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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3) 작품들(11세~17세)

이것부터 말해야겠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나는 그의 작품들은 무엇을 성취했는지를 두고 칭찬 받기 보다는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를 두고 평가 절하 받아왔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 월터 스콧과 찰스 디킨스가 제인 오스틴처럼 쓰지 못했다고 지적 받지 않는다면 반대의 경우에도 똑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지 않는가? 200년도 전에 죽은 제인 오스틴 연구가 여전히 활발한 것은 그만큼 그의 작품 속의 "부재" 혹은 "한계"를 지적하는 비평 사조가 그만큼 오랫동안 살아있었다는 역설적인 증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요한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오스틴 연구의 역사를 여기서 모두 다룰 수는 없기에 내가 흥미롭게 느낀 관점들만 소개해보고자 한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소개하는 순서는 다양하게 잡을 수 있지만 출간보다는 집필 순서를 따르고자 했다.

 

1. 세 권의 노트

첫 번째 포스팅에서 말한 것처럼 오스틴들은 많이 읽고 많이 썼으며 농담과 말장난을 즐기는 활발하고 영민한 사람들이었다. 아버지 조지 오스틴은 가난한 목사였지만 500권이 넘는 장서를 갖고 있었으며 옥스퍼드를 다녔던 오빠 제임스와 헨리는 함께 문예 잡지를 창간했으며 시를 쓰고 연극을 했다. 어린 제인 오스틴은 아버지의 서재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고 이웃의 르프로이 부인의 서재에서도 책을 빌려볼 수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제인 오스틴이 가족들로부터도 숨어서 글을 썼을 리가. 제인 오스틴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읽었으며, 썼고, 읽히기를 원했다. 제인 오스틴이 12살 때부터 십대 후반까지 쓴 다양한 글들은 세 권의 양피지 노트로 정리되어 잘 보관되다가 사후 그의 동생과 조카들에게 유품으로 남겨졌는데, 어린 아이가 그저 재미로 모아 두었다고 보기에는 이 노트들은 분명히 출간된 책의 형태를 하고 있다. 제인 오스틴은 분명히 작가가 되고 싶었고 될 자신이 있었으며, 가족들은 이 소망을 지지했던 것이다. 조지 오스틴은 어린 딸을 위해 비싼 사치품이었던 종이를 사주었고 글쓰기 용 책상을 선물하기도 했으며 세 권의 양장피 노트 중 두 번째 노트에 딸의 재능을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묻어있는 헌사를 남겼다. 제임스와 헨리는 자신들의 잡지에 영민한 동생을 여성 독자로 초대했으며, 카산드라는 삽화를 그렸고, 프랜시스는 먼 바다에서 동생의 글을 받아보면서 즐거워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비평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어 무시되어왔던 제인 오스틴의  어린 시절 글들에 주목한 최초의 비평가인 것은 놀랍지 않다. 그 역시 어린 나이부터 읽고 쓰기를 즐기는 지적인 중류층 가정에서 가족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글을 쓰는 것으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기 때문이겠지. 이 세 권의 노트에 들어있는 모든 글을 여기서 다 이야기할 수는 없기에 주목할 만한 비평적 관점을 함께 소개할 수 있는 몇 개만 골라서 소개해본다.  


1) 사랑과 우정 

[Love and Freindship] 이라는 어린아이 다운 오타가 제목에 들어있는 이 짧은 단편은 제인 오스틴이 14살 때 쓴 것으로 매력적인 연상의 사촌 일라이자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조지안 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과도한 감상주의를 대놓고 비웃고 있는 이 작품에서 제인 오스틴이 어린 나이에 이미 날카로운 관찰력과 분별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냉정한 풍자 작가가 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는 비평을 남기기도 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은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당시의 감상주의는 후대 사람인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제인 오스틴의 살아 생전에는 이미 이기적인 자아 도취에 불과하며 무분별한 일탈에 핑계를 제공할 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개인의 선행과 윤리적 행동을 강조하는 영국 성공회 목사의 딸이었을 뿐만 아니라 농담과 풍자를 즐겼던 실용적인 가족들 사이에서 자란 제인 오스틴으로서는 당연히 놀리고 싶을 만한 사조였을 수밖에. 좀 더 진지한 차원에서 살펴보자면 감상주의를 배격하고 도덕적,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태도는 당시 영국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였던 노예 제도 폐지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데, 제인 오스틴 역시 [맨스필드 파크]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편 현대의 비평가인 수잔 구버와 산드라 길버트는 페미니즘 비평서인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그들은 제인 오스틴이 이 작품에서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비 이성적인 젊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당시의 소설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일탈 하는 여성들에게 매혹 된 듯 보이는 자기 분열을 드러낸다고 분석하며, 분별과 전복 사이에서 갈등 하는 이런 이중적 시각은 다른 작품에도 계속해서 나타남을 지적한다.  페미니즘 비평은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로운데 다음 포스팅에서 다른 작품들을 소개할 때 다시 돌아갈 예정.


2)  영국의 역사

제인 오스틴이 쓰고 언니 카산드라가 삽화를 그린 이 짧은 역사서는 이미 그 자체로 요약본 이었던 학생용 역사 교과서를 더 줄여서 패러디 한 농담이었다. 어린 시절을 남학생들을 위한 학교에서 보냈던 그는 오랫동안 어린 학생들을 지루하게 만들었던 이 역사 교과서가 다소 엉터리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후에 어린 여성 작가의 겸손으로 잘못 해석되곤 했던 (제인 오스틴의 많은 반어적 농담이 이런 식으로 오독 되곤 했다.)  '무지하고 편견에 가득 차 있는 저자가 썼음'이라는 말은 제인 오스틴 스스로를 뜻하기 보다는 이 요약본의 저자인 올리버 골드스미스를 겨냥한 비꼼일 가능성이 높으며, 카산드라마저 '이 책에는 날짜는 거의 없음' 이라는 말을 덧붙인 걸 보면 온 가족이 동참한 농담이었음이 틀림없다. 이는 카산드라가 그린 영국의 스튜어트와 튜더 왕족의 모습이 모두 오스틴의 가족과 친지, 이웃들을 닮아 있음을 봐도 알 수 있는데, 스튜어트 가문을 매우 편애해 튜더를 싫어했던 어린 제인 오스틴은 스코틀랜드의 메리 왕비로 등장하고 있다. (카산드라의 삽화와 실제 오스틴들의 유사성은 짐작이 아니라 후대 연구자들이 남아있는 사진과 초상화를 컴퓨터로 분석한 끝에 얻어낸 결과이다. 이 세상에 오스틴에 미친 인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은 늘 큰 안도감을 줍니다.)


 [영국의 역사]는 귀엽고 정교한 농담이며 누가 봐도 가족과 이웃들 사이에서 돌려보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런 점 때문에 오랫동안 많은 오스틴 연구자들은 제인 오스틴이 어릴 적부터도 실제 역사에는 거의 흥미가 없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무지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등장한 새로운 관점은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제인 오스틴이 어릴 적부터 역사를 주의 깊게 공부했고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상징성을 위해 고대사와 현대사를 모두 작품 속에 교묘하게 녹여 넣었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역사]는 역사에 대한 그의 흥미를 최초로 기록한 증거라는 것이다. 역사학 및 지리학에 기반을 두고 제인 오스틴을 당대의 풍속과 관습을 세밀하게 분석한 리얼리스트에서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이 관점은 다른 작품들을 소개할 때 좀 더 다룰 예정. 이에 따라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을 다시 읽는 과정은 마치 퍼즐을 푸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3) 프레데릭과 엘프리다,  잭과 앨리스, 헨리와 일라이자, 레슬리 캐슬

주로 가족들에게 헌정된 이 짧은 이야기들은 제인 오스틴이 "분별 있는 행동"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조신한 숙녀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잘 보여준다. 출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유롭게 쓴 이 이야기들은 불륜과 술 주정, 비밀 결혼 등이 뒤죽박죽 된 난장판으로 남자 형제들과 또래 소년들로 가득한 집에서 큰 십대 소녀가 무엇을 농담 거리로 생각했는지 잘 보여주며 스티븐턴 목사관이 그다지 종교적으로 엄격한 분위기가 아니었음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한 이야기에는 심지어 부인과의 결혼을 무효로 하고 싶어 카톨릭으로 개종하는 남자도 등장하는데, 이런 식의 카톨릭에 관련된 농담은 제인 오스틴이 분명히 성공회 목사였던 아버지를 겨냥하고 던진 것으로 보이며 두 사람이 편안하고 친밀한 사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또한 이 초기 작품들에는 제인 오스틴의 후기 장편들에서도 나타나는 이름들 - 피츠윌리암, 엠마 등- 이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위에서 잠깐 이야기했던 역사학적 관점에 따르면 이는 우연이 아니라 당대 유명했던 가문들을 레퍼런스로 사용하여 동시대의 독자들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환기하고자 했던 제인 오스틴의 의도적인 선택이라고. 오스틴이 선호했던 이름들에 관한 이야기들 역시 역사적 맥락 안에서 장편들을 소개할 때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


2. 소피아 센티먼트 

 옥스퍼드를 졸업한 후 부목사로 일하던 제임스 오스틴은 아직 옥스퍼드 학생이던 동생 헨리와 문예 잡지 [Loiterer]를 창간한다. 대학 동창들을 겨냥한 농담이 많았던 이 잡지는 1년 만에 폐간 되지만 후대 오스틴 연구자들에게 "소피아 센티먼트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남겼다. 말 그대로 "감상적인 소피아"라는 가명을 가진 이 여성 독자는 재치 있는 말투로 [Loiterer]의 따분함을 비난하며 앞으로는 좀 더 극적이고 감상적인 작품들을 실어 달라는 말과 함께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평생 독신으로 여동생이랑 함께 살게 될 것이라는 저주가 담긴 편지를 보냈다. 소피아 센티멘트가 과연 진짜 제인 오스틴인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비슷한 시기에 그가 쓴 글들의 어조와 특유의 재치, 당시 유행했던 감상적인 소설들을 놀려 먹기를 좋아했던 경향 등을 근거로 제인 오스틴이 틀림없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동생과 유머 감각이 비슷했던 오빠 헨리 오스틴이 여성 독자로 가장한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길은 없지만 만약 소피아 센티먼트가 정말로 당시 14-15살이었던 제인 오스틴이라면 [Loiterer]의 이 독자 투고는 제인 오스틴이 출간한 최초의 글이 되는 셈이다.  


다음 포스팅은 역시나 작품 이야기로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등을 포함한 잘 알려진 장편들과 샌디턴과 같은 미완성 유작들에 대해 다룰 예정. 이번 포스팅에 잠깐씩 소개한 흥미로운 비평적 관점들에 따른 분석들도 좀 더 자세하게 써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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