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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우는 소리에 아무도 깨지 않는 외로운 수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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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마이오니 리가 쓴 버지니아 울프의 방대한 전기에서 개별의 장을 부여받은 사람은 다섯명뿐입니다. <제이콥의 방>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버지니아가 계속해서 되살려내고자했던 너무 젊은 나이에 죽어버린 오빠 토비, 인생의 반려자였던 레너드, <올랜도>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비타, <자기만의 방>과 <3기니>에 큰 영향을 주었던 에설, 그리고 캐서린 맨스필드.

언뜻 생각해보면 허마이오니 리가 캐서린 맨스필드를 나머지 네 사람과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기로 결심한 것은 다소 의아하게 느껴집니다. 뉴질랜드 출신의 뛰어난 단편 작가인 캐서린은 물론 매우 흥미로운 삶을 살았지만 버지니아 울프와의 인연은 1917년-1920년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만 지속되었을 뿐이거든요. 그나마도 둘의 우정은 늘 어려웠고, 안정된 기반이 없었으며 오해와 직업적인 질투 등으로 뒤범벅이 된 불안한 관계였습니다. 게다가 캐서린은 23년에 34살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으므로 버지니아 울프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말년의 편안함과 성숙해진 태도로 그녀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도 갖지 못했고요. ​

사람이 사람 싫어하는데는 이유가 필요 없다지만, 이 둘에게는 너무나 많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나마도 인연을 유지한 것이 신기할 정도로 두 사람에게는 서로를 갈라놓을 것이 너무나 많았어요. 맨스필드는 울프가 속해있었던 친교 집단인 블룸스버리에 속해 있지 않았고 후에는 거의 반-블룸스버리적 노선을 취했는데 이것은 당시 영국 예술계에서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으며 버지니아 울프를 방어적으로 만드는 많은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의 주변에는 서로 알고 지냈던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들끓었는데(특히 '당신은 마치 벌집 속에서 사는 것 같다 '는 말을 들었던 버지니아 울프 쪽이 더욱) 이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뒷말들을 전달하면서 흥미로운 가쉽거리를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와 평생 친밀하지만 까다로운 관계를 맺고 있었던 형부 클라이브 벨의 활약이 특히 눈부셨죠. 캐서린에게 아무리 뒤집어봐도 역시 싸구려인 시장의 물건 같다고 하질 않나, 독설을 즐겼던 클라이브 벨은 캐서린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버지니아를 방어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점점 악화되는 캐서린의 병 때문에 자주 만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일종의 이미지로 만들어 조롱하거나 비난했고, 그러면서 양쪽 모두 상처를 입었죠.

두 사람이 서로를 공격한 내용을 보면 후대의 독자로서는 안타깝지만 솔직히 재밌기도 합니다.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강하게 의식했던 두 사람은 상대방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을 골라서 공격을 하곤 했는데, 공식적 지면에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상대방이 충분히 들을 수 있을만큼의 음량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서로 들으라고 한 소리죠. 캐서린 맨스필드는 고독하게 병을 앓고 있던 시절에 소외감과 일시적인 분노에 차 버지니아 울프가 보호받는 엘리트 집단의 일원이며, 한때 모더니즘의 선진 기수였던 그녀의 글이 이제는 지적 속물주의로 가득한 "구식"으로 보인다며 맹렬하게 치고 올라오는 후대 작가들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울프의 급소를 인신공격에 가까운 잽으로 찔러댔고 버지니아는 이에 대해 캐서린의 새 작품에 대해 아예 평을 하지 않으며 무시하는 것으로 응답했습니다. 물론 울프는 좀 더 사적인 방식으로 캐서린의 반짝이던 잔재주가 사라져감을 통렬하게 꼬집었는데, 제가 처음으로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이름을 들은 것도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구절에서였어요.

"나는 <지복>을 읽고 "캐서린도 이제 끝났군!" 하고 소리치며 내동댕이쳤다. 이런 글을 읽고 난 뒤에 캐서린에 대해 여자로서, 또 작가로서 얼마만큼 신뢰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캐서린의 지력은 아주 얕은 두께의 흙으로, 완전 불모의 바위를 겨우 1,2인치의 두께로 덮어 싼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지복>은 비교적 긴 작품이므로 좀 더 깊이 파고들어갈 기회가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캐서린은 피상적인 재치를 보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구상 전체가 빈약하고 경박하며, 설사 불완전하더라도 가치 있는 정신의 비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문장도 서툴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 캐서린이 둔감하고 냉혹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1918년 8월 7일,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에서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 끈질기고 치열하며 재능있는 전기작가가 캐서린 맨스필드를 버지니아 울프 인생에 영향을 준 중요한 인물중 한 명으로 꼽은 걸까요? 둘은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어려운 사이었고 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까웠는데 말이죠. 버지니아 울프뿐만 아니라 전기작가인 허마이오니 리의 팬이기도 한 저는 그 이유를 캐서린 맨스필드가 버지니아 울프의 작가 인생에서 가장 동등한 관점에서 놓고 비교가 가능한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울프에게는 동시대 작가들이 많았지만 캐서린과는 같은 여성작가로서 더 강한 유대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근본적으로 정의하자면 동료 작가였던 거죠. 버지니아 울프와 캐서린 맨스필드는 외모, 기질, 경험에서부터 몹시 달랐고 6살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글쓰기를 매우 진지하게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전문 작가였고, 또한 여성 작가였으며, 앞 세대의 문학적 전통에서 벗어나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이끌었던 동시대의 예술가였기에 만나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때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이해한다고 느꼈습니다. 캐서린 맨스필드는 드물게 정직한 편지에서 버지니아 울프에게 "당신은 내가 일에 관해 말하고 싶은 유일한 여자입니다. 다른 누구도 결코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곤 했고 버지니아 울프는 다른 똑똑한 여자들과의 우정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글쓰기라는 예술에 대한 열정적이고 진지한 열망을 캐서린 맨스필드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언제나 서로의 생각을 자극시키는 뛰어난 담화를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던 버지니아 울프인만큼 캐서린 맨스필드의 믿을 수 없고 변덕스러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먼저 손을 내밀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이죠. 모더니즘의 시작과 한계를 함께 경험했던 두 사람은 늘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존재에 자극을 받았으며 작업중인 작품에 서로의 대화에서 받은 영향을 반영했고, 무엇보다 서로에게 있어 글쓰기가 그저 취미나 교양을 쌓기 위한 여성들의 소일거리가 아닌 영혼을 지배하는 소명임을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

​ 하지만 두 사람은 안타깝게도 이렇게 서로의 옆구리를 찔러대는 것을 멈추고 좀 더 안정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행운을 얻지 못합니다. 캐서린 맨스필드와 버지니아 울프의 불안정한 관계는 많은 부분 맨스필드의 이미 악화된 건강 상태가 원인이었습니다. 맨스필드는 고독했고, 불안정했으며, 자신이 쾌차하여 정상적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곧 죽을 것이라는 절망을 늘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고 해요. 울프 역시 뒤늦게 이것을 헤아리고 맨스필드의 죽음 이후 나는 내가 우는 소리에 아무도 깨지 않는 외로운 수탉이다, 라고 일기에 쓰며 캐서린과의 관계를 새로이 정의하고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등대로>라는 작품에서 요절하는 인물에게 맨스필드의 죽음이 불러일으켰던 이미지를 입히기도 합니다. 1931년에 울프는 비타에게 보낸 편지에서 캐서린이 등장하는 꿈을 자주 꾼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누군가 죽은 후에도 우리가 그 사람과의 관계를 꿈 속에서, 그리고 때로는 기묘하게도 현실에서조차 이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지" 라고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캐서린에 대한 울프의 감정은 맨스필드가 살아있었다고 해도 결국 자신이 승리했으리라는 확신과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하고 죽은 동료에 대한 동정심, 살아 생전 어려웠던 관계에 대한 후회, 그리고 맨스필드의 성실하지 못했던 남편이 그녀의 유골(작품)을 졸여대는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섞인 복잡한 상태로 맨스필드의 사후에도 계속해서 그녀에게로 되돌아오곤 했죠. 허마이오니 리가 훌륭하게 표현한대로 맨스필드는 버지니아 울프에게 우리가 사랑했지만 대화를 끝내지 않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처럼 늘 마음에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역사 속 라이벌! 이런 얘기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캐서린 맨스필드와 버지니아 울프를 보고 이게 이래서 재밌구나, 하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캐서린 맨스필드가 버지니아 울프의 절친한 친구이자 유명한 미술 평론가였던 로저 프라이가 모임에서 버지니아가 자신의 글로서 세상을 점령하려고 한다, 라고 하자 "나도 약간을 쓸 수 있다"는 말을 쓴 종이를 핀으로 가슴에 꽂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고 고백한 일화나 버지니아 울프가 캐서린과의 논쟁 끝에 집필 중이던 <델러웨이 부인>을 두고 이것은 오로지 나 자신에 대한 에세이가 아닌가? 라고 의문을 가졌다는 일화는 너무 즐거워요. 뛰어난 동시대 예술가들이 이렇게 날카롭게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오로지 당신만이 나를 이해할 수 있다, 라고 인정하는 것을 지켜보는 건 그냥 후대 사람으로서 되게 즐거운 일이더라구요.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허마이오니 리의 인생의 역작이라고 느껴지는 버지니아 울프 전기를 꼭 읽어보시고, 저는 버지니아 울프의 편지 모음집과 다음의 책들도 함께 참고했습니다. 다 재밌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시간 나실때 한 번..! 캐서린 맨스필드도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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