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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Squares (3)

BBC의 [Life in Squares]는 에피소드가 세 개 밖에 없어서 이번이 마지막이다. 첫 번째 자막과 두 번째 자막은 다른 포스팅에 올려놓았다. 앞의 두 에피소드 자막을 만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포스팅에서도 블룸스버리 그룹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하니 스포를 피하고 싶은 분들은 자막만 먼저 받으면 되겠다.

Life.in.Squares.s01e03.kor.srt
[Life in Squares] 속 줄리언 벨, 안젤리카 벨, 퀜틴 벨

이번 에피소드는 바네사와 클라이브의 첫 아들인 줄리언이 스페인 전쟁에 참가하는 시점에서 시작해 그들의 막내딸인 안젤리카가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끝난다. 여전히 바네사의 시점에서 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블룸스버리 2세대인 벨 남매의 비중도 커졌는데, 두 번째 에피소드 때처럼 일어난 사건들을 연대기 적으로 정리하기 보다는 등장 인물 별로 정리해볼 생각.


1) 줄리언 벨의 죽음


줄리언 벨

 바네사의 아이들은 찰스턴의 집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성장했다. 아이가 없었던 버지니아 울프는 때로 질투에 시달리면서도 세 조카들에게 매료 되었고 자신들과는 달리 예술을 사랑하는 분위기에서 성인들과 동등하게 교류하면서 자라나고 있는 블룸스버리 2세대들에게 큰 기대를 품었다. 첫 아이의 특권으로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줄리언 벨은 예민하고 지적인 스티븐 가의 기질과 자신만만하고 호전적인 벨 가의 기질을 동시에 지닌 소년으로 늘 바네사와 버지니아에게 젊은 나이에 죽은 형제 토비를 연상시켰다.

 빅토리아 시대의 숨 막히는 관습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꿈꾸었던 블룸스버리 그룹이었던 만큼 벨 아이들은 전통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양육 되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인 클라이브와 바네사를 이름으로 불렀고, 그들의 저명한 친구들과 우정을 쌓았다. 버지니아는 줄리언과 퀜틴이 자라면서 그들을 자신의 나이 어린 형제들처럼 느끼곤 했다. 조카들이 어렸을 때 그는 아이들의 기대에 맞춰 장난스럽고 재미있는 친구가 되어주곤 했는데 그들이 자라 부모 세대에 대해 좀 더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었을 때도 이런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줄리언과 퀜틴, 안젤리카는 "자주 미치는" 기이하고 흥미로운 천재 이모에 대한 일화를 즐겨 주고 받았고 버지니아 울프 역시 장단을 맞춰주곤 했는데 이런 이미지는 후에 퀜틴 벨의 버지니아 울프 연구에 그대로 남아 후대의 버지니아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자유분방한 10대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줄리언 벨은 스티븐 가의 아이들이 그랬듯이 영향력 강한 부모 세대와 맞서 자신만의 삶을 정립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시작은 글이었다. 위 세대의 남자들처럼 그 역시 케임브릿지의 사도회에 가입했고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줄리언과 그의 친구들은 블룸스버리 그룹과 달리 정치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젊은 시절 오빠 토비의 친구들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것처럼 이제는 줄리언과 그의 친구들로 대표 되는 다음 세대의 젊은 남성들에게 도전 받는 입장이 되었다. 그는 조카의 글을 애정과 관심을 담아 날카롭게 비평했고 이는 줄리언을 낙담 시켰지만 좌익에 집단적이며, 반 권위주의적이고 고도로 정치화 되어 있었던 이 들뜬 철부지들이 던진 문제는 늘 시대의 변화에 민감했던 이 베테랑 작가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블룸스버리 그룹이 1차 대전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택했다는 이유로 버지니아 울프 역시 정치에 무관심했다고 흔히 착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버지니아의 남편인 레너드 울프는 평생 좌익의 입장에서 정치에 깊게 관여했으며 버지니아 울프는 정치와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새로운 문학, 새로운 예술,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선배들과 모조리 싸우고 싶어했던 다음 세대의 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작가였다. 그는 1차 대전 이후 또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줄리언 벨 세대의 환멸을 이해했다. 그렇기에 때로는 그들의 호전성이나 치기 어린 설익음을 비판하고 놀리면서도 그들이 진지하게 제시한 문제들을 무시해버리지 않을 수 있었고 이런 태도는 후에 [3기니]와 같은 뚜렷하게 정치적인 작품으로 이어지게 된다.   

"민주주의도, 이성도, 설득도, [뉴 스테이츠먼]에 기고하는 것도 다 뒤늦은 일이고, 참 딱한 일이라고 말하며 버지니아가 편지에 서명을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이제 유일한 선택은 항복 아니면 싸움이다."                                                                                                                   - 줄리언 벨이 퀜틴 벨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번 에피소드에서 줄리언 벨은 중국에서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시기는 1937년으로 버지니아 울프가 시의 의무를 묻는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대답으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출간한 후 5년이 지났다. 줄리언 벨은 더 이상 시인도, 소설가도 꿈꾸지 않았다. 그는 이제 언어가 아닌 행동으로 파시즘에 맞서 싸우고 싶어했다. 스페인으로 가서 프랑코에 대항해 공화파에 가담함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 경험을 얻고 싶다는 줄리언의 계획은 모두를 불안으로 몰아 넣었지만 그는 단호했다. 바네사와 버지니아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설득하려 애썼지만 군인이 아닌 구급차 기사로 참여하겠다는 타협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그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 했다. 7월 7일 영국을 떠난 줄리언 벨은 7월 18일 프랑코 측의 독일 비행기들이 가한 폭격에 폐 관통상을 당해 29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바네사는 심한 우울증에 빠져들었고 이 시기에는 버지니아와 던컨만이 유일하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후에 회복되기는 했으나 바네사는 첫 아이의 죽음을 끝내 극복하지 못 했다. 버지니아 울프 역시 격렬한 슬픔과 분노를 느꼈지만 줄리언 벨이 죽기 전 쓴 에세이를 읽고 그를 이해했고, 죽은 오빠 토비를 [제이콥의 방]에서 되살려 내었듯이 자신의 글 속에서 살아 생전 줄리언이 하고 싶어했던 논쟁을 계속 이어나갔다.


2) 버지니아와 비타의 만남


레너드 울프가 찍은 버지니아 울프(좌)와 비타 색빌 웨스트(우)

비타 색빌-웨스트와 버지니아 울프는 1920년대 말에 만나 친구가 되었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사랑에 빠졌다가, 1935년에는 절교를 했고 다시 친구로 남았다.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으로 몇 번이나 큰 스캔들에 휩싸였던 양성애자인 비타 색빌-웨스트는 살아 생전에는 버지니아 울프보다 더 잘 알려진 베스트 셀러 작가였다. 오해와 애정, 존경과 열정이 뒤죽박죽된 두 사람의 관계는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에 영감을 주었고 두 사람 모두 이 작품을 좋아했지만 일단 픽션으로 변형되고 나자 현실에서의 두 사람의 관계 역시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에피소드의 배경이 된 1930년대 말 두 사람은 이미 정치적 견해 차이와 비타의 폭음 등으로 인해 사이가 멀어졌다 회복된 후로 한때 바네사를 질투하게 만들었던 서로를 향한 열정적인 독점욕은 사라진 상태였다. 두 사람은 동료 작가이자 옛 친구로 남았고 그 우정은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데 두 사람이 모두 죽고 난 후 비타 색빌-웨스트의 둘째 아들 나이젤 니콜슨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짧은 평전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평전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 각자에 대한,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글은 차고도 넘친다. 비타 색빌-웨스트는 매우 흥미로운 삶을 살았던 유명인이라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는 없는 인물이지만 바네사 중심의 쇼인 만큼 많이 등장하지는 않아 이 정도 배경 설명으로 마친다.


3) 안젤리카 벨의 비밀


안젤리카 벨과 버지니아 울프

[Life in Squares]가 블룸스버리 그룹과 스티븐 가문의 공식 기록자라고 볼 수 있는 버지니아 울프가 아닌 화가인 언니 바네사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것이 신선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이런 '대안적' 시각은 유지되어 우리는 퀜틴 벨이 아닌 안젤리카 벨의 시각으로 블룸스버리 그룹의 삶이 그들의 아이들에게 미친 영향을 바라보게 된다. 클라이브와 바네사의 둘째 아들인 퀜틴 벨은 예술을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이자 교수로서 긴 삶을 살았고 버지니아 울프의 기록자 역할을 물려 받아 블룸스버리 그룹에 관한 영향력 있는 저작들을 많이 남겼다. 그는 다소 경쟁적인 관계였던 형 줄리언과는 달리 어릴 적부터 블룸스버리의 어른들과 좀 더 친밀하고 장난스러운 사이었고, 그가 남긴 글들은 가까운 가족만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들로 가득한 뛰어난 작품으로 여전히 블룸스버리 연구에 있어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를 깊이 있게 연구한 허마이오니 리의 평전은 퀜틴 벨의 연구를 방대하게 인용하면서도 그를 비롯한 남성 작가들이 오해하거나 잘못 분석한 부분에서는 여러 증거를 들어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Life in Squares]는 허마이오니 리의 시각을 많이 빌려온 것 같다는 이야기 역시 여러 번 했는데, 2세대의 이야기를 하면서 줄리언 벨이나 퀜틴 벨이 아닌 안젤리카 벨을 주인공으로 택한 것 역시 그 영향이 아닐까 싶다. 이 에피소드는 안젤리카 벨이 쓴 자서전 [Deceived with Kindness](친절함으로 기만 당하다)를 꼼꼼하게 참고한 듯 한데, 이 책은 오빠 퀜틴 벨의 평전들 못지 않게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었다. 

바네사 벨과 안젤리카 벨

"나를 한 명의 사람으로서 생각해 본 적이 있기나 한 가요?" 내가 안젤리카 벨의 자서전을 읽어보게 된 이유는 이 에피소드에서 그가 외친 말 때문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성인이 된 안젤리카 벨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곧장 깨달을 수 있었다. 나부터도 안젤리카 벨은 버지니아 울프의 삶에서 일종의 흥미로운 부록으로만 취급해오지 않았던가. 그 역시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 세상을 살았다는 것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 채 나는 안젤리카 벨을 블룸스버리 그룹의 자유분방함의 증거로만 가볍게 생각했다. [Deceived with Kindness]를 읽어 보면 안젤리카 벨 본인 역시 자신이 그런 식으로 받아 들여졌음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일종의 묵인 속에서 클라이브 벨의 딸로 키워진 안젤리카는 바네사가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 것을 과보호로 보상하려 했다고 회상한다. 그는 자라면서 조금이라도 힘들거나 흥미가 없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탓에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된다. 빅토리아 시대의 부모들에게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블룸스버리 그룹의 아이인 그가 좀 더 전통적인 가족과 엄격한 어른이 자신을 끌어주기를 바라곤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안젤리카 벨은 어머니인 바네사와 이모 버지니아는 진저리를 치며 거부했던 전형적인 대지주 벨 가문의 시골 집의 전통과 블룸스버리 그룹의 어른들 중 유일하게 자신에게  애정 어린 훈육을 했던 이모부 레너드 울프의 엄격한 끈기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버지니아 울프는 안젤리카를 아꼈고 그의 애정을 두고 언니와 경쟁했지만 자신의 재능을 훈련할 기회 없이 응석받이로 자란 안젤리카는 자라면서 자신이 버지니아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는 불안을 느꼈다고. 안젤리카에게는 기댈 사람이 필요했다. 바네사의 모성애는 강렬했지만 태도는 냉정했고 클라이브는 유쾌하지만 회피적이었다. 바네사와 함께 살고 있었던 던컨은 어른이라기 보다는 친구 같았다. 

[Life in Squares] 속 안젤리카와 버니(데이빗 가너트)

이런 분위기에서 내면의 힘을 기르지 못한 채 성인이 된 안젤리카는 하필 줄리언이 사망한 그 해 여름 던컨이 자신의 생부라는 말을 듣고 큰 충격에 빠진다. 진실이 드러난 후에도 던컨이 아버지 역을 맡으려 하지 않은 것도 상처가 되었다. 아버지를 갈구하던 그는 레너드 울프를 제외한 모두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던컨의 옛 애인이었던 버니, 데이비드 가너트와 결혼한다. 바네사는 후에 안젤리카의 어린 딸들에게 다정하고 재미있는 할머니가 되어주는 것으로 딸에게 만회하려 했지만 안젤리카와 버니의 불안한 결합은 결국 안젤리카가 그를 떠나면서 끝난다. 안젤리카와 던컨, 바네사는 계속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지만 후에 안젤리카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솔직하게 드러낼 기회를 놓쳤음을 강렬하게 후회했다.


 줄리언과 퀜틴, 안젤리카 모두가 정도는 다르지만 자신의 부모 세대의 회피적인 태도, 고도로 지적이고 예술적이었지만 실제적이고 감정적인 문제에서는 초연함을 가장하는 냉정한 태도를 비판했다는 사실에는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다. 부모 세대의 과장되고 형식적인 삶의 태도에 질려 자신들만의 삶을 만들고자 했던 블룸스버리 그룹 역시 다음 세대에게는 많은 문제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안젤리카 벨(가너트)의 짧은 전기는 사랑에서 비롯된 기만 속에서 보호 받으며 살아왔던 요정 같은 소녀가 뒤 늦게 나마 자신의 삶과 직면하면서 한 명의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진솔하게 담긴 감동적인 기록이었다.


4)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


크리켓을 하고 있는 어린 버지니아(좌)와 바네사(우). 버지니아 울프는 뛰어난 크리켓 선수였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은 [Life in Squares]가 가장 훌륭하게 처리한 부분이었다.  [디 아워스] 등과 같은 소설과 영화로도 이미 잘 알려진 레너드 울프에게 보내는 버지니아 울프의 유서 대신 바네사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인용함으로써 다른 시각을 택했을 뿐 아니라 그의 죽음이 불러온 수 많은 오해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사실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는 없으나) 청소년기에 발병한 후 평생 시달렸던 정신 질환의 재발을 두려워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칠 피해를 감당할 수 없어 자살을 택했다. 그러나 한 검시관이 자신의 보고서에서 그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남보다 민감하게 느껴서 자살을 택했다고 추측한 기록을 남긴 것이 화근이 되어, 레너드 울프는 아내를 잃은 힘든 시기에 사방에서 공격을 받아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고통을 더 "민감"하게 느껴 자살했다는 검시관의 문구에 격앙 되었으며 엘리트주의적이고 연약한 자기 연민에 휩싸여 있었다고 버지니아 울프를 비난했다. 30년대 내내 정치적 변화들을 민감하게 관찰하면서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3기니]와 같은 논쟁적인 에세이를 써냈던 작가에게는 부당한 비난이었다. 이어 레너드 울프는 방대한 양의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는 전쟁의 일반적인 긴장을 느꼈으며, 병의 재발은 분명히 부분적으로는 그런 긴장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편지에 적힌 말과 그녀가 항상 해왔던 말로 미루어 그녀는 '해나갈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광기가 발작하리라 생각했고, 이번에는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자살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 번 만들어지기 시작한 사후 신화는 그대로 굳어져 갔다. 나치의 폭격을 받으면서도 영국 전체가 꿋꿋하게 버티는 동안 먼저 포기해 버린 사람, 너무 연약하게 심미적이며 예민해서 자신에게도 좋을 것이 없는 사람으로서의 이미지는 계속되었다. 그 후 전쟁과 함께 끝나버린 영국 문학의 한 시기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던 그는 1960년이 되어서야 재 연구되기 시작하여 더 광범위한 독자층을 위한 히로인이 되었다.


바네사 벨은 특유의 침묵과 끈기로 삶을 계속 꾸려나갔다. 던컨과의 여행과 그림, 퀜틴과 안젤리카의 아이들로 삶을 채워 나가던 그는 1961년 추억으로 가득한 찰스턴의 집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

첫 에피소드를 소개할 때도 얘기했지만 나는 [Life in Squares]가 드라마로도 뛰어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블룸스버리 그룹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티비 쇼나 영화를 하도 오랫동안 기다려왔기에 반가움에 제대로 판단할 눈을 잃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나지만 화면은 너무 어둡다는 사람도 있고 너무 겉핥기 식이라는 평도 봤지만 나로서는 이 방대한 정보들을 대사의 홍수 없이 세 편의 절제된 영상 언어로 풀어냈다는 것 만으로도 성취라고 생각한다. 블룸스버리 그룹은 엄청난 양의 이야기를 남긴 유명인 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남기지 않았던 바네사와 유명한 부모 세대의 인물들과 오빠들의 이야기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안젤리카를 주인공으로 삼은 방향의 전환도 마음에 든다. 버지니아 울프의 팬이라면 당연히 흥미로울 작품이고 블룸스버리 그룹에 흥미가 생긴 분들에게는 훌륭한 입문작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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