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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7) 작품들 (스티븐턴 소설들 - 노생거 수도원 part1)

 [노생거 수도원]은 대충 읽었다가는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 나가버리고 남는 게 없는 소설이다. 현대의 독자들인 우리는 대체로 고딕 소설 장르를 속속들이 알지 못 하며, 18세기 영국과 고딕 소설 속의 이국적 배경이 어떻게 다른지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현대의 독자, 특히 외국인 독자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만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그가 무엇을 풍자하고 뒤집으려고 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 소설을 평가 절하 하게 된다. 하지만 꼼꼼한 독자라면 분명히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던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오로지 고딕 소설의 자극적인 비현실성에 푹 빠져 엇나간 상상력을 발휘하는 주인공 캐서린 몰랜드의 어리석음을 비웃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일까? 남자 주인공인 헨리 틸니의 말처럼, 여성들의 비극적인 시련은 고딕 소설에서나 일어나지 세련된 문명 사회 18세기의 영국 땅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므로? 하지만 결국 캐서린의 염려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헨리 틸니는 얼마나 믿을 만한 인물인가? 제인 오스틴이 놀리고자 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풍자가 진실을 돌려 말하기 위한 장치임을 생각해 볼 때 [노생거 수도원]은 무엇을 폭로하고자 하는 작품인가?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으려고 할 때 이미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시공간을 '초월'한 읽기는 확실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인 오스틴은 이 소설의 뒤늦은 출간을 염려하며 독자들에게 시간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읽어 달라는 서문을 썼을 정도로 동시대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다른 어떤 작품에도 이런 부탁은 하지 않았다. 이 포스팅에서는 그의 뜻을 받들어 18세기 말-19세기 초의 바스로 [노생거 수도원]을 되돌려 놓고자 한다. 이런 역사학적, 지리학적 분석 관점은 '현대의 여성들도 제인 오스틴의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관점과 상충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번뜩이는 영감으로 [노생거 수도원]의 전복성을 알아차렸던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의 분석에 일종의 증거를 제시해 준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더블린 사람들]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아일랜드와 수도 더블린의 지리, 역사, 정치를 알아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노생거 수도원]을 위해서는 영국과 바스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1. 바스 소설

제인 오스틴은 1797년 처음 바스를 경험했다. 아직 초튼의 목사관에 살던 시절로 온천과 유흥으로 유명한 휴양지인 바스를 자주 찾았던 부유한 외삼촌 부부 LeighParrots 들을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1799년에 오빠 에드워드와 다시 한 번 이 화려한 휴양지를 방문한 후 제인 오스틴은 [수잔]을 완성한다. 후에 [노생거 수도원]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등장하게 될 이 소설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 중 최초의 '바스 소설'이었다.

 역사학과 지리학의 관점에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분석한 학자들은 [수잔]의 독자는 처음부터 바스를 잘 아는 사람들로 정해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20대의 제인 오스틴은 관광 안내서, 지역 신문과 소설 장르를 혼합하여 바스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만한 히트작을 써보고자 했던 것 같다고. [노생거 수도원]에 등장하는 바스에 대한 정확하고 세밀한 묘사는 제때 출간되었더라면 바스를 잘 아는 동시대 독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며, 이야기 전개에도 매우 중요하나 후대의 독자들, 특히 영국인이 아닌 독자들로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얼마 전 시공사에서 소설 속 장소와 시기에 대한 꼼꼼한 주석을 달아 놓은 개정판을 내놓았으니 다시 읽어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버전을 추천 드리며, 이 포스팅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서 좀 더 꼼꼼하게 다뤄 보도록 하겠다.


1) the Man of Bath

"그 늙은이 앨런은 유대인처럼 부자죠, 그렇죠?" 캐서린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자, 그가 설명을 덧붙이며 다시 물었다. "앨런 말이에요, 당신이 함께 사는 노친네."

"오! 앨런 씨 말씀이군요. 그래요, 매우 부자인 것 같아요."

"자식은 한 명도 없고요?"

"없어요. 한 명도."

"다음 상속자에게는 아주 잘된 일이네요. 그 사람이 당신 대부 맞지요?"

"대부라니요! 아니에요."

바스에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순진한 캐서린이 바스로 와서 만나게 된 존 소프는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이도 충분히 천박해 보이지만, 사실 현대의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멍청하지는 않다. 그에게는 캐서린을 잡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존 소프는 처음 만나자마자 평범한 목사 집 딸인 캐서린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하는데 그러면서 계속 캐서린의 이웃이자 보호자인 앨런 부부를 들먹인다. 그 뿐만이 아니다. 허영심 많은 이사벨라 소프가 캐서린의 오빠 제임스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오만한 틸니 대령이 캐서린과 둘째 아들 헨리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부추기는 것도 모두 앨런 부부와 캐서린과의 관계를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앨런 부부가 자식이 없고 부유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골 부자의 상속녀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다들 법석을 떨 필요가 있을까? 현대의 독자라면 당연히 품어봤을 의문이지만 제인 오스틴과 동시대를 살았던 독자들은 이들의 의도를 곧장 이해했을 것이다. '앨런'은 실제로 존재했던 부호이기 때문이다.

'the Man of Bath' 랄프 알렌
'the Man of Bath' 랄프 알렌

1693년에 태어나 1764년에 세상을 뜬 랄프 앨런은 시장, 자수성가한 기업가, 건축가, 그리고 박애가로서 수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로서 너무나 유명해 별 다른 수식어도 필요 없이 그저 'the Man of Bath'로 불렸다고 한다. 1790년대 말 제인 오스틴이 [노생거 수도원]의 초고인 [수잔]을 완성할 무렵 랄프 앨런의 막대한 부와 영지 Prior Park는(위에서 인용한 대화는 바스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Prior Park가 바로 보이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게끔 설정되어 있다.) 직계 상속자를 찾지 못해 먼 친척에게 넘어가게 되었는데, 이 운 좋은 알렌들은 바스가 아닌 시골에 살고 있어 많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고. 즉 캐서린은 [노생거 사원]에서 평범한 시골 부자 앨런들이 아닌 바로 그 랄프 앨런의 재산을 모조리 물려 받을 예정인 상속인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몰랜드 Morland', 즉 더 많은 땅을 찾아 헤맨다는(More-land)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캐서린 몰랜드는 남에게 땅을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며 갑작스러운 행운 덕분에 부유해 질 가능성도 전혀 없다. 제인 오스틴은 이런 식으로 당시 유행했던 고딕 로맨스들이 즐겨 사용했던 기법을 꼬집어 놀리고 있지만,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지적했듯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자들이 멋대로 만들어 낸 이야기 속에서 마치 물건처럼 값이 매겨지는 캐서린의 처지에는 분명히 공포스러운 면이 있다. 


2) 블레이즈 성과 가짜 성(sham castle)

"그럼 진짜 성인가요? 오래된 성?"

"이 왕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죠."

"책에서 읽는 것과 비슷한가요?"

"똑같죠. 완전히 똑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정말로.... 탑과 긴 회랑도 있나요?"

"많이 있죠."

(...) 캐서린은 그만큼 틸니 남매가 자신을 가볍게 여겼다는 생각에 몹시 가슴이 아팠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상상하기에 [우돌포]와 흡사한 블레이즈 성 같은 건축물을 탐사한다는 기쁨이 거의 어떤 고통이라도 상쇄시켜서 위안을 주었다.

존 소프의 거짓말 때문에 캐서린과 틸니 남매가 처음으로 엇갈리는 장면이다. 존 소프의 거짓말이 캐서린을 엉뚱한 곳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바스의 지리와 역사에 대해 알게 되면 제인 오스틴의 아이러니를 좀 더 제대로 맛 볼 수 있다. 선 블레이즈 성은 진짜도, 오래된 성도 아니다. 이 건축물은 1766년에 설탕 상인이었던 토마스 파가 일종의 관상용으로 지어 올린 것으로, 이 성을 두고 진짜라고 하는 것은 디즈니랜드의 신데렐라 성을 두고 유적지라 부르는 것이나 다름 없다. 게다가 캐서린은 가짜 성을 보기 위해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블레이즈 성은 1755년에 세워졌던 다른 가짜 고딕 성의 모방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블레이즈 성
블레이즈 성

여기서 랄프 앨런은 또 한 번 등장한다. 자신의 부와 비전을 사용하여 17세기까지만 해도 환자들이 찾는 그저 그런 마을이었던 바스를 화려한 대규모 관광지로 탈 바꿈 시킨 그의 전략 중 하나는 '가짜 고딕풍'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제대로 적중해 당시 크게 유행했던 고딕 장르에 심취한 사람들은 바스로 몰려 들었다고. 바스 사람들 사이에서는 '랄프 앨런의 가짜 성(Sham castle)'이라 불렸던 이 가짜 고딕풍 건축물은 캐서린이 머물고 있었던 풀트니 거리의 집에서 창문만 열면 볼 수 있었다. 캐서린은 하나의 가짜를 뒤로 하고 또 다른 가짜를 보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지만 결국 어떤 것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이야기 전개 방식은 언뜻 보기에는 미숙한 소녀를 놀리고 있는 듯 하지만 (그것도 물론 맞다. 캐서린에게는 분명히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다.) 우리는 캐서린이 거의 유일하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인물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런 경험을 통해 존 소프를 꿰뚫어 보게 되며, 비슷한 일이 또 생기자 이번에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왔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달려가 버린다. 1800년 이후 바스에 거주했던 제인 오스틴은 자신의 지리적 지식을 활용하여 바스를 일종의 게임 판으로 만들고 정직한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도 그리기 식 묘사는 바스의 지리를 잘 아는 당시 독자들에게 일종의 우월감이 섞인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을 것이며, 후대 독자인 우리들에게도 흥미로운 상징성을 제공한다. 이국적인 땅에서 납치를 당해 감금된 것은 아니지만, 캐서린 역시 갇혀 있다. 거짓말과 가짜들 사이에서.


3) 바스의 푸른 수염

우리가 어떤 시대에,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 기억하세요. 우리는 영국인이고, 또 기독교도란 사실도 기억하고요. 당신의 이성과 개연성에 대한 감각과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보고 들은 걸 가지고 분별 좀 해봐요. 우리의 교육이 그런 잔악 행위를 가르치고 있나요? 과연 우리의 법이 그런 행위를 묵인할까요? 사회적 문화적 소통이 확고하게 이루어지는 나라에서 그런 잔악 행위가 아무도 모르게 저질러 질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인 감시자들에 둘러싸여 있고, 신문과 도로의 발달로 모든 게 개방된 나라에서? 친애하는 몰랜드 양,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겁니까?

 노생거 수도원으로 초대를 받아 들뜬 캐서린은 헨리 틸니에게 가장 잘 보여야 하는 그 순간에 다년간의 고딕 소설 읽기로 단련된 상상력을 발휘하다가 큰 망신을 당한다. 어린 소녀가 엉뚱한 의심을 품다가 더 성숙하고 나이 많은 남성에게 (아마도 연인이 될) 일장 연설을 듣고 뉘우친다는 식의 이런 구도는 많은 후대 여성 독자들을 실망 시키거나 따분하게 만들어 왔으며, 그들이 [노생거 수도원]을 좋아하지 않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제인 오스틴의 이중적 말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생각할 것을 권한다. 제인 오스틴은 과연 헨리 틸니에게 동의하고 있는가? 헨리 틸니는 영국의 관습과 법이 아내 살해를 방지해 준다고 열렬하게 공포하며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캐내고자 하는 캐서린을 꾸짖는다. 그렇다면 사랑 받지 못하는 아내나 아내가 아닌 여자에게는? 또 최소한의 안전만 보장되면 그 여성의 삶에는 더 이상 아무런 억압도 고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캐서린은 틀리지 않았다. 헨리 틸니가 뭐라고 옹호하든지 간에 틸니 대령은 폭군적인 가부장이며 그의 아이들은 모두 그의 강압과 변덕 아래에서 침묵하고 숨 죽이는 것에 익숙해져 캐서린이 굴욕적으로 추방 당할 때도 도와주지 못 한다. 또 다른 틸니 부인이 되고 싶었기에 첫 번째 틸니 부인에게 이입하여 그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고자 했던 캐서린은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이유로 비난 당하지만 결국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캐서린이 아닌 헨리 틸니이다. 고딕 소설을 희미하게만 알고 있는 현대 독자로서는 혼란스러울 만도 하다. 제인 오스틴은 [노생거 수도원]을 통해 고딕 소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영국을 배경으로 다시 쓰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비평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제인 오스틴이 여성은 벽보다는 잘못된 교육에 의해서, 그리고 말로 하는  맹세나 경고보다는 진짜 조상의 저주라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의존에 의해서 더 효과적으로 감금된다고 믿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생거 수도원]은 단지 여성을 꾸짖고 다그치는 성장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은 가부장의 허위성과 폭력성을 폭로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작품이다.


팔리 헝거포드 성
팔리 헝거포드 성

역사와 지리를 포함한 분석이 필요함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내놓은 증거 역시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읽어냈던 제인 오스틴의 의도를 뒷받침한다. 노생거 수도원에서 블레이즈 성을 보러 가려던 캐서린과 친구들은 시간을 잘못 계산한 탓에 반도 가지 못 한 채 7마일 떨어진 곳에서 멈추게 된다. 이미 블레이즈 성에 도착하지 못 했음이 중요한 상황에서 굳이 7마일이라는 거리를 제인 오스틴이 정확하게 표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캐서린과 일행들이 블레이즈 성 방향이 아닌 정반대로 7마일을 달렸더라면 캐서린은 [우돌포의 미스테리] 못지 않은 진짜배기 고딕 괴담의 배경이 된 장소를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는 팔리 헝거포드 성(Farleigh Hungerford Castle)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블레이즈 성이나 sham castle과는 대조적으로 실제 300년간(1369-1686) 헝거포드 가문의 주거지였던 이곳은 다름 아닌 배우자 살해로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1540년 37살의 나이로 사형 당한 월터 헝거포드 경으로, 두 명의 부인을 독살했다고 추정되는 그의 기이하고 잔인한 행동은 세 번째 부인 엘리자베스가 왕에게 구원을 호소한 편지 덕분에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남편이 결국 사형 될 때까지 4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탑에 갇혀 서서히 독살을 당하고 있었던 엘리자베스와 앞서 살해당한 두 명의 부인들의 운명에는 캐서린 몰랜드가 상상한 틸니 부인의 운명에는 분명히 유사한 점이 있으며, 월터 헝거포드 경이 19세기 까지도 바스의 관광 책자에서 '푸른 수염'이라고 불렸던 유명인임을 생각해 보면 영국에서 부인 살해 같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헨리 틸니의 꾸짖음은 오히려 억지스럽게 들린다. [노생거 수도원]의 제목은 원래 [수잔]이었다는 얘기는 이미 위에서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수잔은 월터 헝거포드 경의 첫 번째 희생양이었던 부인의 이름이었다. 

"틸니 씨 어머니는 드루먼드 양이었는데, 휴즈 부인과 동창이었대. 드루먼드 양은 재산이 무척 많았다고 하더라. 아버지가 결혼할 때 20만 파운드를 주고, 결혼식 예복들을 사는데 500 파운드나 썼다는구나. 

이름이 주는 힌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제인 오스틴은 [노생거 수도원]에서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장치를 굳이 사용하여 틸니 부인의 결혼 전 성인 '드루먼드'를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드루먼드'는 헨리 8세 시대에 결혼으로 영국의 모든 유명한 집안과 연결되어 있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전성기를 맞았던 야심 찬 '틸니' 가문과는 정반대로 꾸준히 스튜어트 왕조에게 충성했던 유명한 가문이었다. 영국의 역사에 대해 잘 알았고 깊은 관심이 있었던 제인 오스틴은 드루먼드와 틸니에 담긴 역사적 상징성을 통해 이 부부의 결합이 결코 평온하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선 포스팅들에서 여러 번 이야기 한 것처럼, 제인 오스틴은 어린 소녀 시절부터 스튜어트 왕조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


한 번에 끝내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여기서 일단 멈춘다. 다음 [노생거 수도원] 포스팅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옹호와 헨리 틸니, 그리고 이 소설 속의 거짓말과 이중적 말하기와 역사적 정확성에 대해서 좀 더 다루어 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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