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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해야 할 것들

F.스콧 피츠제럴드가 딸 스코티에게
앙피르 극장에서 오노리어는 아버지가 접어놓은 코트 위에 한사코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덧 딸아이는 자기만의 행동 규범을 가진 인격체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찰리는 그 아이가 완전히 성인으로 굳어버리기 전에 약간이라도 자신을 그녀에게 주입해 두고 싶은 욕망에 점점 사로잡혔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딸아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  찰리 웨일스는 행복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이 세상의 문이 다시 열린 것이다. 여러 계획과 전망을 세우고 오노리어와 자기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그러나 헬런과 함께 세웠던 모든 계획이 떠오르자 그는 갑자기 슬퍼졌다. 그녀에게 죽음 따위는 계획에도 없었는데 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이다. 해야 할 일, 그리고 사랑해야 할 누군가 말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너무 사랑해서는 안 된다. 너무 지나치게 애착을 느끼다 보면 아버지가 딸에게, 엄마가 아들에게 해를 끼치기 쉽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뒷날 나이가 들어 아이는 결혼 상대에게 같은 식으로 맹목적인 사랑을 요구할 것이고, 아마 그것을 얻지 못하면 사랑에도 인생에도 등을 돌리게 될 것이 아닌가.                                                                                   [다시 찾은 바빌론]


1931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실린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다시 찾은 바빌론>은 미국인 찰스 웨일스가 파리의 친척집에 맡겨 둔 어린 딸을 되찾으려고 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평생 자신의 삶에서 소재를 얻었던 피츠제럴드인만큼 이 단편 역시 자전적인 경험에 바탕하고 있지만 다른 작품들과는 쓰는 방식이 좀 다르다. 일단 주인공이 정말로 아이를 생각하는 부모라는 것 자체가 독특하다. 피츠제럴드의 주인공들은 생물학적 의미에서만 부모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피츠제럴드는 44세에 죽었다. 당시에는 30대가 되면 중년 소리를 들었다고 해도 본격적인 중년으로서의 삶은 살아보지도 못한 셈이다. 그의 삶에는 안정기가 없었고. 그래서인지 그가 써낸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약간 일그러진 성장기로서, 주인공들 역시 조숙한 10대에서 미성숙한 30대 사이에 포진해있다. 자신도 안정된 중년으로 접어들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피츠제럴드는 인생의 아주 짧은 순간에 폭발적인 빛을 냈다가 빠르게 시들어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만 집중적으로 쓰고는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으로 쓴 장편 <밤은 부드러워>가 거의 유일하게 주인공들의 20대부터 40대까지를 길게 다루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다이버 부부 역시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하지는 못한다. 다이버 부부의 아이들은 <위대한 개츠비>의 뷰캐넌 부부의 아이들이 그랬듯이 부모의 의식과 현실 어딘가에 희미하고 흐릿하게 존재할 뿐이다. 피츠제럴드의 인물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그가 그려내는 재즈 시대의 젊은이들은 부모로 상징대는 구시대와 절연하고 후천적 고아로서 자신들을 재탄생시키는 것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본인들이 미숙한 아이에 머물러 있기에 다시 부모가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2세는 부부를 묶어주는 사랑의 결실도 아니며,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고리로서도 작동하지 못한다. 영원한 고아인 피츠제럴드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아이들을 보며 혼란스러워하거나 희미하게 죄책감을 느낄 뿐이다. 재미로 시작한 소꿉놀이가 끝나지 않자 안달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하는 어린애들처럼.


<다시 찾은 바빌론>은 그런 면에서 예외적인 작품이다. 주인공인 찰스 웨일스는 뒤늦게나마 부모로서의 의무를 자각하고 진지하게 아이를 되찾으려고 노력한다. 1차 대전 이후의 호황기에 번 돈으로 유럽에서 방탕하게 생활하다 망가진 찰스 웨일스와 그의 부인 헬렌은 피츠제럴드 부부를 그대로 반영한다. 재즈 시대를 상징하는 유명인으로서 화려한 20년대를 보냈던 그들은 30년대 경제 대공황이 시작되자 함께 사그라들기 시작해서 다시는 재기하지 못 했다. <다시 찾은 바빌론>이 쓰여진 1930년에는 젤다는 이미 정신 분열증 발작을 몇 번이나 일으켜 유럽과 미국의 정신병원과 요양소들을 옮겨다니고 있는 상태였고, 피츠제럴드 역시 심각한 알콜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에 피츠제럴드는 9살이었던 외동딸 스코티를 젤다가 있는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스코티는 겁에 질렸고, 결국 연휴 내내 부녀는 단 둘이 스키를 타면서 보냈다.이런 상황에서 쓰여진 <다시 찾은 바빌론>은 낭비해버린 과거에 대한 후회와 다시 제대로 살아보려는 재생 의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아름답고 서글픈 작품이다. 피츠제럴드는 젤다가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것임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듯하다. <다시 찾은 바빌론>에서 아내 헬런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찰스는 자신과의 싸움 끝에 병을 얻어 죽은 아내 헬런을 고통스럽게 회상하며 이제라도 새 삶을 살기 위해 딸 오노리어를 되찾아오고자 하지만 과거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9살 소녀 오노리어가 파리로 찾아 온 아버지 찰스와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피츠제럴드 특유의 솜씨가 완벽하게 발휘된 부분으로 섬세하고도 애틋하게 그려져있다. 오노리어와 같은 나이인 어린 딸 스코티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피츠제럴드 본인의 고통과 후회를 담은 이 작품은 주인공 찰스가 결국 오노리어를 데려오지 못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결말로 끝난다.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회복 불가능한 파멸로 치닫는 피츠제럴드의 다른 남자 주인공들과는 확실히 다른 결말이다. 



그럼 오노리어의 모델이 된 스코티의 삶은 실제로는 어땠을까. 아버지가 시대의 총아로 떠오르기 시작했던 1921년에 태어난 스코티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유럽의 여러 곳을 떠돌면서 보냈다.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부모와 함께 있을 수 없었던 그녀는 십대 시절 역시 기숙학교와 아버지의 친구집을 전전하면서 혼자 보내야했다. 젤다는 입원하기 전에도 누구를 돌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딸이 부모의 나쁜 점을 물려 받을까봐 걱정했던 피츠제럴드는 엄격한 아버지가 되려고 애를 썼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 했다. 오노리어가 십대가 되었을 때는 피츠제럴드는 이미 심각한 알콜중독 상태였고, 화가 나면 딸에게 잉크병을 집어던지는 등 불안정한 부모라는 점에서는 젤다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츠제럴드는 스코티가 겨우 19살때 세상을 떴다. 후에 스코티는 아버지의 작품을 관리하면서 본인 스스로도 활발한 삶을 살았지만 고독한 어린 시절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서로 얼굴을 맞댈 시간이 별로 없었던 부녀의 소통의 대부분은 편지로 이루어졌다. 지금 소개하려는 편지는 33년의 여름, 캠프에 가 있었던 11살의 스코티에게 피츠제럴드가 쓴 것이다. <다시 찾은 바빌론>을 쓴 지 3년이 지난 후다. 젤다의 병은 회복이 불가능함이 거의 확실해졌고 피츠제럴드의 건강 역시 급격하게 악화되어가더 시기인만큼 절망과 후회가 묻어나올 법도 한데 어린 딸에게 쓴 피츠제럴드의 편지는 진심 어린 충고와 위트로 가득하다. 혹은 그러려고 굉장한 애를 쓰고 있음이 느껴진다. 아버지로서 피츠제럴드는 어린 딸이 자신과 젤다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지 않는 안정된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너무나 바랬던 것 같다. 33년이면 피츠제럴드로서는 작가로서의 재능이 고갈되었다는 불안감과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때인만큼 이 편지는 스스로 되새기고자 하는 충고들을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편지는 책으로도 나와있고 인터넷에도 올라와있다.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은 분들은 여기로 가면 되고 내가 옮겨 본 한글 번역이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로.


우리 귀염둥이에게


아빠는 네가 제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주 많이 신경쓰고 있단다. 프랑스 어를 잘 배우고 있다는 증거를 좀 더 보여주지 않겠니? 니가 행복하다니 기쁘구나 - 하지만 아빠는 행복을 별로 믿어본 적이 없구나. 절망도 마찬가지야. 행복이나 절망은 연극이나 영화 혹은 글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란다. 실제 삶에선 일어나지 않아.


아빠가 믿는 건 미덕(니가 가진 재능에 따른) 은 보상 받는다는 것과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 뿐이란다.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따르는 벌은 두 배가 되지. 캠프 도서관에 이런 책도 들어와 있다면 타이슨 부인에게 "썩어가는 백합은 잡초보다 더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라는 구절이 들어있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찾아달라고 부탁해보렴.


오늘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를 않는구나.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지에 보낼 이야기를 구상하는데 시간을 다 쓰고 있는 것 같아. 아빠는 언제나 너를 생각하고 있단다. 널 생각할때면 늘 기분이 좋지만 한 번만 더 아빠를 "노친네"라고 부르면 네 흰 고양이를 데려다가 그놈의 엉덩이를 세게 때려줄테다. 네가 한 번 건방지게 굴 때마다 여섯번씩 때려줄거야. 이러면 우리 딸이 말을 좀 들을까?

캠프 비용은 아빠가 곧 낼게

자 우리 멍청이, 아빠의 결론은 이거야.

걱정해야 할 것들:


용감한지에 대해서 걱정하고

청결한지에 대해서 걱정하고

효율적인지에 대해서 걱정하고 

승마를 잘 하는지에 대해서 걱정하고

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들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인형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고 

과거를 걱정하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성장을 걱정하지 말고
누가 나를 앞지르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면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모기를 걱정하지 말고
파리를 걱정하지 말고

뭐든 벌레들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부모님을 걱정하지 말고
남자애들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실망할까 걱정하지 말고
즐기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만족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말고

생각해봐야 할 것들

나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인가?
내가 또래 친구들보다 다음과 같은 면에서 얼마나 앞서고 있는가?

(a) 학구적인 면에서
(b)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과 잘 어울리고 있는가?
(c) 내가 나의 신체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가 아니면 방치하고 있는가?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담아
아빠가

P.S. 네가 아빠를 '노친네'라고 부른 것에 대한 복수로 너를 에그라고 부를까 한다. 니가 아직 인생의 아주 기초적인 단계에 있으며 아빠가 마음만 먹으면 너를 깨트릴 수 있다는 뜻으로 말이야. 네 친구들에게 말해줬다간 너를 계속 따라다닐만한 별명이기도 하지. "에그 피츠제럴드라". 이 별명을 평생 달고 살 생각을 하니 어떻니? "에기 피츠제럴드"나 "배드 에그 피츠제럴드"라든가 다들 온갖 별명들을 생각해낼텐데? 한 번만 더 건방지게 굴면 맹세코 아빠는 이 별명을 너에게 붙여줄테다. 이걸 떨쳐내려면 네가 고생 꽤나 해야겠지. 왜 사서 매를 버니?

어쨌든 사랑한다.


written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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