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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7) 작품들 (스티븐턴 소설들 - 노생거 수도원 part2)

2. 소설가의 권리 옹호

나는 소설가들이 흔히 따르는 쩨쩨하고 졸렬한 관습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모욕적인 비난으로 자신이 하는 작업을 깎아내리고 스스로 적의 무리에 합세하는, 그러니까 소설 작품들에 가장 신랄한 형용사를 붙이고 자신의 여주인공들에게는 절대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최고의 적들과 연합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어떤 작품에서도 작가로서의 제인 오스틴은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으며 직설적으로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는 [노생거 수도원]에서만 유일하게 한 페이지가 넘는 공간을 할애해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했던 동시대 여성 작가들인 프랜시스 버니와 마리아 에지워스를 꼭 집어 칭송하고 있으며, 소설이라는 장르가 남성 평론가들과 남성 독자들로부터 경멸 받는 가장 큰 이유가 여성 독자들로부터 인기가 높아서임을 잘 알고 있음도 숨기지 않는다. 여성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특정 장르가 비웃음을 산다니, 어디서 많이 본 태도가 아닌가. 누군가 왜 오스틴을 아직도 읽냐고 물어볼 때마다 나로서는 이 구절을 떠올릴 수 밖에. 


3.  이중적 말하기

1) 헨리 틸니

주인공인 헨리 틸니와 캐서린의 대화는 주의 깊은 읽기를 요구한다. 표면적으로 그들의 대화는 연상의 남성이 연하의 여성에게 깨우침을 준다는 흔한 틀에 갖혀 있는 듯 보이지만 [노생거 수도원]을 꼼꼼하게 읽어 본 독자라면 누구나 제인 오스틴이 이 재기 넘치는 청년의 말에 동의를 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제인 오스틴은 남성들이 타고난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교육과 자원의 독점 덕분에 여성보다 말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재치 있는 대화와 독서를 즐기는 헨리는 당시 남성들이 어떤 식으로 여성을 침묵시키고 대화를 독점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등장한 순간부터 계속 농담을 하고 반어법을 구사하면서 캐서린을 놀리는데 이는 매력적이지만 어린 여주인공을 쓸데없이 헷갈리게 만들며, 자신의 의견과 취향을 버리고 그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고 느끼게 만든다. 캐서린은 멍청해서가 아니라 틸니가 끊임없이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당황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캐서린의 상상력을 꾸짖지만 정작 노생거 수도원으로 향하는 동안 고딕적 이야기를 지어내 캐서린을 공포에 빠트린 것은 본인이며, 여성은 정확한 어휘를 구사하지 못한다고 비하하면서도 자신 역시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존 소프나 틸니 대령만큼 악의적이지는 않지만 그 역시 캐서린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음으로써 결국 그를 혼란과 수치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제인 오스틴은 이런 그를 비웃는다. 

캐서린은 진심으로 무식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야말로 괜한 부끄러움이었다. 사람이 누군가의 마음을 끌고 싶다면, 항상 무식해야 한다. 머리에 든 게 많으면, 다른 사람들의 허영심을 만족시켜줄 수가 없다. 그래서 눈치 있는 사람은 언제나 그런 상황을 피하려고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불운하게도 뭔가 아는 게 있다면, 최대한 감춰야만 한다. (...) 다만 남성들을 공정히 대하기 위해 몇 마디 덧붙이자면, 대다수의 별 볼 일 없는 남성들에게는 여성의 우둔함이 커다란 매력처럼 보이지만, 그들 중에도 특별히 이성적이고 대단히 지적인 남자들은 여성에게서 무지함 이상의 것을 바라기도 한다.

 캐서린의 무지함에 신이 나 떠들어 대는 헨리가 "특별히 이성적이고 대단히 지적인 남자들" 중의 한 명이 아님은 분명하다. 캐서린이 도저히 현실의 여성이 도달할 수 없는 온갖 특성을 두루 갖춘 당대 로맨스 소설 속 이상적 여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듯이, 헨리 역시 (어린 캐서린의 생각과는 달리) 특별히 고귀하거나 예외적으로 우수한 남성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런 평범한 단점들로 인해 두 남녀 주인공은 19세기 문학의 주인공들 치고는 매우 독특한 인물이 된다. 헨리의 매력은 그가 현명한 연상의 남자라는 데 있지 않다. 그의 매력은 미숙한 여주인공을 시종일관 가르치려 들던 그가 사실은 자기 모순에 빠진 무력한 헛똑똑이였으며, 스스로 이것을 깨닫고 나서야 여주인공과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제인 오스틴은 헨리의 재기 넘치는 말솜씨와 풍자 솜씨를 매력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그것이 본인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둘째로서 원래 힘이 없는 입장인 헨리는 폭군적인 아버지가 지배하는 노생거 수도원으로 돌아오는 순간 더욱 무력해진다. 그는 형인 프레더릭 틸니와 이사벨라 소프의 부정직함을 꿰뚫어 보면서도 캐서린과 비슷한 처지인 이사벨라를 파멸에 빠트릴 수도 있는 부적절한 관계에 놀라울 정도로 냉담하게 반응할 뿐 개입하지 않으며(혹은 하지 못하며), 아버지가 자신에게 드물게 보이는 관심에 감격할 정도로 아버지를 어려워한다. 캐서린의 직감은 결국 틀리지 않았다. 틸니 대령은 정말로 폭군이 맞다. 캐서린이 아버지에 의해 잔인하게 쫓겨 나고 나서야 헨리가 현실을 직면하는 것 뿐. 제인 오스틴은 끝내 헨리에게 고전적인 영웅의 역할을 안겨주지 않는다. 그는 사랑보다는 미안함과 의무감, 그리고 아마도 너무 늦게 발현된 아버지를 향한 반항심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정직하게 행동했음에도 모욕을 당하고 쫓겨난 캐서린을 찾아온다. 갈등의 해결 역시 매우 의도적으로 안티 클라이맥스적인데, 헨리가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추방 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동생인 엘레노어가 좋은 가문의 남자와 약혼을 한 덕에 틸니 대령이 누그러졌기 때문이었다. [노생거 수도원]은 표면과는 달리 여주인공인 캐서린보다는 틸니들의 성장기에 가깝다. 위대한 역사 속 왕과 왕비의 이름을 가지고도 늘 죄수처럼 숨죽여 살아야 했던 헨리와 엘레노어는 더 많은 땅을 찾아 헤매는 평범한 '몰랜드'를 만나고 나서야 마침내 스스로 일어서게 되는 것이다. 사실 캐서린은 거의 변하지 않은 채로 남는다. 헨리가 찾아오기 전 상심에 빠진 딸을 "교육"시키려던 캐서린의 어머니의 시도는 펴보지도 않은 채 잊혀진 책이라는 형태로 무산된다. 

 [노생거 수도원]을 두고 현대적인 의미에서 전복적이라고 말하기는 물론 힘들다. 캐서린은 직접 틸니 대령과 맞서지 못하며, 그의 해피 엔딩 역시 노생거 수도원 대신 헨리 틸니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데서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생거 수도원]은 가부장제 밖으로 벗어나지는 못하되 그것의 폭력성과 허위성을 폭로하고자 하는 젊은 여성 작가의 갈등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도발적인 작품이며 실제 출간 후 많은 남성 비평가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가부장제에 대한 오스틴의 비판적인 시각은 후기 작품에서도 계속 이어지며 [맨스필드 파크]에서 가장 뚜렷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2) 이사벨라 소프

앞의 포스팅에서 이사벨라의 오빠인 존 소프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사벨라 역시 끊임없는 이중적 말하기와 암시로서 정직한 캐서린을 혼란에 빠뜨리지만 둘의 관계는 좀 더 복잡하다. 그는 틸니와의 미래를 꿈꾸다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버림 받는다는 점에서 캐서린을 어둡게 예고하는 인물이기 때문. 이 시리즈를 쓰면서 끊임없이 소환당하고 있는 것 같은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저자 산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는 이사벨라와 캐서린의 결말을 비교하며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따로 정리한 적이 있으므로 그 글로 대신하려고 한다.


4. 남자들은 죄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여자들은 아예 나오지도 않는 짜증나고 지루한 이야기


[노생거 수도원] 14장에 나오는 틸니 남매와 캐서린의 대화는 제인 오스틴은 실제 역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잘 알지도 못했다는 오해를 부추기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오스틴의 작품을 표면만 대충 읽는 오래된 습관의 결과이며 역사와 역사가들을 소재로 하는 이 대화는 제인 오스틴을 이해하는데 여러모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저는 역사책도 좋아해요."

"저도 그러면 좋겠어요. 의무감으로 약간 읽었는데, 그냥 짜증 나고 지루한 이야기뿐이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교황과 왕들의 싸움이나 전쟁, 역병 얘기만 나오죠. 남자들은 죄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여자들은 아예 나오지도 않고, 정말 지겨워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중요성을 다시 인정받기 시작한 이래로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노생거 수도원] 속 캐서린의 역사관, 즉 기록된 역사에서 여성이 배제되었음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여러 세대를 거쳐 다른 여성 작가들에게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남을 지적했다. 제인 오스틴처럼 전쟁이 관통했던 시대를 살았던 20세기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 역시 묻지 않았던가. 과연 여성에게도 조국이 있느냐고. 헨리는 이런 캐서린을 비웃으며 지혜로운 역사가들의 말을 새겨 들을 것을 충고하지만 제인 오스틴이 그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제인 오스틴은 이미 십대 시절 캐서린의 말처럼 아이들을 "고문"해왔던 따분한 역사책을 풍자하는 책을 써냈던 사람이었다. 이는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할 만한 행동은 분명히 아니다. 다른 작품들을 소개하는 포스팅에서 여러 번 말했듯이, 제인 오스틴은 역사적 지식이 해박했으며 캐서린이 질색했던 "딱딱한 진짜 역사책"도 꺼리지 않았다. 다만 그는 이런 기록들을 공손하게 받아들이고 경배하는데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다. 제인 오스틴은 역사가가 아니라 소설가였다. 그는 남성 학자들이 전수해 준 역사적 사실들을 머리에 집어 넣고 흐뭇해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써먹어 잘 팔리는 소설을 쓰고자 했던 것이다. 바스의 지리와 역사가 어떻게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설명했던 앞의 포스팅에서도 볼 수 있듯이 [노생거 수도원]에도 그 흔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나머지 부분을 다뤄보고자 한다.


1) 프레더릭 틸니의 휴가


19세기 제 12 연대 왕실 기병대의 모습
19세기 제 12 연대 왕실 기병대의 모습

틸니 가의 믿을 수 없는 장남 프레더릭 틸니는 [노생거 수도원]에서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지만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과 제인 오스틴의 집필 방식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는 유서 깊은 가문의 장남이지만 자식들이 일을 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직업 군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제인 오스틴은 당시 군인이었던 오빠 헨리 오스틴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레데릭 틸니의 이동을 정확하게 묘사한다. 바스에서 이사벨라가 프레데릭 틸니와 만나 시시덕거린 기간은 매우 짧다. 그들은 3월에 만났는데 4월 초 이사벨라는 캐서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프레데릭 틸니가 자신의 부대로 복귀했다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작위로 고른 날짜가 아니라 당시 군인들의 휴가 기간과 일치한다. 제인 오스틴은 오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를 사용해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동시에 휴가 끝물에 휴양지에서 노닥거리고 있었던 부잣집 도련님인 프레데릭 틸니가 애초에 이사벨라와 진지하게 교제할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암시한다.


"어제 런던에서 편지를 받았는데 제 친구가 그랬어요. 진짜 무시무시할 거라고요. 아마 살인이나 뭐 그런 종류 같아요.

"어쩜 그렇게 태연하게 말하죠! 부디 당신 친구가 과장한 것이길 바라요. 그런 계획이 미리 알려진다면, 틀림없이 정부가 그걸 막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거예요."

새로 출간된 고딕 공포 로맨스 소설을 의미하는 캐서린의 말을 정치적 폭동으로 엘레노어가 잘못 알아듣는 부분 역시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1700년대 말 영국의 정치적 상황은 몹시 불안정했다. 춥고 긴 겨울 탓에 1794-5년 농작물 재배가 실패로 돌아가자 식량이 부족해졌고 끝없는 전쟁 때문에 세금마저 올라가자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웃 나라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의 재연을 막고 싶었던 지배층의 반응은 가혹했다. 1795년, 서섹스 주에서 400명의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밀가루와 음식을 가난한 이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다시 파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틀 만에 진압된 이 반란의 진압 과정은 당시 영국의 지배층이 어느 정도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400명으로 이루어진 반란군의 지도자들이 처형 당하는 것을 보고 본보기로 삼으라는 의미에서 소환된 군인은 약 만 명. 제인 오스틴의 오빠인 헨리 오스틴과 프레데릭 틸니의 부대 제 12 왕실 창기병대도 포함된 수였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제인 오스틴의 시대는 태평성대가 아니었다. 끝없는 전쟁과 혁명에 대한 공포로 얼룩진 불안한 시대였기에 프레데릭 틸니 같은 무책임한 바람둥이마저 휴가가 끝나면 빵을 달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을 총살 시키러 서둘러 달려가야 했던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이를 숨기고 있지 않다. 그동안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얼마 전 개정판으로 새로 출간된 시공사의 [노생거 수도원]을 보면 캐서린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엘레노어를 놀리면서 헨리가 언급하는 폭동이 1780년에 일어난 고던 폭동을 의미한다고 주석을 달고 있다. [노생거 수도원이] 1790년대 말-1800년대 초에 쓰여졌으며 당시 군인이었던 오빠 헨리 틸니의 삶과 대조해서 생각해보면 이 소설 속의 폭동은 종교적 갈등이었던 고던 폭동과 식량 부족으로 인해 1795년에 일어났던 폭동이 혼합된 묘사일 가능성이 더 높다. 다음의 구절 역시 더 많은 증거를 제시한다.

"당신이 런던에서 끔찍한 게 나올 거라고 말했을 때,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장 순회도서관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런데 제 동생은 당장 세인트 조지 광장에 모인 3천 명의 폭도를 떠올렸어요. 은행이 습격당하고 런던탑이 무너지고 런던 거리에는 피가 흘러넘치고. 그래서 노샘프턴의 (이 나라의 희망인) 제 12 라이트 드래곤 부대가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소환되고, 용감한 프레더릭 틸니 대위가 선두에 서서 부대를 지휘하는 순간, 위층 창문에서 벽돌이 날아와 그의 말을 쓰러뜨리는 그런 상상을 했던 겁니다."

런던 거리에서 일어난 폭동의 묘사가 고던 폭동의 모습과 가깝다면 수습은 1795년 노팅엄에서 일어났던 폭동들의 수습과 좀 더 유사하다. 헨리 틸니는 노샘프턴에 주둔 중인 형 프레더릭 틸니가 부대를 이끌고 진압에 나설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데 실제 1795년 노팅엄 폭동 당시에 노샘프턴에는 기병대 주둔지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공사의 '제 12 라이트 드래곤 부대'라는 명칭은 나를 한참 동안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 프레더릭 틸니의 부대는 "the 12th Dragoon"이다("Dragon"이 아니라). 정식 명칭은 "The 12th Prince of Wales's Regiment of Light Dragoons." 이라는데 하여간 "라이트 드래곤" 부대라고 해서 이해가 되는 명칭은 아닌 것이다. "제 12 왕실 용기병대/창기병대" 정도가 낫지 않을까. 


2) 수잔에서 캐서린으로

[노생거 수도원]은 제인 오스틴의 언니인 카산드라 오스틴과 오빠인 헨리 오스틴이 사후에 출간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제인 오스틴이 원래 생각했던 이름은 [수잔]으로 주인공의 이름 역시 캐서린이 아닌 수잔이었다. 모든 작품마다 정확성을 기하고자 했던 제인 오스틴은 왜 1803년 [수잔]으로 이미 출판업자에게 팔렸던 작품을 1816년 캐서린으로 바꾼 것일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 가지 가설은 1809년 [수잔]이라는 이름의 소설이 먼저 출간되어 중복을 피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노생거 수도원]의 출간이 계약과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는데, 밑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노생거 수도원]은 아직 1803년 [수잔]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될 예정이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미루어지다가 1816년에야 제인 오스틴에게로 돌아온다. 출간을 기다리는 동안 세상에 등장해버린 동명의 소설을 의식한 결과라는 이 가설은 그럴듯하지만 바뀐 이름이 왜 굳이 ‘캐서린’인지를 설명해주지 못 하는데, 이에 두 번째 가설이 등장한다.

캐서린 틸니-롱의 구혼자들을 묘사한 풍자화
캐서린 틸니-롱의 구혼자들을 묘사한 풍자화

두 번째 가설은 1700년대 말-1800년대 초 바스 풍속을 실감나게 묘사함으로써 베스트 셀러 소설을 쓰고자 했던 제인 오스틴이 1816년 수정할 기회를 얻게 되자 그 당시 가장 유명한 여성의 이름을 빌려와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노생거 수도원]의 광고문을 손수 쓰면서 독자에게 작품이 쓰여진 때로부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이를 감안하고 봐 달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을 정도로 동시대성을 추구했던 제인 오스틴인만큼 이 가설은 근거가 있어 보인다. 역사학적 관점으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분석하는 학자들은 그가 “캐서린 틸니-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1789년에 태어난 캐서린 틸니-롱은 1805년 남동생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어마어마한 유산을 모조리 상속받게 된다. 당연히 구혼자들이 몰려왔고 그들 간의 경쟁은 세기의 이야깃거리가 된다. 캐서린 틸니-롱의 구혼자 중에는 후에 윌리엄 4세가 되는 클래런스 공작도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 이런 일들이 있기 전인 1803년에는 ‘틸니’라는 이름은 제인 오스틴에게도 헨리 8세 시대를 희미하게 떠올리게 함으로써 고딕 테마에 어울리는 정도의 의미만 가지고 있었겠지만 1816년에 주인공을 ‘캐서린 틸니’로 만드는 것은 훨씬 더 동시대적인 흥미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장치가 되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제인 오스틴의 기민한 수정은 곧 씁쓸한 아이러니로 바뀌게 된다. 1817년 사망한 제인 오스틴은 캐서린 틸니-롱이 구국의 영웅인 웰링턴 경의 잘생긴 조카와 결혼하는 것을 보고 해피 엔딩을 기대했겠지만 그는 끔찍한 남편이었다. 캐서린의 남편은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의 재산의 100배가 넘는 아내의 막대한 부를 탕진한 후, 다른 남자의 부인과 함께 도망쳐 버린다. 캐서린은 1825년 모든 이들의 동정을 받으며 생을 마감한다.


5. 출간과 반응

위에서 잠깐 얘기했듯이 [노생거 수도원]의 출간 과정은 기다림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1798-1799년에 집필이 시작되었고 1801년 바스로 거주지를 옮긴 후 완성되었으리라 추정되는 [노생거 수도원]은 [수잔]이라는 이름으로 1803년 런던의 크로스비 사에 팔려 그해 봄에 출간될 예정이라는 광고까지 나오게 된다. 이대로 진행되었더라면 제인 오스틴은 [이성과 감성]의 출간까지 8년이나 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리처드 크로스비는 이 원고를 출간하지 않았고 기다리다 못한 제인 오스틴은 1806년 직접 편지를 보낸다. 공손하지만 매우 단호한 어조로 그는 1. 원고를 분실했으면 한 부를 더 보내줄 수 있으며, 2. 출판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면 다른 출판업자를 찾아보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리고 후대의 팬들로서는 즐겁게도 제인 오스틴은 이 편지에서 크로스비에게 “Mrs. Ashton Dennis”라는 가명 앞으로 답장을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이것을 두고 제인 오스틴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감이 떨어져서 익명 뒤에 숨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는 M.A.D.(화가 난)로 서명을 하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제인 오스틴의 재치에 그다지 감명을 받지 못 했는지 리처드 크로스비는 3일 뒤 1. 돈을 주고 원고를 살 때 출간을 꼭 해야 한다는 의무는 어디에도 없었으며, 2. 다른 출판업자를 찾으려 한다면 고소를 할 것이고, 3. 원고를 돌려 받고 싶으면 자신들이 산 가격인 10 파운드를 돌려주면 된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낸다. 별도의 수입 없이 부모의 용돈과 남자 형제들의 호의에 기대 살아야 했던 미혼 여성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기에 제인 오스틴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1816년 제인 오스틴은 마침내 원고를 다시 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심하게 아프기 시작한 후였다. [노생거 수도원]은 결국 1817년 제인 오스틴이 사망한 후에야 출간되었기에 그는 가족을 제외한 다른 독자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끝내 알지 못 했다.


***


[노생거 수도원]은 내가 대충 읽고 오해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참회의 의미로 온갖 이야기를 다 해보았다. 다음 작품은 [맨스필드 파크]. 이 작품부터 제인 오스틴은 독자들의 반응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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