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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살아 돌아갈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겨울에 가고 싶었다. 눈 덮인 오사카의 호그스미드를 걸으면서 따뜻한 버터 맥주를 마시면 끝내 호그와트로부터 부르심 받지 못 해 마음에 쌓였던 한도 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초가을이나 봄도 괜찮고. 호그와트 구경을 마치고 호텔에서 느긋하게 쉰 다음 벚꽃이 절정인 교토로 이동하면 그야말로 완벽할 테고 따뜻한 우동을 먹으면서 흐뭇했을 것이다. 수많은 여행 책자에서 말해주지 않아도 그편이 훨씬 낫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유니버설 스튜디오 방문에서 내게 주어진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매일 35-36도를 찍는 기온. 2. 늘 여행 한 달 전에는 이번에야말로 운동하리라 다짐하지만 결국 안 하다가 전날 밤이 되어서야 기적을 바라는 직장인 특유의 없는 체력. 3. 훌륭한 여행 동반자인 친구.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좋은 조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며 추천할 만한 코스도 아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즐거웠고 어쨌든 오사카 한복판에서 일사병으로 쓰러지지도 않았으며 살아 돌아왔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하기에 내 여행 내나 재밌지라는 평소의 철칙을 깨고 생존 후기를 남겨본다. 한여름에 굳이 절절 끓는 오사카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왜 가? 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안 읽어도 될 글이다. 휴가를 쥐어짜고 동행인과 시간을 맞추다가 어쩔 수 없이 한여름에 가게 된 분들은, 일단 건투를 빌며,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1. 가는 길

 쉽다. 난바에서 출발했는데 한신 라인을 탄 후에 니시쿠죠 역에서 내려서 JR로 갈아타 유니버설 시티역에 내리면 끝이다. 가는 시간은 길게 잡아도 30분 정도고 360엔 정도가 든다. 길 잘 찾는 친구와 함께 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하여간 길을 잃을 수가 없게끔 해두었다. 한국말로 방향이 크게 적혀 있기도 하고 여기서 타라, 저기서 타라 노란 표지판으로 안내도 해두었으니 잘 보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주의할 점은 신 라인과 JR은 오사카 주유 패스로 갈 수 없으므로 현금으로 표를 끊어야 한다는 것과 정차역이 차내에서 전광판 등으로 안내되지 않으므로 잘 들어야 한다는 정도인데 사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곳으로 움직이므로 거기서 혼자 엉뚱한 길로 빠지기가 오히려 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꽤나 길치이지만 중증 길치라고 해도 극복 가능한 코스. 일본의 젊은 여자들이나 학생들 중에는 이런 곳에 올 때 친구와 옷을 똑같이 맞춰 입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 뒤만 그냥 따라가도 된다.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가는 JR은 해리 포터의 세 주인공들 사진이 크게 붙어있는데 생각보다 출근용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같은 직장인으로서 매일 아침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놀러가는 관광객들로 가득한 해리 포터 열차를 타고 출근해야 되면 어떤 기분일까 잠깐 궁금했는데 사실 출근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아무 생각 없겠지. 다들 해탈한 표정이었다. 이런 성수기에는 사용객이 아주 많으므로 앉아 가기는 힘들다.


2. 입장 시간 및 준비물

1) 입장 시간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여름에는 8시 30분에 개장하는데 굳이 이 시간에 맞춰서 가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8월의 오전 8시 30분은 이미 29도 30도이므로 아침이라고 해서 시원하지도 않다. 게다가 사람 마음 모두 똑같으므로 이 시간이 좀 낫지 않을까 하고 다들 부지런히 움직이기에 한산하지도 않고. 입장권과 익스프레스 티켓을 미리 한국에서 구매하지 않았다면 빨리 가는 게 나을 것 같기는 하다. 들어가면서 보니 이 시간에는 익스프레스 티켓 사는 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빨리 가서 좋은 점 중 하나는 8시 45분에 미니언즈들이 소방차를 타고 와서 물총 놀이를 한다는 것인데, 그 옆에 서 있다가 물을 맞으면 시원하다. 물총을 사기에는 비싸고  들고 다니기 번거로워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2) 준비물 

이번 후기에 이 말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은데, 사람 마음 다 똑같다. 유원지 특유의 비싼 음식에 돈 쓰기 싫고, 그렇다고 무거운 짐 들고 가기는 싫고 이런 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이므로 나만의 요령 같은 건 없다. 스튜디오 입구 쪽에 로손 편의점이 있지만 아침 8시 20분에도 줄이 굉장했다. 옆의 스타벅스에는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은데 여기서 샌드위치 등을 사가도 되겠지만 이 날씨에 상하기 쉬움을 염두에 둬야 한다. 날씨가 더운만큼 물도 한 2L쯤 마시게 될 텐데 그걸 미리 사 들고 가는 게 현명한 행동인지도 자기가 결정해야 한다. 다행히 스튜디오 안에는 식수대가 많아서 미지근하나마 무료로 마실 수 있기에 무조건 사 마셔야 할 필요는 없다. 식수대는 주로 화장실 옆에 있다. 얼음에 담궈서 파는 시원한 물은 어디나 줄이 긴 편인데 자판기도 줄이 길기는 마찬가지이므로 무조건 줄 짧은 곳으로 가면 된다.

 이런 날씨에 유원지를 가는 것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날씨가 너무나 더워서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쉽게 사라진다는 것으로, 나와 친구는 스타벅스에서 사 간 안에 아무것도 안 든 프레첼 류의 빵과 스튜디오 안 카페에서 판 작은 롤 하나, 그리고 칠면조 다리로 9시간 정도를 버텼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어디에도 그늘이랄 게 없어 뭘 먹어도 불지옥에서의 소풍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긴 줄을 버티고 서서 실내에 들어가 먹을 게 아니라면 칠면조 다리도 괜찮다. 돌아다니면서 먹을 수도 있고 양도 많고 맛도 있으며 야만적인 날씨에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가격은 800엔 가까이 했다.

 정말 필수적인 준비물은 모자다. 도쿄의 디즈니랜드 역시 7월 말 한여름에 간 건 마찬가지인데 왜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더 힘드나 생각해봤는데 머리를 가릴 게 없어서였다. 나와 친구는 용감하게 맨머리로 다녔는데 조만간 두피 교체 시술을 받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손수건 등을 목에 매서 목 뒤를 가리는 것도 추천한다. 전날 별 생각 없이 선물을 사러 우메다 한큐 백화점에 가서 손수건을 사왔는데 목에 매기도 하고 머리에 쓰기도 해서 그나마 지금까지 살아있다. 디즈니랜드와 마찬가지로 각종 캐릭터 망토며 모자 등을 팔고 있고 원피스 팬들은 기념으로 루피의 밀짚 모자를 사도 되겠다. 루피는 왜 맨날 모자를 쓰나 가끔 궁금했는데 일사병으로 죽으면 아무 것도 찾을 수 없고 해적왕도 못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번에 크게 깨달았다. 모자와 손수건 외에는 현금과 카드 정도만 있으면 된다. 부채는 별 소용 없다. 마땅히 앉아있을 만한 곳이 없으므로 양산과 조그마한 돗자리를 가져가서 어디든 앉아있는 것도 괜찮겠다.


3. 익스프레스 티켓

줄을 길게 서지 않아도 되는 익스프레스 티켓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한여름에도 나는 줄을 서서 기다릴 자신이 있다고 생각되면 안 사고 그냥 기다려도 되지만 이런 결심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성격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누구도 쉽게 포기 안 하므로 중간에 나가는 사람은 절대 없고 부지런하게 움직이므로 어디든 줄이 길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날씨에 그냥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풍기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에게 반항하다가 나일 강에 던져진 사람들이 아마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보통의 각오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인기가 조금이라도 많은 어트랙션은 기본 1시간이고 2시간 30분까지도 가는 걸 봤는데 35-6도에서 그 시간을 기다릴 각오가 되어 있다면 익스프레스 티켓을 안 사도 된다. 체력이 없고 의지도 없으며 고생을 싫어하는 나는 당연히 익스프레스를 끊어서 갔고 해리 포터와 스파이더 맨이 포함된 익스프레스 4를 사서 매우 잘 썼다. 하나투어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입장권과는 별도 구매. 


4. 동행

위의 익스프레스 티켓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얘기인데 동행이 있다면 미리 상의를 하는게 좋다. 원하는 게 달라서 각자 움직이는 건 괜찮다. 혼자 타는 사람들을 위한 싱글즈 라인이 따로 있기도 하고. 그러나 누구든 혼자 계속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한여름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그늘이 거의 없고 앉아 있을 곳도 별로 없다. 나와 친구는 워낙 성격도 잘 맞고 체력 정도가 비슷해 서로 무리하게 강요하는 일이 없었기에 이 날씨에 서로 큰 힘이 되었다. 내 쪽이 좀 더 빨리 지쳤는데 친구가 부드럽게 격려를 잘 해주기도 했고 나는 친구가 싫어하는 무서운 놀이기구는 애초에 목록에서 제외했다. 이런 합의가 자연스럽게 되어야 견딜 수 있는 날씨이므로 커플이든 친구이든 가족이든 서로 뭘 원하는지 잘 알아볼 것.


5. 어트랙션

내가 산 익스프레스 4는 네 가지 놀이기구를 빨리 타게 해주는데 두 개는 스파이더 맨과 해리 포터로 정해져 있고(해리포터가 포함된 것과 아닌 것이 있으므로 잘 보고 사면 된다.) 나머지 두 개는 죠스와 스페이스 판타지 더 라이드를 골랐다. 해리 포터 입장 시간이 10시 30분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8시 30분에 입장한 우리는 다른 걸 구경할 시간이 충분해 스페이스 판타지 더 라이드를 먼저 타기로 했다. 해리 포터 파크는 어느 시간에도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데 익스프레스 티켓이 있다면 먼저 가서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다. 정해진 시간에 가면 된다.


[스페이스 판타지 더 라이드]

해리 포터와 스파이더맨이 포함된 익스프레스 4를 사면 두 가지의 선택권이 생기게 된다. 첫 번째 옵션은 쥬라기 공원 더 라이드/터미네이터 2 3D/스페이스 판타지 더 라이드 중에서 고르면 되는데 쥬라기 공원 라이드는 요즘 한창 인기 많은 롤러 코스터이지만 무서운 걸 싫어하는 친구가 탈 만한 건 아니라서 패스, 터미네이터 2에는 별 다른 감정이 없기에 패스한 후 고른 [스페이스 판타지 더 라이드]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특유의 약간 촌스럽고 어딘가 오래된 느낌이 나지만 그래서 강력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생각보다 굉장히 재밌는 어트랙션이다. 돌아가는 컵과 다람쥐 통, 아이들 용 청룡열차를 섞은 후에 어릴 적에 자주 갔던 과학관에서 보던 별의 폭발이나 성운을 촬영한 영상에 결합한 느낌. 우주 배경 SF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즐거울 수 밖에 없고 디즈니랜드에서 스타워즈 어트랙션을 탔을 때처럼 스타트렉 어트랙션에 대한 백만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발을 구르게 될 게 틀림없다. 사실 [스페이스 판타지 더 라이드] 어트랙션을 그대로 따와서 영상만 스타트렉으로 바꾸고 엔터프라이즈의 모험으로 바꿔서 당장 내놓아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이런 놀이기구들은 이미 관객들이 경험하고 있는 4D 영화관 기술과 거의 흡사하기에 쌍제이와 저스틴 린 감독이 3D 아이맥스 효과를 훌륭하게 사용해가며 구현해냈던 워프 효과나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왜 나는 백만장자가 아니라서 이런 걸 만들지 못하는 걸까. 역시 익스프레스 티켓 같은데 돈을 다 써버려서 그런 모양이다. 


[어매이징 어드벤쳐 오브 스파이더맨]

 존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서양의 이상적인 도시를 모방하여 일본도 서양도 아닌 어떤 독립적인 꿈의 공간을 제공하려는 디즈니랜드와는 달리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느긋하게 대충대충인데 스파이더 맨 어트랙션도 그런 식이다. 줄을 서서 대기하는 곳부터가 피터 파커가 사진사로 일했던 데일리 뷰글을 구현해놓긴 했는데 아주 정교하지는 않고 마 이 정도면 됐지요? 라는 느낌. 어트랙션도 화면이 요즘의 아이맥스 영화들처럼 선명하게 깨끗한 건 아니라서 초기의 3D 영화를 보는 기분인데, 그렇다고 흥이 안 나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여러 악당과 맞서 싸우면서도 쉴 새 없이 농담을 던지고 그러면서도 믿음직스러운 스파이더맨은 일본어를 하나도 못 알아들어도 너무나 매력적이고 (나는 멋진 선글라스네? 한 마디 알아들었다) 사용된 기술 자체가 약간 촌스럽기 때문에 되려 상상력을 있는 힘껏 발휘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어릴 때 다들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가상의 놀이가 현실이 되는 피터팬적 경험을 해봤을텐데 스파이더 맨 어트랙션도 어느 순간 세상에! 스파이더맨이 우리를 구해주고 있어! 우리의 친절한 친구 피터 파커! 라는 몰입이 시작되면서 짜릿해진다. 이런 몰입이 불가능한 사람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런 사람은 다 커서 이 더위에 오사카까지 날아와 비싼 돈을 내고 줄을 설 리가 없겠지. 특정 배우의 스파이더 맨이 아닌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스파이더 맨이기에 원작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더욱 신나게 즐길 수 있을 것이고, 아니라고 해도 우리를 구해 준 스파이더 맨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기 때문에 굿즈 샵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나만 해도 스파이더 맨을 평범하게 좋아하는 정도라고 늘 생각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쩐지 스파이더 맨 컵라면과 스파이더 맨 쓰레기통을 사고 있었다. 


[해리 포터]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해리 포터 어트랙션은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가장 야심 넘치는 자랑거리이고 그만큼 확실한 재미가 보장된다. 나는 해리 포터가 여전히 출간 중이던 인기의 절정기에 학창 시절을 보냈고 전세계의 수많은 아이들처럼 J.K. 롤링이 만들어 낸 세계에 푹 빠져있었는데 어른이 되어 실제 시공간에 제한적으로나마 물리적으로 구현된 걸 보니 새삼 인간의 상상력에 경의를 바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거대한 세계가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니. 

 경로는 호그스미드를 거쳐 호그와트 성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여름 방학이라 집에 갔는데 학교에 남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지만 씩씩함을 잃지 않은 고학생 느낌의 교복 입은 직원들이 살갑게 맞아준다. 안에는 실제 호그와트처럼 꾸며놓았고 움직이는 초상화들로 가득해서 재밌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어두워서 실제로도 이렇다면 호그와트 안에서 위험한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것도 당연할 것 같다. 다들 박쥐처럼 눈이 나쁠테니. 어트랙션 자체는 스파이더맨과 비슷한 형식이지만 3D 화면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실제 세트와 결합되어 있는 형식이라서 매우 재밌다. 마법사의 돌부터 불의 잔까지 압축해서 하이라이트만 보여주는데 해리와 친구들이 겪었던 가장 아슬아슬하고 무서운 일들만을 모아둬서 주인공들의 용감함과 의리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해리도 해리지만 론과 헤르미온느는 정말 좋은 친구들이다. 거대한 뱀, 대형 거미, 디멘터 실제 모형이 차례로 등장하는데 명백한 가짜였음에도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꽥꽥 질렀으니 아마 실제였다면 나는 도와주기는커녕 진작에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해리, 내 남은 시체라도 부모님에게 갖다 줘.

 어쩌면 중간에 일어난 일 때문에 더 무섭게 기억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창 빗자루에 탄 해리를 따라가며 퀴디치 시합을 구경하고 있는데 해리가 뒤를 돌아보며 경고를 하는 순간 우리는 어둠 속에 잠겼다. 처음에는 시나리오의 일부인가 싶어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데 방송이 나오더니 불마저 켜지는 게 아닌가. 4인용 기구에 함께 탄 중국인 커플도 일본어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인 듯 당황하기 시작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서 우리는 멍하게 공중에 떠 있었다. 눈 앞에는 거대한 흰 스크린이 펼쳐져 있었는데 나는 공중에 뜬 채로 멈춘 것보다 그 광경이 너무 무서웠지만 흥미롭기도 했다. 긴 절벽을 마주하고 있는 그런 느낌. 이런 상황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후에 바로 디멘터가 등장하자 효과는 최고일 수 밖에. 행복한 경험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보다 나는 루이 C.K.의 으 인생이 씨발 막~이 짤이 떠오르자 묘하게도  안정이 되었는데 그럼 내 페트로누스는 루이 C.K.라는 뜻일까. 여하튼 이 해프닝만으로도 웃기고 좋았지만 마치자마자 한 번 더 타게 해준 덕에 기분 나쁠 일은 없었다. 중국인 커플 역시 즐겁게 그 제안을 받아들여 넷이 다시 한 번 같이 탔는데 익스프레스 없이는 두 시간 반을 기다려야하는 해리 포터 어트랙션을 이어서 두 번 타기도 쉽지 않겠지. 이게 내가 이번 여행 후기에서 확실하게 효과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팁이다. 어트랙션을 타다가 사고가 나면 안 기다리고 한 번 더 탈 수 있다.

 

 해리 포터 굿즈샵은 이미 영국의 옥스브릿지 타운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가상의 상점가인 호그스미드를 또 한 번 모방하여 실제 상점으로 만든 형식이라 매우 기묘한 겹겹의 모방이다. 호그와트가 너무나 실제의 영국 학교들을 이상적으로 재현한 공간이기에 관련 굿즈 산업들마저 실제 유수 깊은 명문 대학들을 둘러싼 산업과 비슷해져버리는데 그래서 오사카 유니버설의 호그스미드 상점들을 둘러보고 있으면 내가 다닌 적 없는 모교를 다시 방문하는 듯한 가짜 향수가 느껴져서 굉장히 묘한 기분이 된다.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일시적으로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학교를 재현한 가상 현실에도 그런 감정이 들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은데 이건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해리 포터의 세계에서 추방된다는 된다는 뜻은 아니며 그보다는 내가 이 나이가 되어서도 그 세계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여하튼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해리 포터 굿즈들은 소문대로 정교하고 예쁘며, 목도리부터 망토, 스웨터, 넥타이까지 모두 갖춰져 있어서 코스플레이에 흥미가 있다면 정품으로 한 벌을 뽑아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지 않아도 입어볼 수 있는 공간도 있는데 나는 이미 온 몸에서 너무 많은 땀을 흘린 상태였기 때문에 도저히 긴 팔 옷을 입을 엄두가 안 나서 건너뛰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기념품으로 사올만한 지팡이도 멋졌고 반장 뱃지도 예쁜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호그와트에서는 분명히 남녀 모두가 반장이 되는데도 굿즈 샵에는 남자 반장을 일컫는 "Head boy" 뱃지 밖에 없었다. "Head girl"을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아예 들여놓지 않은 듯. 해리 포터 파크 안에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줄이 너무 길다 싶으면 사고 싶은 물건을 봐두었다가 유니버설 스튜디오 곳곳에 있는 아무 샵에나 들어가서 사면 된다. 입구 근처에도 있다. 파크 안에서 사와야 하는 물건은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쓴 노트 정도인데 이건 파크 밖의 기념품 샵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초콜렛 개구리나 온갖 맛이 나는 젤리들은 케이스도 예쁘고 맛도 있다고 들었지만 가격이 비싼 편이고 나는 전날 현금을 거의 다 쓴 상태라서 말포이를 바라보는 론 위즐리처럼 그냥 구경만 했다. 게다가 이 날씨에 초콜렛을 사서 들고 다녔다가는 집에 갈 때쯤에는 초콜렛 개구리 즙을 들고 갈 게 뻔하기도 했고. 내가 사 온 기념품은 영화에서 헤르미온느가 강의를 더 듣기 위해 사용했던 시계 열쇠고리인데 시간을 되돌려서 일과 휴가를 동시에 즐기고 싶은 어른 팬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밖에 없는 물건이고 예쁘기도 아주 예쁘다. 버터 맥주는 여름이라 아이스로 먹을 수 있는데 돈을 더 내야 하며 느끼하고 달콤하다.


[죠스]

스페이스 판타지 라이드와 스파이더 맨 그리고 해리 포터를 탔으니 이제 익스프레스 4 티켓에서 남은 옵션은 한 가지다. 죠스와 백드래프트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데 백드래프트는 "공포의 대화재 체험"이 주제고 이걸 탈 때쯤에는 낮 2시가 다 되어서 이미 대화재 속에 있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바다 괴물 죠스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알고보니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가장 인기 많은 어트랙션 중 하나인 죠스는 이 뜨거운 여름에 가장 어울리지 않은 놀이기구였지만 그래서 극한 체험 느낌으로 재미있었다. 우선 죠스는 실제 배에 타서 물 위를 지나가기 때문에 에어컨도 없고 배를 이끄는 가이드 역시 35-6도의 기온 속에 그냥 서 있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죠스는 무시무시한 상어를 물리친다는 내용의 짧은 연극이 결합된 형식이라 가이드는 쉴 새 없이 말을 하고 연기도 해야하는데 시원한 날씨에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가이드는 오뉴블의 소소를 빼닮았고 목소리마저 비슷한 자그마한 미녀였는데 날씨가 날씨인만큼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활발함의 수준을 뛰어넘어 햇빛에 오래 노출된 사람 특유의 약간 모든 걸 놓은 듯한 발랄함으로 총도 쏘고 상어도 잡고 너무 열심이라 나중엔 모두 한 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죠스는 누가 봐도 모형 상어임에도 안 무섭지는 않고, 중간에 실제 불을 사용한 폭발이 한 번 있는데 순간적으로 기온이 40도를 훌쩍 웃도는 느낌이라 폭발 때문에 더워서 죽느니 죠스가 돌아다니는 물 속에 뛰어들어 잡아먹히는 게 낫지 않은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것도 재밌다. 다 끝나고 나면 가이드가 죠스가 등장했다는 건 우리만의 비밀로 해주세요 손님들~ 이런 말을 하는데 (몸짓으로 대충 알아들은 거라 전혀 다른 말일 수도 있다.) 이것도 너무 웃기다. 중간에 배가 잠깐 멈춘 것도 아니고 무려 죠스가 등장하고 가스 폭발이 있었는데 이건 우리들만의 비밀이라니. 마치고 나오면 귀여운 상어 인형도 팔고 있고 식사도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기다리고 있다.


[유니버설 몬스터 라이브 록큰롤 쇼]

 비틀쥬스부터 늑대인간까지 여러 몬스터들이 등장해서 오래 된 록큰롤 명곡들을 불러주는 공연인데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공연이 에어컨이 잘 나오는 어두운 실내 공연장에서 진행된다는 것으로 이대로는 일사병으로 쓰러지겠다 싶은 순간이 분명히 올텐데 그때 거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준다. 모두들 매우 열심히 공연을 하는데 나는 세 곡 정도 듣고 기절했는지 그후의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친구 말로는 30-40분 정도인 것 같다고.


6. 쉴 곳

위에서 여러 번 반복했지만 다시 강조하자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는 그늘이 거의 없고 앉아서 쉴 곳도 마땅치 않다는 느낌이다. 군데군데 기념품 샵이 많으므로 너무 더우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면 되지만 앉아 있을 곳은 몇 군데의 카페와 음식점 뿐인데 당연히 어딜 가나 사람이 아주 많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으면 문을 여는 11시나 12시쯤 앞에 줄을 서 있다가 바로 들어가는 게 낫다. 유원지 음식이 비싼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리값으로 뭐든 마시거나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미니언 샵과 붙어있는 핑크 카페 앉의 의자에 멍하게 앉아있다가 우연히 문 열리는 시간과 맞아떨어져서 들어갔는데 롤과 음료, 아이스크림등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깜짝 놀랄만큼 비싸지는 않다.


7. 마지막에는 유니버설 원더랜드로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뉴욕 에어리어/샌프란시스코 에어리어/쥬라기 공원/할리우드 에어리어/애머티 빌리지/워터월드/유니버설 원더랜드로 각각 별 다른 통일성 없이 구역이 나누어져 있는데 [유니버설 원더랜드]는 새서미 스트리트와 헬로 키티, 스누피 등이 몰려 있는 가장 귀여운 곳이다. 그 구역에 들어가는 순간 알록달록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느낌인데 어슬렁대고 있으면 이 날씨에 키티 옷과 쿠키 몬스터 옷을 입어야 하는 극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등장해서 사진도 찍어준다. 거대한 스누피를 타고 공중을 돌거나 귀여운 키티 찻잔을 타고 빙글빙글 돌 수 있는 등의 어트랙션들도 매력적이지만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인기가 많은 구역인만큼 모든 곳에서 기본 1시간은 기다려야 하며 익스프레스 티켓도 적용되지 않는다. 색감이 예뻐서 사진을 찍기에도 가장 좋은 곳이므로 하루 종일 너무 더워서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다면 여기에서 찍고 집으로 가도 된다. 하루 종일 고온의 햇빛에 노출 된 상태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거대한 스누피를 바라보며 서 있었던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경험 중 하나였다. 호밀밭의 파수꾼 결말 부분에서 홀든 콜필드도 비를 한참 맞은 상태에서 여동생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는 모습을 보면서 한껏 고양된 기분을 느꼈는데 이는 아이의 순수함이 불러온 기쁨이라기보다는 고열로 인한 감정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나가는 길에도 레스토랑들과 기녀품 샵들은 많이 있으니 여기서 마지막 쇼핑을 하고 뭘 좀 먹어도 좋고 아니면 올때와 마찬가지 경로로 식도락의 천국인 난바로 돌아가서 먹어도 좋다. 나와 친구는 숙소가 어차피 도톤도리 상점가 바로 옆이였기 때문에 돌아와서 앉을 자리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 있던 유명한 라면집 옆집에서 라면을 마구 먹고 만두도 추가해서 마구 먹고 편의점에서 피노 아이스크림도 사서 마구 먹은 다음에 러쉬에서 입욕제를 사서 목욕을 하고 휴족시간을 붙이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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