫 두 대사가 주어졌던 연극은 드라마였는데 그 후에 오디션을 봐서 정말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작품은 코미디였다. Jeannie Barroga가 쓴 <Eye of the Coconut> 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아주 흥행이 잘 됐었던 걸로 기억한다.

APA : 드라마 역시 상당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믹한 역할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는데, 계획한 것인가 아니면 우연에 의한 것인가?

존 조 : 일부는 완전히 우연에 의한 것이다. <아메리칸 파이>가 모든 것의 시작으로 그 영화를 만든 감독과의 인연으로 그런 류의 영화들을 더 찍게 되었고 <해롤드와 쿠마>의 작가들이 나를 원한 것도 그 영화 덕분이었다. 상황이 어쩌다 보니 그렇게 흘러갔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내가 코미디를 좋아했던 이유가 따로 있긴 했는데, 그 중 하나는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내가 이 일을 시작할때만 해도 동양인들은 코미디를 못 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80년대에는 고정관념들이 상당히 악의적이었는데, 동양인들에게는 샌님 (nerd) 등의 모욕적인 고정관념이 아주 강하게 못 박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동양인들을 조롱하던 것으로부터 그들을 아주 반듯한, 그러니까 몸 조심을 하라고 말해주는 아주 친절한 간호사라든가 경찰이라든가 하는 스토리 전개상 필요가 없는 인물들로 그려내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불평을 듣지 않으려고 몸을 너무 사리게 된 거지. 나는 이런 캐릭터들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기 때문에 코미디를 할 때만큼은 동양인이라고 얌전하게 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좋았다. 코미디는 동양인들에 대한 이런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고정 관념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고 내가 정말로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역들을 더 많이 제공했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나는 그런 역들이 식료품 점의 아들 모씨 같은 역보다는 훨씬 더 흥미롭다고 느꼈다.

APA : 동양인은 코미디를 못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니 흥미롭다. Pat Morita가 죽고 난 후 나 역시 이것에 대해서 종종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는 원래 코미디 배우로 잘 알려졌었지만 미야기 사범이라는 역이 그런 인식을 바꿔 놓지 않았나.

존 조 : 흥미롭다. 나는 그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해피 데이즈>의 알이 떠오른다. 내게는 그 캐릭터가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APA : 대학을 다니는 동안 리허설을 즐겼다는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더 이상 지하 암실에서 연습을 하는 일이 없어진 지금에도 리허설의 그런 사회적인 면이 여전히 당신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나?

존 조 : 글쎄, 우선 이 얘기부터 하고 넘어가야겠다. 티비 쇼나 영화를 주로 찍게 되면서 리허설의 양이 많이 줄어들다보니 예전과 같은 느낌은 아니다. 대학에서는 우리는 일종의 그룹이었다. 좀 별나고 촌스럽긴 했지만 그룹은 그룹이었고 내가 느꼈던 친밀감은 그 나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전사>에서 처음으로 진짜 역할을 맡아서 보스턴으로 갔던 게 기억이 나는데, 극단에서 원룸 아파트를 얻어주고 봉급도 준다는 거다. 나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독방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 이게 꿈이야 생시야. 그러니까 보스턴에 가게 된데다가 알아서 방도 얻어주고 거기다 쥐꼬리만한 봉급까지 준다고? "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그때 내가 운이 엄청나게 좋다고 느꼈다. 지금이야 어처구니없이 들리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끝내주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건 다 그 나이때니까 가능했던 거다.

APA : <여전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원작을 좋아했었나?

존 조 : 좋아했었다. 그 연극을 하면서 내가 정말로 연기에 흥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난 반이라는 심정이었는데, 이 연극은 내가 원작의 팬이었기 때문에 흥미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연극을 한다는 것은 원작의 텍스트를 연구해볼 수 있는 또 다른 방식 중 하나였고 나는 이 방식이 훨씬 더 흥미롭다고 느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든 정치적인 이슈들은 우리가 실제로 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것들이었다. 강의실에서 나눌 법한 얘기들을 우리는 실제로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이론과 실제를 대조할 경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신기하고도 드문 일이었다.

APA : 문학 비평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연기를 하면서 이 작품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게 됐는지 궁금하다

존 조 : Frank Chin-Maxine 토론을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내가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여전사>는 문화적 진정성에 대해 엄청난 논란을 불러온 작품이었다. 우리가 에세이나 기사등을 통해서나 접하고 있던 문제들이 갑자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에 토론을 하고 있었다. 연극의 각본은 백인 여성이 썼었다. 감독 역시 일본을 방문한 후에 아시아 연극 무대에 매료된 백인 여성이었다. 배우들 중에는 일본계 미국인, 중국계 미국인이 섞여 있었는데 억양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그러니 이 진정성에 대한 토론 - 우리는 매일 작은 결정들을 내림으로써 이것을 몸으로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무대 장치 같은 것만 해도 배우들끼리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 토론을 하곤 했었다.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매일매일 실제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었고 그때까지는 글로나 읽어오던 것들을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기술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APA : 투어가 끝난 후에 LA로 와서 웨스트 헐리우드에서 교사를 하게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존 조 : 7학년과 10학년 두 반을 맡아 가르쳤었다. 만족스럽긴 했지만 매우 힘든 해였다.

APA : 당시에 풀 타임 배우로 일하고 있었나?

존 조 : 밤에는 East West Players 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여러모로 힘들었었다. 지금 다시 선택하라면 반만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괜찮을 만한 일을 고를 것이다. 웨이터가 되던지 했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영문학 학위도 있겠다, 교사를 해도 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했었다. 굉장히 힘들더라. 그럭저럭 해냈다고는 생각하지만 또 모르지. 30명의 애들이 있다고 치면 30개의 서로 다른 읽기 수준이 있는 셈이니. 요즘 같은 때 교사는 정말 힘든 일이다. 학생들은 서로 다른 학교에서 몰려오지, 이사도 다니지, 하루에 30개의 강의 계획을 짜야 하지, 힘들었다.

APA : LA 통합 교육구*내에서는 더 그랬을 것 같다

* LA 통합 교육구 (LAUSD) - 켈리포이나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교육 시스템

존 조 : 나는 사립학교에서 일했는데, LAUSD 내의 학교들과는 달리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건 내가 공립 학교의 옹호자라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별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대학을 갓 나온 사람에게 공부를 더 시키지도 않고 바로 학생들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더라.

APA : 교사 일과 East West Players 에서의 공연 외에도 티비와 영화에서 작은 역들을 맡기 시작했었는데, 돈 때문이었나 아니면 연극 뿐만 아니라 영화와 티비 쪽에도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나?

존 조 : 정치적인 면에서는 나는 내가 영화나 티비에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를 변화를 생각하며 들떠 있었다. 아시아 (미국인) 극단이 지평을 어느 정도 넓혀놓긴 했지만 이곳은 내가 봤을때는 좀 더 오래된 표현 방식에 더 치우쳐 있었다. 드라마를 통해 아시아 미국인으로서의 우리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려하는 정체성 연극 등이 주가 되고 있었는데 나는 그런 것에는 흥미가 별로 없었다.

나는 연극을 보러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흥미가 있었고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지금까지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연극 무대가 이론상으로 배우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장소인 것은 맞지만 정치적인 면에서 봤을때 나는 연극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 이건 맞는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 그보다는 대부분이 백인이라는 것이 답답했다. 그러니까, 연극은 표 한 장에 75달러이다. 이건 다시 말해..

APA : 대중 문화는 아닌 거겠지.

존 조 : 그렇다. 브로드웨이에 흥분한 관광객들이 몰려가서 미스 사이공을 보거나 하는 것, 그런 것에는 난 흥미가 없었다.

APA : 1997년은 아시아 미국인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분수령이 되었던 해이다. 두 편의 중요한 내러티브 영화, <Shopping for fangs> 와 <Yellow>에 출연했는데, 어떻게 이 역들을 맡게 된 것인가? 원래 감독들과 알고 지낸 사이었나 아니면 공개 오디션을 거쳤나?

존 조 : 공개 오디션이었다고 생각한다. East West Players에서의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 같긴 하다.

APA : 둘 중 어떤 것을 먼저 찍게 되었는지?

존 조 : 사실 두 영화는 동시에 촬영을 했다. 감독들이 전화로 내 스케쥴을 맞춘다고 고생을 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한 영화를 찍다가 곧 돌아서서 다른 영화를 찍는 식이었다. 정신 없는 여름이었다.

APA : 찍다가 자기도 모르게 잘못된 역을 연기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나?

존 조 : 두 역을 그렇게 다르게 연기할 정도로 실력이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웃음) 농담이고, 조금 헷갈리긴 했었다. 어렸고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그냥 이것 찍다가 저것 찍다가 하면서 원래 다 그런 건 줄 알았다. 아주 재밌는 해였지.

APA : 99년에 <아메리칸 뷰티>와 <아메리칸 파이>에 출연했던 얘기로 넘어가보자. MILF 라는 단어가 주류 미국 문화의 그렇게까지 큰 부분이 되어갔던 과정이나 그 영화와 당신의 역할이 그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는 점에 나는 매우 놀랐었다. 그때를 시작으로 그 간단한 단어가 대중 문화에 그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에 당신도 놀랐는지 궁금한데.

존 조 : 희한한 일이긴 하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그 영화에 나왔다는 걸 기억한다는 자체를 앞으로도 절대 이해 못 할 것 같다. 겸손을 떨자는 게 아니라, 정말 이해가 잘 안 되서 하는 말이다. 아마 새로운 성적인 분야가 개척되었다든가, 그런 것 때문이겠거니 하고 있다. 게다가 그 말은 원래 있던 말이었다. 하지만 <아메리칸 파이>가 나왔던 여름에 <Pavilion of Women> 촬영차 중국에 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던 건 기억을 하는데, 박스 오피스에서 흥행을 했던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상태에서 돌아왔더니 사람들이 날보고 "MILF" 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다. 그것도 볼때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더라.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오디션조차 보지 않은 역이라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 당시에 나는 다른 작업을 하고 있어서 오디션을 보러 갈 수가 없었는데 캐스팅 부서에 있었던 친구가 " 사정 얘기해봤는데, 어차피 쓸 생각이었다."는 거다. 원래는 재즈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를 역으로 뽑은 거였는데 - 버클리에서 있었던 일이랑 묘하게 비슷하게도 - " 이 역 맡은 사람이 못 하겠다는데. 당신이 해볼래요?" 라고 물어봤는데 그게 MILF를 말하는 역이었다. 나는 "와, 심한데" 라고 생각했었지만 어쨌든 하기로 했었던 거고. 그러니 이 모든 일이 나에게는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APA :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이제 역사가 되었다, 뭐 이런 건가

존 조: 그런 셈이지. (웃음) 연기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서 쇼타임에서 제작했던 <The Tiger Woods Story> 라는 영화를 찍었던 게 생각이 난다. LeVar Burton이 감독을 했었는데 같이 세트장으로 가면서 그가 얼마나 많은 문화적인 중요성을 띈 작품들에 참여를 했는지 생각하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Roots>,<Reading Rainbows>,<Star Trek>까지. 그리고 이제 내 경력을 되돌아보니 묘하다. 더 상스러운 것들도 많이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야말로 모든 중요한 변화를 불러왔던 장본인이었고 <해롤드와 쿠마>도 비슷하게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그리고 이제 <스타 트렉>에 출연하게 되었다니, 돌이켜보면 이상한 경력이 아닐 수 없다.

APA : 흥미롭다. 내가 바로 다음에 물어보려고 한 질문이 바로 이건데, 아주 성공적이었던 프랜차이즈들에서 확고하게 입지를 다지긴 했지만 이력을 살펴보면 영화나 티비쇼에 일회성 출연을 한 일도 상당히 잦다. 이렇게 좀 더 작은 역할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역은 무엇인가?

존 조 : <Charmed>에서의 역이 초창기에 맡았던 꽤 중요한 역이었고 연기하면서도 굉장히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APA : 어디서 읽었는지는 잊어버렸는데 - 어쩌면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 누군가 존 조가 <Charmed>에 그것도 로맨틱한 역으로 캐스팅된 것은 정말로 잘 된 일이지만, 유령 역이었기 때문에 여자와 키스를 하는 장면은 없었는데,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한 걸 본 적이 있다. 그 불평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존 조 : 음, 음, 음, 나도 다 들었다. 좀 웃긴 얘긴데, 나는 좀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나의 아시아 미국인들 관객에 대해서 생각하는 편이다.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항상 그래왔다. 내게 들어온 어떤 역, 어떤 오디션에서도 나는 항상 이 역이 아시아 미국인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생각해왔다. 사람들이 좋게 생각할지 아니면 모욕감을 느낄지, 그것이 내가 역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를 결정짓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왔던 셈이다. 이 일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나는 그런 이미지들이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다. 내 손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올거라는 식의 거창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나는 아시아 미국인들의 정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만큼은 적극적으로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는 게 맞겠다. 하지만 재밌는 건,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이 신경을 쓰고 있었던지 간에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면 그들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을 멈추어야 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받아들이고 싶은대로 받아들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까 내가 동양인들은 재미도 없고 코미디나 농담도 못 한다는 선입견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내 생각에 우리는 항상 농담의 대상이었지 농담을 하는 주체는 아니었다. 그런데 몇 주 전에 한국에서 있었던 행사 자리에서 한 기자가 "왜 동양인들은 언제나 웃긴 역할만 맡는 거죠?" 라고 질문을 하더라. 굉장히 예상 밖의 일이었지. 여하튼 뭐가 됐든 간에, 이런 건 통계랑 비슷한 것 같다. 스포츠 통계를 보면 사람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패턴을 보지 않나. 숫자들을 내세워서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지. 그러니까 대답을 하자면, 난 그런 불평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해롤드와 쿠마>만 해도 나는 대체로 긍정적인 묘사였다고 믿지만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겠는가?

APA : 그런 자아 의식이 90년대 초에 버클리를 다닌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하다. 당시 버클리는 정체성 찾기 열기가 상당히 뜨거웠지 않나.

존 조 :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두 개의 <여전사>를 비교해 볼 수 있었던 경험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나에게 연기는 언제나 정치적인 행위였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의 인종에 바탕해 우리가 하는 일에서 패턴을 찾아보려고 할 것이라는 것을 언제나 의식하고 있었다. 이런 건 백인이나 동양인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APA : 인종 얘기가 나온 김에, <해롤드와 쿠마>의 대본을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었는지?

존 조 :작가 중 한 명인 John Hurwitz가 한 파티에서 나에게 오더니 " 당신을 주인공으로 점찍어놓고 쓴 대본이 하나 있는데 읽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거다. 내 기억으로는 그 말을 듣고 뭐냐는 식으로 쳐다봤던 것 같은데, 그게 그전까지는 백인 중에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양인 작가 중에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있었지만 백인은 없었기 때문에, 이빨이 튀어나온 중국인 도자기 상인 역 뭐 이런 역이겠거니 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었다. 꽤나 의심을 했었지. 지금이야 워낙 친한 친구가 됐으니 웃으면서 얘기하는거지만 처음에 읽었을때는 믿을 수가 없었다.

APA : 쿠마 역도 칼 펜을 염두에 두고 쓴 건가?

존 조 :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칼과 이야기가 오고갔긴 했었던 것 같은데 나를 초기부터 점찍어 둔 이유는 실제 해롤드 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쿠마는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얘기를 할 무렵에 <아메리칸 파이>가 나왔었는데 그걸 보고 저게 우리 해롤드다 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해롤드 캐릭터에 대해서는 상당히 확실한 아이디어가 있었던 반면에 쿠마는 아직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APA : 잠깐, 해롤드 리가 실존하는 인물이라는 건가?

존 조 : 그렇다, 작가들의 학교 친구였다. 지금은 변호사이다.

APA : 만나본 적이 있는지?

존 조 : 있다. 몇일 전 우리 애 생일 파티에도 왔었다. 나랑은 친구 사이라서 <스타 트렉> 세계 투어에 파트너로 데려갔었다. 해롤드랑 다니는 건 정말 재밌었다.(웃음) 그는 정말 내 분신이나 마찬가지라서 내가 하루 종일 일하느라고 못 노는 동안 해롤드가 여러 도시들에서 즐기면서 노는 걸 보니까 좋더라.

APA : 아주 흥미로운 상황이 아닐수가 없겠다.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결국은 배껴오는 셈인 사람과 친구라는 것 말이다.

존 조 : 해롤드는 좀 변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훨씬 더 외향적으로 변했다고나 할까. 지금은 파티에 좀 미쳐 살고 그래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 그러니 난 타임 캡슐 속에 보관된 과거의 해롤드를 연기하는 셈이다.

APA : <해롤드와 쿠마>를 탄생시킨 주요 인물들이 동양인이 아니라는 걸 알고 많이 놀랐다. 영화의 유머가 꼭 특정 인종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을만한 건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꽤 그런 면이 있었지 않나. 아시아 미국인 학생들 그룹이 프린스턴에서 파티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내 경험이 생각나 아픈 데를 찔린 기분이더라. 대본이 이렇게 알 사람들만 아는 부분들을 많이 건드리고 있는 점에 대해서 놀랐는지?

존 조 : 놀랐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런 장면들을 특별히 넣었어야 할 동기가 있었더라. 대본을 쓰면서 작가들은 사는 사람이 누가 됐든 간에 캐릭터들의 인종을 바꿔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를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캐릭터들이 한국인과 인도인이라는 사실을 대놓고 강조해놓기 위해 이런 인종적인 부분들을 영화에 포함시켰다나. 스토리를 완전히 어그러뜨리지 않고는 도저히 인종을 바꿀 수가 없게 최선을 다한 것이다. 방어적인 작전이었던 셈이지.

APA : 개봉하기 전에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나?

존 조 : 첫 번째 영화가 나올때는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두 번째 영화는 박스 오피스에서 조금 손해를 본 걸로 알고 있는데 하지만 이 시리즈는 워낙에 디비디 용이라. 디비디가 아주 잘 나갔고 그 부분에서 기대치를 뛰어넘었던 것 같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누구도 2편과 3편이 나올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겠지만 작가들은 다소 어리석다 싶을 정도로 속편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헐리우드에서 자신감 하나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APA : 지난 15년 동안 나왔던 가장 중요한 아시아 미국인 영화들에 상당히 참여를 했었는데, 특히 <Better Luck Tomorrow> 같은 작품 말이다. 하지만 <해롤드와 쿠마>야 말로 그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 그 이유는 이 영화야말로 마침내 주인공들이 두 명의 동양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흥행에 성공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해롤드와 쿠마> 시리즈의 성공이 아시아계 배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불러왔다고 생각하는지?

존 조 : 모르겠다. 내가 남긴 유산에 대해 가장 적절한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 것 같다. 내 친구 중 한 명이 남편이 백인인데, 그가 오디션을 보러갔더니 캐스팅 측에서 "존 조 타입"을 찾고있더라는 얘기를 했던 걸 듣고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긴 했었다. 이 "존 조 타입"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 말은 존 조 타입이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거니까.

APA : badmouth.com의 사람들에게 동양계 미국인 남자 배우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고 했는데.

존 조 :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 주변에서도 더 많은 동양계 남자 배우들이 눈에 띌 뿐만 아니라 광고에서도 확실히 더 많은 동양계 미국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걸 보고 희망을 품기는 좀 웃긴 것 같긴 하지만 동양인들의 얼굴을 내보내고도 물건을 팔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이들의 유일한 목적이 돈을 버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디엔가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정보들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패턴을 내놓는 정보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예술 산업의 상업적인 면에서 봤을때 긍정적인 일이다.

APA :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JJ 에이브람스는 <로스트>를 통해 우리 세대에서는 가장 눈에 띄는 동양인/동양계 미국인 티비 캐릭터들을 창조해냈다. 또한 그는 당신을 <스타 트렉>에 캐스팅했을뿐만 아니라 술루의 캐릭터 역시 업그레이드시킴으로써 의식적이든 아니든 간에 JJ 에이브람스는 이런 변화들을 불러오는데 공헌을 했다.

존 조 : 나 역시 이 문제를 세대와 관련지어서 보고 있다. JJ는 30대 중반으로 확실히 젊은 층에 속한다. 내가 대학을 다닐때는 티비나 영화에 <90210>스러운 묘사가 많았다. 대학 캠퍼스들이 나온다고 해도 동양인은 등장하는 법이 없어 나는 "동양인들은 다 어딜 다니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인공적인 백인 위주의 세상이라고나 할까. 당시에 대부분의 40대에 접어들었을 작가들이 자신의 기억에 바탕을 두고 이상적인 경험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세대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보면 다소 허황된 희망이었지만 지금 보면 내가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던 셈이다. 존과 헤이든은 해롤드 리와 친구 사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에 관한 영화를 만든 것이다. 그들이 봤을때 해롤드는 재밌는 영화가 나올만한 인물이었던 거지. 그리고 JJ 에이브람스는 젊고 내가 만나본 것에 따르면 그에게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친구들이 있다.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엔터테인먼트 쪽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APA : ABC에서 광고를 많이 하고 있는데, <플래쉬 포워드>에 대해 얘기를 좀 해 줄 수 있는지?

존 조 : 2분 17초 동안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정신을 잃고 그동안 자신의 미래를 본다는 것이 쇼의 기본적인 가정으로, 조셉 파인즈와 나는 그 미스테리를 해결하려고 하는 FBI 요원 역을 맡았다.

티비쇼에는 출연하려는 마음이 없었는데 에이전트에서 전화가 와서는 " 이 대본을 지금 보낼게요. 별 건 아니지만 한 번 봐야할 것 같아서요. 당신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인 것 같더라구요." 라고 하더라. 실제로도 흥미롭게 읽었다. 부분적으로는 이 대본을 가지고 제작자인 David Goyer가 쇼를 전개시키려는 방향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던 것도 있었다. 종교적인 양육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 대본이 품고 있는 질문들에는 어떤 종교적/철학적 연관성이 있다고 느꼈다. 미래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스스로의 감각과 경험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 이 모든 것이 초자연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인위적인 현상인지? 그러나 David Goyer는 이런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거창했지만 접근 방식은 훨씬 더 세부적인 것에 집중하는 식으로 쇼는 이 상황이 어떻게 가족과 사람들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내 캐릭터만 해도 곧 결혼할 예정으로 나오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겠는가?

APA : 미스테리한 요소가 있는 게 <로스트>의 후속작 느낌이 많이 나는데

존 조 : 그렇다. 내가 볼때도 로스트가 종영될 상황을 대비해 그 빈자리를 메우려는 것이 ABC측에서 생각하고 있는 계획 중 일부인 것 같다.하지만 우리를 <그레이 아나토미> 앞 시간인 목요일 8시에 넣은 걸 보면 초자연적인 요소보다는 이런 상황이 가정에 불러올 좀 더 개인적인 종류의 딜레마에 좀 더 집중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APA :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번이 세 번째로 출연하는 큰 티비쇼인 것 같은데? <Off Centre>라는 시트콤과 조기 종영된 <Kitchen Confidential>이라는 쇼가 있었다.

존 조 : 방영이 되지 않은 쇼도 몇 개 찍었었다. 내게 정말로 큰 의미가 있었던 쇼가 하나 있었다. <The Singles Table>라는 쇼였는데, 굉장히 신경을 썼던 게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근데 그 쇼가 방영이 취소됐었다. 5개인가 6개의 에피소드를 촬영했었는데 상당히 가슴 아픈 경험이었고 그 일로 너무 기분이 상해 그 이후로는 티비쇼는 계속 피해왔었다.

APA : 무슨 내용이었는지?

존 조 : 결혼식장에서 짝 없이 온 사람들끼리 앉는 테이블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쇼였다. 요즘 들어 나는 어떤 이유로든 나의 현재 상황과 관련이 있는 역들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당시에 나는 누구를 만나고 있었는데, 그 쇼는 주변 사람들은 모두 결혼을 했는데 자신은 애인이 없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 캐릭터는 굉장히 연기하기 재밌는 역이었다. 내가 맡았던 역들 중에서 내 능력을 아마도 가장 많이 시험했던 역이었을 것이다.

APA : 어째서?

존 조 : 진지한 면과 코믹한 면이 아주 흥미롭게 뒤섞여 있는 역이었다. 이혼을 한 캐릭터였는데 파일럿 에피소드에서 전부인이 결혼식에 나타나자 진상을 떠는 장면이 있었다. 그 외에도 결혼식에서 술이 취한 상태로 축사를 한다든지 하는 전형적으로 코믹한 연기들을 해 볼 기회가 많이 주어졌었는데 재밌었다. 대본도 아주 좋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쇼는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APA : <하우아이맷유어마더>와 비슷하게 들리는데, 나는 이 쇼를 처음 봤을때는 성공할 거라고 생각을 못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나가고 있더라.

존 조 :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시트콤은 분명히 제대로 된 엔터테인먼트의 한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티비에 가장 완벽한 건 시트콤이다. 난 한 시간짜리 쇼들은 가끔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요즘 한 시간짜리 쇼들은 잘 만드려는 욕심이 너무 큰 나머지 더 작은 스크린 때문에 대부분의 장면들이 클로즈 업으로 촬영되는 티비라는 작은 상자에는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게다가 방송국에서 지나치게 매력적인 사람들만 캐스팅하라는 압력까지 넣고 있다보니 많은 경우 내 눈에 한시간짜리 티비쇼들은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 나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시트콤은 저녁을 먹기 전에 잠깐 웃고 싶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가장 겸손한 예술 형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미천한 대중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데 나는 자부심을 느끼곤 했었다.(웃음) 나는 시트콤의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웃을 수 있게 하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게 없다는 그런 것 말이다. 매주 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들에게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이런 연재성이야말로 티비에는 가장 적절한 것이다. 그리고 티비 광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결정되는 예술 형식인 3막 구조는 한 시간짜리 쇼에서는 부자연스러워보일 수 있지만 시트콤의 연극적인 상황과는 궁합이 잘 맞는 덕분에 어색하지 않은 것 같다.

APA : 흥미롭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아내와 함께 <로앤오더>를 몰아보면서 한 편 한 편마다 얼마나 제대로 된 서사구조를 갖고 있는지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쇼는 두 개의 30분짜리 쇼가 아주 작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형식이지만 한 편 내에서 관객에게 서사의 결말을 제공한다.*

* <로앤오더>는 한 시간짜리 쇼로, 앞 30분은 형사들이 수사를 하고 뒤의 30분은 검사들이 범인을 고소하는 식으로 되어있음.

존 조 : 굉장히 영리한 방식이다. 그리고 모든 티비 쇼들은 매우 촘촘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소프라노스>에서처럼 어떤 일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놀라면서 불안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소프라노스> 같은 경우에는 러닝타임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한 에피소드가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결말 부분에 꼭 어떤 일이 해결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HBO는 그 정도로 느슨했다. 일들이 일어나기만 하고 끝 부분에 해결되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APA : 혹은 영영 해결되지 않거나.

존 조 : 영영 해결되지 않거나. 좋은 사람들이 살해되기도 했다. 인물들은 권력을 얻었다가 잃기도 했고. 그 쇼는 정말로 혁신적이었는데, 내 생각에 그건 내용보다는 구조면에서 그랬다.

APA : <The Singles Table>이라는 쇼가 방영되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감에 대해 얘기를 했었는데, 일반화의 위험을 감수하고 티비쇼가 영화보다 매체로서나 산업적인 면에서 더 실망스럽다고 느끼는지?

존 조 : 물론이다. 일단 영화를 찍을때는 모두가 한 편이다. 투자한 돈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결과물이 성공적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중간중간 어떻게 홍보를 할 것인지, 편집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에 있어 서로 의견이 부딪히는 경우는 있겠지만 대체로 모두 영화가 흥행이 되기를 원한다. 티비쇼를 찍을때 특이한 점은 당신을 고용하고 쇼를 주문하는 사람 - 그러니까 방송국이 - 당신의 쇼가 얼마나 좋은지 말해주는 사람이 바로 쇼를 취소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배신감을 느끼지 않기란 쉽지 않다. 연극이나 영화와는 다르다. 쇼의 뒤에서 돈을 대는 사람들이 " 넣은 돈을 못 뺄 것 같으니 투자한 다른 쇼에 기회를 줘야겠다" 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같은 편이나 관객을 찾으려는 내부적인 정치 활동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복잡할 수밖에.

APA : 굉장히 은밀하게 진행되는 과정인 것처럼 들리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예 모르는 경우도 많겠다.

존 조 : 불투명한 과정인 게 맞다. 웃긴 건, 이런 문제들은 내가 이 일을 시작할때만 해도 겪게 될 거라고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난 지금 이런 문제들에 목 끝까지 잠겨있다. <해롤드와 쿠마> 홍보만 해도, 정치적으로든 인종적으로든 내용이 뭐였는지는 잊어버린지 오래됐지만 광고업주들과 부딪혔던 것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APA : 무슨 일이 있었길래?

존 조 : 영화 속에 담겨있던 인종 유머를 보고 홍보측에서 "<아메리칸 파이>에 등장했던 아시아인과 <반 윌더>에 나왔던 인도인이 출연하는.." 라고 홍보를 하고 싶어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해놓고 나에게 동의를 얻기 위해 보냈는데 나는 "마음에 안 든다" 라고 했었다. 이유를 물어보길래 설명을 해줬지만 모두가 그 홍보 문구가 영화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나를 홍보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에게 왜 내가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난 "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계속 인종 차별을 비웃으려고 하고 있지만 이 홍보 문구를 본 관객들을 이런 농담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라고 했고 그래서 그들은 단어를 좀 바꾸고 계속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런 저런 버젼들을 가져왔지만 결국은 다 같은 내용이었다. 결국 나는 " 이래서는 내 마음이 바뀔리가 없다. 이것저것 건드려 보고는 있지만 결국 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인데 이 아이디어를 어떤 버젼으로 내놓아도 내가 기분이 좋을리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이 일로 내가 기분이 상해서 홍보에 나서지 않을까봐 걱정하고 있는 거라면 그럴 일은 없으니 안심해라. 영화를 홍보하는 것은 내 의무 중 하나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기분이 나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밀고 나가거나 아니면 내 기분을 낫게 하기 위해 내용을 바꾸는 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그러니 그 내용을 가지고 내 기분을 낫게 하려는 건 그만 둬라." 라고 말했다. 결국 그들은 그 아이디어를 밀어붙였고 지금 뒤돌아봤을때 비록 영화가 매우 자랑스럽긴 하지만 그런 일은 쉽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APA : 약간 딴 얘기긴 하지만 첫 번째 영화가 닐 패트릭 해리스의 놀랄만한 부활을 많이 도왔다고 생각하는지?

존 조 : 글쎄, 닐부터도 인정하는 사실이니까. 그는 그 사실을 전혀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닐은 <해롤드와 쿠마> 없이는 <하우아이맷유어마더>에서의 역을 맡지 못했을 것이며 그 역이 그의 커리어의 판세를 바꾸어놓았다고 얘기한다. 그는 굉장히 재능이 있을뿐만 아니라 아주 흥미로운 사람이다.

APA : 대본에서 처음 닐이 등장한 장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존 조 : 굉장히 웃기더라. 정말 이 사람을 불러올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했었지.(웃음) 과거의 유명인사를 옳은 방향으로 그려내고 있었고 아주 영리한 접근방법이라고 느꼈다. 특이하면서도 눈속임을 하려는 느낌도 없었고.

APA : <스타 트렉> 얘기를 해보자. Treckmovie.com과 가진 인터뷰에서 (아주 좋은 인터뷰였다고 생각하는데) 술루 역을 맡기 전에 약간 슬럼프에 빠져있었다고 한 걸 봤다. 그것에 대해서 조금 얘기를 할 수 있는지.

존 조 : 모든 게 시들한 상태였다. 전에는 그런 식으로 느껴본 적이 없었다. 대본을 받아도 흥미도 안 생기고 오디션을 가서도 준비를 안 한 탓에 망치곤 했었다. 들어오는 역들에 도무지 흥미도 안 생기고, 스스로에 대해 걱정도 슬슬 되는 그런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스타 트렉>이 들어온 것이다. 어떻게든 이 기회를 잡아야겠다 싶더라. <스타 트렉>은 무엇보다도 연기에 대한 나의 흥미에 다시 불을 붙인 작품이었다.

APA : 어째서?

존 조 : 내용적인 면에서 다른 역들과 달랐다. 나는 코미디 전문 배우가 되어 가는 참이었지만 그것에서 빠져나오기란 어렵지 않았다. 다른 역들이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챗바퀴에 갇힌 기분이었다. 일시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내가 영화에서 맡은 역들은 대부분이 내가 어릴 적에 볼 수 없었을 만한 것들이었고 어쩌면 그래서 <스타 트렉>에서의 역이 끌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아이, 어린 존 조를 들뜨게 한 것이다. 우주에서 뭔가를 하는 것은 어릴 적부터 죽 품어왔던 환상이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정치적인 목표이기도 했다. 내가 정말로 찍어보고 싶었던 것은 서부극이었지만 아시아 미국인으로서 서부극을 찍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스타 트렉>은 미개척지로서 내게 완벽했다. 시리즈의 역사적인 의미 역시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나는 단순한 프로젝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작품에 출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스타 트렉>은 어느 순간 눈 앞에 나타나서는 내가 미처 의식하고 있지도 못했던 내 속의 어떤 부분들을 일깨웠고 나는 열정적으로 빠져들었다. 실제로 연기에 접근하는 방식 역시 이전과는 달랐다. 대사를 외우는 것보다는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체력 훈련은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처음에는 술루를 어떻게 연기해야할지 몰랐지만 일단 체력 훈련을 시작하자 그런 건 상관이 없었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가 되었고 나중에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대사를 외웠다. 그전과는 다른 방식이었고, 그건 당시의 내게는 필요한 것이었다.

APA: 시리즈가 영화보다 더 큰 것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스타 트렉>은 다른 어떤 문화적인 시금석들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누구든지 이 유명한 역을 맡는 순간 이 역이 지금부터 영원히 그 사람의 커리어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거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지 궁금하다. 컨벤션등에 참여할 예정인지?

존 조 :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그냥 결과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이 안 쓰이더라. 전 세계를 돌면서 홍보를 하기 시작하자 얼마나 이 일이 큰 일인지 감이 오긴 했지만 그 전에는 정말 별 생각이 없었다. <스타 트렉>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난 전혀 모르고 있었다.

APA : 이제 알게 됐으니 어떤 생각이 드는지?

존 조 :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SF 장르 전반에 대해서도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떤 특정한 상황의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의 세계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라고나 할까. <스타 트렉>은 단순히 생각해보는 정도를 넘어서서 철학의 수준이고,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세계관이라고 할까. 그래서인지 이들은 열정적일수밖에 없다. 매우 열정적이다. 내가 잊고 있었던 또 한 가지 사실은 이 시리즈가 많은 세대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스타 트렉>은 꽤 오랜 시간동안 존재해왔던 시리즈고 이제는 10살짜리들이 영화를 통해 접하고 있다. 우리 영화는 존재하고 있는 다른 모든 시리즈들에게까지 팬 층을 넓혀주었다.

APA: 조지 타케이에 대한 존경심이 술루 역을 맡는데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배우 혹은 공적인 인물로서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존 조 : 어릴 적에 <스타 트렉>을 처음 봤을 때는 배우들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티비에 동양인이 나온다, 그런데 실망스럽지 않다 이런 느낌이었지. 그것은 어릴 적에 내가 티비를 시청하면서 드물게 경험했던 기쁜 순간들 중 하나였다. 다른 방에 있는 식구들 모두를 불러서 보다가 티비 속의 배우가 말도 안 되는 억양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스테레오 타입을 연기하는 바람에 결국은 불평을 하고 실망을 하게 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스타 트렉>만큼은 예외였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 나의 유년기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어떤 것과 나의 커리어를 연결시킨다는 것은 내게 있어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APA: 캐스팅이 확정된 후에, 조지 타케이와 캐릭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는지?

존 조: 나는 본능적으로 술루 캐릭터와는 연결되고 싶었지만 조지 타케이와의 연기와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건 배우의 자존심 같은 거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하는지 묻지 않는다. 나는 크리스 파인에게 커크를 연기하기 위해 뭘 어떻게 할 거냐고 묻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상대방의 연기를 보고 반응을 하는 거지.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 사람에게도 이건 어느 정도 같은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지에게 편지를 쓰긴 했는데, 나는 그를 한 사람으로서 알고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East West Players를 통해 서로 알고 있는 사이었다. 만남은 좋았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매우 긴장하고 있었는데 서로 아는 사이었다는 점이 도움이 좀 되었다. 조지는 매우 멋졌고 충고도 해 주었는데, 희한하게도 그전까지는 나는 진 로든베리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쇼나 캐릭터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봤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창조한 사람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지 타케이가 쇼의 비전과 로든베리의 목표들을 나에게 상기시켜주었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캐릭터들보다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APA: 밴드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를 짓고 싶다. 오랫동안 <Left of Zed>라는 이름의 락 밴드를 이끌어왔는데 최근 들어 <Viva La Union>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유가 무엇인지?

존 조: 밴드의 드러머가 아기 아빠가 되면서 두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없게 되었다. 특별히 고민하거나 한 것은 없었다. 그저 다시 합쳐서 곡을 썼고 뭔가가 변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뿐이었다. 예전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라 이름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고.

APA: 대학에서 시작한 밴드인지?

존 조: 그건 아니다. 원래의 드러머가 대학에서 알고 지내던 사이긴 하다. 그와 나는 따로 LA로 이사를 왔었는데 몇 년 후에 다시 만나게 되서 어쩌다 보니 같이 음악을 하게 된 것이다. 대학에서도 잠깐 같이 했었고 그렇게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멤버도 몇 번 바꼈고, 아주 천천히 진행되어 오고 있다.

APA: 노래를 부르고 곡을 쓰는 게 어릴 적부터 취미였는지?

존 조: 그렇지는 않다. 노래는 교회에서 했었지만 악기는 연주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누가 나에게 오래된 스페인 기타를 하나 주고 코드 몇 개를 가르쳐줬었다. 지금 돌이켜봤을때 웃긴 건 코드 세 개를 배우자마자 곧장 곡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코드들에 가사를 붙여 음악을 만들어보려고 애를 쓰곤 했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배워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서 곡을 쓰고 싶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나는 언제나 작곡에 흥미가 있었던 것 같다. 일종의 응용 문제라고나 할까. 팝 음악은 아주 단순한데 바로 그 단순함이 깊은 감동을 주는 게 아닐까 싶다. 곡을 쓰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존 레논의 노래들은 들어보면 그저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간 듯한 느낌이지만 나에게 있어 곡을 쓰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흥미로운 작업이다.

APA: 노래들을 들어보니 얼트 락의 느낌이 나던데, 30년대에 LA에서 자라면서 KROQ*의 팬이었는지?

KROQ - 1972년에 생겨난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L.A. 최대의 록 음악 전문 라디오 방송국

존 조: KROQ를 들었던 것은 맞지만 나는 십대들이 틀어대는 팝 음악들은 항상 싫어했었다. 나는 인기가 많은 밴드들은 좋아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레드 카펫 같은데서 누군가가 "요즘 뭘 들으세요? 씨디 플레이어에 어떤 음반이 들어있나요? " 라고 물어보는 게 싫다. 그런 건 음악 자체보다는 지금 뭐가 유행하는지에 관한 질문인 것 같다.

나는 너무 이사를 많이 다니는 바람에 친구가 많이 없었고 그래서 음악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친구 집에 가서 최신 음악을 듣거나 하는 것 - 나는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음악에 관해서는 언제나 엄청나게 뒤쳐져 있는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자라면서 비틀즈에 대해서 정말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실제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도서관에 가서 비틀즈 앨범을 찾아봤었다. 그게 내가 비틀즈를 알게 된 과정이다.

APA: 하지만 멋진 것 같기도 한데. 누군가 도서관에서 <The White Album>을 듣고는 깜짝 놀라는 이미지라니 멋진 것 같다.

존 조: 정말 그랬다 !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다.

APA: 하던 얘기로 돌아가서, 사람들이 음악적 취향을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어떤 표지로서 생각한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존 조: 나에게는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전학생이었던데다가 동양인 아이들이 거의 없는 동네에서 자라면서 나는 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어떤 성격을 가져야할지 등에 고민이 많았다. 지금 되돌아보면 음악은 내게 있어 그런 문제의 해결책이기라기보다는 한 부분이었다.

APA: 지금에 와서는 다른 창조적인 작업과는 구별되는, 음악을 통해 얻게 되는 점이 무엇인지?

존 조: 글쎄.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보니 하게 됐다는 게 내가 아는 전부라. 하지만 내 생각에 음악은 언어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 연기는 언어를 잊어버리고 의도에 집중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캐릭터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지. 그러나 작곡은, 내게 있어, 정 반대의 작업이다. 작곡을 할때는 한 문장이나 한 음에 가장 적절하게 들어맞는 단어들을 만들어내고 찾아내려고 노력하게 된다. 단어를 다루는 대조적인 방식, 이것이 두 작업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라고 본다.

APA: 연기와 아기 아빠로서의 일 사이에서 작곡을 할 시간을 어떻게 내고 있는지?

존 조: 아들 션이 태어난 후 존 레논이 3년 동안 기타를 벽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3년씩이나? 3년씩이나 연주를 안 했다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존 레넌은 일어나서 아침을 만들면서 그냥 기타를 집어들고 노래를 부를 것 같은 사람이라 믿을 수가 없었지. 하지만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정말 말 그대로 시간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아기가 생긴 후로 항상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다보니가사보다는 멜로디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건 좀 신기하더라. 아직은 아이가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보니 노래의 음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 흥미롭다.

APA: 무대에서 처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때 연기 경력이 긴장하지 않는데 도움을 줬는지?

존 조: 그렇다, 분명히 둘 사이에는 유사점들이 있다. 그러나 락 뮤직은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락을 할때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하는데 그것이 아마도 가장 불편한 점일 것이다. 관객들은 무언가를 보고 싶어하는데 자기 자신밖에 드러낼 것이 없다보면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특히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모든 것을 리허설하던 습관이 있으면 더 그렇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훨씬 더 자연스러운 행위이고 그렇기에 더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노래를 부르는 것은 경험 그 자체로는 연기를 하는 것보다 더 만족스럽다. 그러나 연기의 경우에는 후에 한 작업을 되돌아보면서 이야기의 한 부분임을 인식하는 것까지가 경험의 완결이라고 볼 수 있다.

APA: 마지막 질문이다, 해롤드와 쿠마 2편의 사운드 트랙에 들어간 <Viva La Union>의 노래를 보면 "나도 나만의 중국인 아기를 원해" 라는 가사가 있던데. 그 가사의 의미는 무엇인지?

존 조: 그 가사를 쓸때 난 말 그대로의 진짜 아기를 생각했다. 이것은 부모가 된다는 것의 다소 어두운 면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아이를 가짐으로써 어떤 빈자리를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거기다 미국 사회 내의 중국인 아기들의 경우에는 여기에 어떤 장식적인 요소마저 부여되는데, 나는 그런 것이 아주 신기했다. 또 사람들이 동양인 아기들에게 더 껌벅 죽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나 동양인 아기들은 특히나 귀엽다는 이런 일종의 믿음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인종 전체가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유아화되어 있다는 뜻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들게 하더라. 이런 유아화는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유아화 된 여성들은 성적인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고, 유아화된 남자들은 남성성을 박탈당하게 된다. 그리고 유아화된 아기들은 (웃음) - 실제로 가능한 일이다. 아기들을 더 유아화할 수도 있더라고(웃음) - 백인 아기들보다 더 귀여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이 다소 기이한 현상은 미국과 아시아가 맺고 있는 전반적인 관계에 관해 뭔가 시사하는 점이 있다.

 

#존조

written words

와조스키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2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