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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4) 작품들 (레이디 수잔)

제인 오스틴은 25살이 되기 전 이미 대표작 세 편을 썼다. 그리고 약 10년 동안 침묵하다가 세 편을 더 썼으며 한 편은 완성하기 전에 죽었다. 출간이 아닌 집필 시기에 따르면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눠볼 수 있는 셈이다. 나도 이 분류에 따라 작품을 소개하려 하는데, 그 전에 [레이디 수잔]부터 먼저 따로 짚어보고자 한다. 레이디 수잔은 유일하게 집필 시기가 불분명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라 분류가 쉽지 않고 오스틴 연구의 패러다임이 변화함에 따라 집필 시기에 대한 추정도 달라지고 있는 과정 자체가 매우 흥미롭기 때문.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역사적 맥락 안에 넣어 해석하고자 하는 관점의 등장이다. 

어느 쪽이든 그 여자의 대답을 누가 믿겠는가? 세상은 그저 짐작해서 판단해야 한다. 자신의 남편과 자신의 양심 말고는 그 여자에게는 아무 거리낄 것이 없었다.

[레이디 수잔]은 미망인 레이디 수잔을 주인공으로 하는 서간체 형식의 중편이다. 길이가 길지 않은 만큼 플롯은 간단하다. 매력적인 레이디 수잔은 사이가 소원해 진 죽은 남편의 가족을 교묘하게 조종하고 유혹해서 뜻하는 바를 이룬다. 뻔뻔하게 불륜을 저지르고, 불리해 질 때마다 거짓말을 일삼으며, 딸에게 애정도 전혀 없는 끔찍한 엄마인 데다가 이 모든 것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레이디 수잔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서 거의 유일하게 처벌 받지 않는 여성 악당이다. 제인 오스틴이 죽고 한참이 지난 후인 1871년에야 유족의 허락을 받고 출간된 이 작품은 소녀 시절의 발랄한 실험 정도로 취급되어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다가 페미니즘 비평이 시작된 이후에야 전복성을 인정 받았으며 2016년에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레이디 수잔]이라는 제목으로 개봉.) 이 영화의 우수함에 대해서는 여기에 자세하게 쓴 적이 있는데, 요약하자면 영화 [레이디 수잔]은 원작에서 암시만 되었거나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을 매우 솜씨 좋게 표면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집필 시기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제인 오스틴이 [레이디 수잔]을 옮겨 쓴 년도가 1803년이라는 사실 뿐인데 이마저도 종이에 찍혀 있었던 덕분이지 다른 작품들처럼 작가 본인이나 언니인 카산드라가 기록으로 남겨서는 아니다. [레이디 수잔]의 집필 시기에 대한 의견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어느 쪽이든 나름의 이유가 있어 비교해보면 재밌다.


1) [레이디 수잔]은 1790년대 후반에 쓰여졌다?

제인 오스틴이 [레이디 수잔]을 십대 후반에 썼다고 보는 입장은 이 작품과 매력적인 미망인 사촌 일라이자를 모델로 삼은 십대 시절의 다른 이야기들과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서간체 역시 단서가 되는데, 비슷한 시기에 쓴 [첫인상]과 [엘리너와 메리앤] 역시 처음에는 서간체였다가 [오만과 편견] 그리고 [이성과 감성]으로 개작되는 과정에서 서술체로 바뀐 것을 보면 굳이 후기 작품에서 다시 이 형식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페미니즘 비평에서는 제인 오스틴이 끝내 이 작품을 출간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로 여성이 성적 매력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과감한 내용이 아직 어렸던 제인 오스틴 스스로를 두렵게 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2) [레이디 수잔]은 1800년대 초반-중반에 쓰여졌다?

[레이디 수잔]의 집필 시기를 훨씬 뒤로 잡는 관점은 더욱 흥미로운 증거를 제시한다. 앞의 포스팅에서 제인 오스틴을 밀봉된 보편성의 대가로 보는 사조에서 벗어나 역사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작가로 재 해석하고자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음을 간단하게 소개했는데 이 관점은 [레이디 수잔]의 집필 시기에도 새로운 빛을 비춰준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00년대 초반 영국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서방님이 버논 성을 구입한다고 나한테 무슨 득이 있었겠니?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조지안-섭정 시대(1714-1830)에 왕족을 제외하고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은 요크셔의 웬트워스였다. 뿌리가 11세기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부호 웬트워스 가문은 여러 분파로 퍼져 나갔고 결혼으로 다른 강력한 집안과도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스태포드셔의 힐튼 파크에 대대로 영지를 갖고 있었던 또 다른 부호 버논 가문이었다. 1799년 웬트워스 성을 마지막으로 물려 받은 상속자 프레데릭 웬트워스가 사망하자 버논과 웬트워스 간의 복잡한 재산 분쟁이 시작된다. 프레데릭 웬트워스가 부인이 아닌 여동생 오거스타에게 성을 남긴 것이 발단. 오거스타는 자신의 조카인 프레데릭 버논에게 이 성을 물려주고자 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프레데렉 웬트워스의 부인은 남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상속을 거부했으며, 여기에 먼 아일랜드 친척인 콘로이까지 가세하면서 웬트워스 캐슬을 둘러싼 부자들의 싸움은 세기말의 가장 유명한 스캔들 중 하나가 된다. 이 싸움은 결국 1804년 어린 상속자 프레데릭 버논이 이름을 프레데릭 버논-웬트워스로 바꾸고 나서야 종결되었고 웬트워스 성은 마침내 버논 가문의 집이 된다.


[레이디 수잔]을 읽어보았거나 영화로 본 분들은 이미 눈치 챘겠지만 [레이디 수잔] 속 분쟁은 실제 사건과 거의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레이디 수잔이 시동생의 부인과 불화하는 이유는 남편이 죽은 후 그가 품위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이유로 시동생에게 "버논 성"을 넘겨주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레이디 수잔의 뜻 대로라면 조카인 프레데릭 버논은 상속을 박탈 당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레이디 수잔은 자신의 딸 프레데리카 버논에게도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강요하는데, 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레이디 수잔]은 결국 욕심 많은 여성에 의해 고통 받는 어린 프레데릭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제인 오스틴은 현실의 일을 레퍼런스 삼아 동시대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살짝 비틀어 레이디 수잔의 행동을 단지 악의적인 흥미에서 비롯된 변덕이 아니라 생존을 건 치열한 싸움으로 만든다. 버논 성이 자신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시동생 부부에게 넘어간 탓에 레이디 수잔은 여기저기를 떠돌 수 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헨리에타 버논
헨리에타 버논

[레이디 수잔]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는 실제 스캔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버논 가문은 웬트워스와의 분쟁 전에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적이 있었다. 1740년대 역시나 웬트워스 가문의 일원이었던 헨리에타 웬트워스는 헨리 버논과 결혼을 해 헨리에타 버논을 낳았다. 웬트워스와 버논의 막강한 결합의 산물로 부와 교양, 미모의 상징으로 떠오른 헨리에타 버논은 19살에 그로스버너 공작과 결혼을 하는데 이는 불행한 결합이었다. 불륜과 도박을 일삼으며 부인의 부를 낭비했던 그로스버너 공작은 부인인 헨리에타가 왕의 형제인 컴벌랜드 공작과 사랑에 빠지자 그들이 주고 받은 선정적인 편지들을 증거로 제시하며 부인을 법정으로 끌고 가 모욕을 준다. 순식간에 전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며 명예를 실추한 헨리에타 버논은 그 후 세간의 눈을 피해 조용한 삶을 살았으나 1775년에 태어난 제인 오스틴이 20대가 될 때까지도 여전히 매력적인 불륜 여성의 상징 같은 존재로 남아있었다. 버논 부인의 오만한 남동생 레지널드 드 쿠시(드 쿠시 가문의 모델을 웬트워스 성의 차지하려는 싸움에 끼어들었던 아일랜드 친척 콘로이로 보는 의견도 있다.)가 '영국에서 가장 요염한 요부'라고 묘사했던 레이디 수잔의 창작에 영향을 주었을 법한 인물이다. 또한 이 스캔들의 중심에 선정적인 편지들이 있었음을 생각해 보면 제인 오스틴이 서간체로 되돌아간 것 역시 이해할 만한 선택. 흥미로운 것은 부와 가문의 명성도 방패막이가 되어 주지 못해 사회 밖으로 쫓겨나다시피 한 현실의 헨리에타 버논과는 달리 레이디 수잔은 결국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은 채 사회 속에 머문다는 결말이다. 제인 오스틴은 실존 여성의 고통을 소재로 하되 교훈을 주는 경고성 이야기로 풀어내거나 감상적인 비극으로 묘사하는 대신 뻔뻔한 승리라는 대안을 택한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제인 오스틴이 이 작품을 십대 후반이 아닌 30대에 쓴 게 사실이라고 해도 여전히 출간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 법 하다. 픽션이 아닌 현실을 여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뒤집어버리는 것은 훨씬 더 대담한 전복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렇듯 역사학적 비평은 제인 오스틴을 고대와 당대의 역사, 거시사와 미시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리얼리즘을 추구했을 뿐만 아니라 17세기부터 시작된 "셀레브리티 문화"를 적극적으로 작품 안에 도입해 독자들을 유혹하려고 했던 영리하고 기민한 작가로 재 조명한다. 이는 제인 오스틴이 역사나 정치는 전혀 몰랐으며 좁고 작은 세계만을 그려내는데 만족했기에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않는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비평 사조에 전면으로 도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현대의 독자라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이 관점에 흥미를 갖게 된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이런 식으로 맥락 속에서 작품을 해석하고자 하는 관점은 필연적으로 "증거 찾기"가 수반되는데, 이 과정에서 찾아낸 많은 증거들이 페미니즘 비평가들이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의 행간에서 읽어냈던 것들 역시 뒷받침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번 포스팅의 [레이디 수잔] 분석에서 역사학적 비평과 페미니즘 비평이 서로를 보완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 분들이라면 다음 포스팅의 [노생거 수도원]과 그 다음 포스팅의 [맨스필드 파크]를 기대하셔도 좋다. 가장 지루하다는 평을 받는 제인 오스틴의 두 딸이 어떤 식으로 가장 전복적인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지 알게 될 재평가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리고 웬트워스 가문 이야기에서 '프레데릭 웬트워스'라는 이름에 귀가 솔깃했던 [설득]의 팬들도 제대로 짚으신 게 맞다. 제인 오스틴은 요크셔의 웬트워스 가문을 한 번만 써 먹은 게 아니다. 이 얘기도 [설득]을 다루는 포스팅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


다음 포스팅의 주제는 20대의 작품들인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그리고 [노생거 수도원]이 되겠다. 제인 오스틴의 생일인 12월 16일에 끝내려고 했던 시리즈인데 자꾸만 길이가 늘어나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뭘 어떡해 계속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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