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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2) 이웃과 친구들

제인 오스틴은 이웃들을 '자발적인 스파이들' 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20대가 될 때까지 스티븐턴에 계속 살았던 제인 오스틴은 이 자발적인 스파이들과 좋든 싫든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들 속에서 제인 오스틴은 멘토와 평생의 친구, 댄스 파트너와 배우자 감을 찾았으며 때로는 적을 만들기도 했다. 스캔들로 얼룩진 유서 깊은 귀족 가문부터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사냥과 개에 홀딱 빠져있었던 사람 좋은 토리당 의원, 성직자와 갑작스럽게 등장한 신흥 부자 등 다양한 중간 계층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던 이 작은 사회는 그 나름대로 매우 흥미롭지만 이 포스팅에서는 우선 제인 오스틴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사람들만 다뤄 보고자 한다. 


1. 앤 르프로이 


제인 오스틴이 어릴 때 멀지 않은 옆 마을에 자리를 잡은 교구 목사의 아내 앤 르프로이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친 어머니 대신 세련되고 다정한 멘토의 역할을 해주었다. 문학을 사랑했고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마담 르프로이'로 불리며 이웃들에게서 매우 사랑 받았는데, 어린 제인 오스틴을 특히 아껴 집으로 자주 초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재를 마음껏 드나들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제인 오스틴 역시 어릴 때 장난스럽게 쓴 영국 역사서에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의 몇 안 되는 측근이자 친구로 앤 르프로이를 임명하는 등 큰 애착을 보였다. 동정심이 강해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가난한 교구민들을 돕고자 노력했던 앤 르프로이는 안타깝게도 55세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낙마 사고로 세상을 떴다. 이 사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를 잃어 친구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도 없었을 제인 오스틴은 후에 앤 르프로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썼다.


앤 르프로이는 남편의 조카 톰 르프로이와의 연관성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화 [비커밍 제인] 덕분에 실제보다 다소 비극적으로 알려진 제인 오스틴과 톰 르프로이의 짧은 교제에서 앤 르프로이는 젊은 연인을 갈라 놓는 악역을 맡았지만 그의 개입은 제인 오스틴을 위한 조치로 보인다. 르프로이 쪽의 가족 기록에 따르면 돈 한 푼 없이 친척의 호의에 기대 살고 있었던 아일랜드 출신 법 학생 톰 르프로이는 결혼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으며 젊은 남자들이 이런 식으로 시골 아가씨들을 갖고 놀다가 버리는 일이 잦음을 알고 있었던 앤 르프로이가 화를 내며 조카를 집에서 쫓아냈다고 한다. 그는 몇 년 후 결혼할 만한 안정성을 갖추었다고 생각되는 신랑감을 제인 오스틴에게 다시 소개해 주기도 했는데 현대의 중매와도 크게 다르지 않게 호감은커녕 서로 잘 알지도 못했던 두 젊은 남녀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  The Bigg 자매

소년들을 위한 기숙 학교를 겸한 집에서 자라 늘 남자 아이들이 주변에 북적거렸던 제인 오스틴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가 10대에 접어들었을 무렵에는 이웃에 함께 어울릴 만한 젊은 여성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었다. 친척이 물려준 유산 덕에 부유해진 빅-위더 가문의 캐서린, 엘리자베스, 알시아 세 명으로 이루어진 빅 자매들은(재미있게도 이 가문의 세 딸들은 남자들과는 달리 부유한 친척의 성인 위더를 붙여 자신들의 성을 좀 더 거창하게 보이게 하려는 시도를 거부했다.) 재산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제인 오스틴의 친한 친구였다. 바스로 갑작스럽게 거처를 옮긴 후에도 제인 오스틴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들의 집에 머무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빅 자매는 제인 오스틴의 채 하루도 가지 못한 약혼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역시나 영화 [비커밍 제인]에서 다소 부정확하게 묘사된 이 약혼은 사랑보다는 우정의 결과였다. 맏이가 일찍 죽은 빅 위더 가문의 재산은 막내 남동생인 해리스 빅-위더가 물려받을 예정이었는데 빅 자매는 스티븐턴을 떠나 바스에 정착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친구 제인과 그가 결혼하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틀림없다. 후에 제인 오스틴의 조카 캐롤라인은 해리스 빅-위더는 혼기 찬 여성이라면 누구나 사랑 없이도 받아들일 만한 신랑감이었지만 제인 오스틴은 사랑 없는 결혼은 원하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어릴 적부터 빅 가문과 가까웠던 제인 오스틴에게는 친 남동생처럼 느껴졌을 연하의 해리스 빅-위더는 키가 큰 미남이었으나 말을 더듬어 학교에 가지 못하고 가정 교습을 받았으며 간질 발작을 자주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파혼으로 특별히 상처 받은 것 같지는 않았던 그는 후에 결혼을 했으며 다소 이른 나이에 죽었다. 제인 오스틴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제임스 오스틴의 부인 메리의 기록에 따르면 오스틴 자매는 파혼을 한 날 아침 빅 자매와 함께 마차를 타고 제임스의 집으로 돌아왔으며 모두가 슬퍼하며 울고 있었다고 한다. 소녀 시절부터 굳건했던 빅 자매와 오스틴 자매, 특히 제인 오스틴과의 우정은 이후에도 계속 지속되었으며 영화 [비커밍 제인]과는 달리 가난한 오스틴 자매를 모욕한 악역은 없었다. 제인 오스틴의 병이 악화되어 요양이 필요하게 되자 윈체스터의 칼리지 스트리트에 오스틴 자매의 거처를 마련해주고 매일 방문한 사람도 빅 자매들 중 한 명이었던 엘리자베스였다. 제인 오스틴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3. 마사 로이드

빅 자매와 비슷한 시기에 오스틴 자매와 이웃이 된 마사 로이드는 경제적인 면에서 오스틴 자매와 비슷한 처지였다. 로이드 가족에게는 제인 오스틴과 비슷한 또래의 여동생이 있었으나 제인 오스틴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대신 유머 감각이 있는 열 살 연상의 마사 로이드와 평생의 친구가 된다. 아버지가 죽은 후 독신 여성으로 살아가던 마사는 조지 오스틴의 죽음 이후 바스를 떠나 새로운 집에 정착한 오스틴 모녀와 합류한 후 제인 오스틴이 죽을 때까지 함께 살다가 60대의 나이에 상처한 프랜시스 오스틴과 결혼했다. 마사 로이드는 제인 오스틴에게 있어 매우 소중한 친구이자 또 다른 언니 같은 존재였으며 최초의 열렬한 독자이기도 했다. 제인 오스틴의 편지에는 [오만과 편견]의 초고였던 [첫인상]을 마사가 여러 번 읽었고 너무 좋아해 훔쳐 갈까 봐 걱정된다는 농담들이 남아있다.


4. 앤 샤프

앤 샤프가 차지하는 자리는 특별하다. 가족들과 공유하지 않았던 유일한 친구이기도 한 앤 샤프는 제인 오스틴의 가장 부유한 오빠였던 에드워드 오스틴의 가정교사였다. 다음 세대의 작가인 브론테 자매가 잘 보여 주었듯 당시 가정 교사의 삶은 혹독했다. 대체로 하인들보다는 더 나은 집안 출신이었고 어느 정도 지식도 갖고 있었으나 돈이 없어 고용인으로 살아야 했던 그들은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소외되기 일쑤였고 고용주들의 부당한 변덕 앞에서도 속수무책이었다. 제인 오스틴이 켄트에서 자주 만났던 부유한 또래 아가씨들 중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앤 샤프에게만 애착을 느꼈다는 것은 그의 처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영민하고 글 재주가 있었던 앤 샤프는 제인 오스틴이 가장 신뢰했던 독자였으며 제인 오스틴은 그가 고버샴을 떠난 후에도 우정을 유지하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정직한 평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곤 했다. 카산드라는 동생이 죽은 후 유언에 따라 그가 쓰던 바늘을 앤 샤프에게 보냈으며 얼마 전에는 친구인 앤 샤프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적힌 [엠마]의 오리지널 판본이 경매에 등장하기도 했다. 자립심이 강했던 앤 샤프는 리버풀에 자리를 잡고 스스로의 힘으로 여학생들을 위한 작은 학교를  세워 운영하면서 지역 사회에서 존경 받는 여인으로 살다가 미혼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는 제인 오스틴이 죽기 얼마 전 거처를 옮기면서 보낸 편지를 평생 소중하게 간직했다.


5. 나이틀리 부인

제인 오스틴은 오빠 에드워드를 입양한 이 점잖은 부인을 두고 카산드라와 짓궂은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으나 나이틀리 부인은 온화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친근한 이웃은 아니었고 친구나 멘토라고 볼 수도 없었지만 제인 오스틴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준 유일한 친척이었다. 나이틀리 부인이 굳이 제인 오스틴에게만 매년 용돈을 준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책으로 돈을 벌기 전까지는 개인적인 수입이 전무 하다시피 했던 그에게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이틀리 부인은 아마도 영리하지만 가난한 친척 아가씨가 가여워서 호의를 베풀었겠지만 그 작은 호의 덕분에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의 유일한 후원자가 된 셈이다.

   

6. 미스 벤 

메리 벤은 조지 오스틴의 죽음 이후 여기저기를 떠돌던 오스틴 모녀가 에드워드가 초튼에 마련해 준 집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후 만난 가난한 이웃이었다. 그는 [오만과 편견]이 출간된 직후 제인 오스틴의 낭독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운 좋은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엘리자베스 베넷을 열광적으로 칭찬해 제인 오스틴을 흐뭇하게 했다. 이웃 마을 목사의 미혼 여동생으로 힘든 삶을 살았던 메리 벤에게 제인 오스틴은 늘 매우 친절했으며 [엠마]의 가난하지만 선량하고 꿋꿋한 미스 베이츠를 그에게 바치는 헌사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안타깝게도 메리 벤은 [엠마]가 출간되기 전 죽었다.


제인 오스틴의 이웃과 친구들은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동시대인으로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하게 해주는 좋은 자료일 뿐만 아니라 최초의 독자로서의 중요성을 가진다. 살아 생전 일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제인 오스틴에게 그들의 평은 유일한 피드백이었다. 제인 오스틴이 그들 앞에서 출간된 책을 낭독했으며 정직한 평을 요구했고 또 이 평들을 모아두고 분석하곤 했다는 것은 그가 익명 뒤에 숨어서 그저 취미로 글을 쓴 아마추어 작가가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제인 오스틴의 익명성은 너무 공공연한 비밀이라 알려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는 분명히 읽히기를 원했고 친구들은 읽었다. 세상이야 알든 모르든 간에 적어도 그들에게 친구 제인은 단지 미스 오스틴이 아닌 작가 제인 오스틴이었던 것이다.



다음 번 포스팅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다룰 예정이다. 생일 때까지 세 개 정도의 포스팅을 더 할 건데 시간을 맞출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제인오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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