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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외할아버지

 나는 종종 엄마의 가족들, 그러니까 나의 외가 친척들이 너무나 다정하고 부드럽지만 동시에 겁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엄마를 놀리곤 하는데, 엄마의 말에 따르면 그런 성향은 아마도 엄마의 외가로부터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나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상당히 겁쟁이고 언니는 그냥 대놓고 겁쟁이인 것 같고 사촌 동생들도 역시 상당한 겁쟁이니까 우리는 일단 3대가 겁쟁이인 셈이다. 그리고 이 겁쟁이 피라미드의 최상층에는 엄마의 외할아버지가 있다.

 엄마는 어릴 때 몇년 간 시골에 있는 엄마의 외가에서 살았는데,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입을 덜기 위해 가장 나이가 많은 첫째를 친척집에 맡기는 건 흔한 일이었다고 했다. 흔하다고 해서 어린 아이가 시골 친척집에 맡겨지는 걸 달가워했을리는 없고, 어린 엄마도 마찬가지였는데 엄마는 그 시절을 얘기할때면 외가에서 저녁으로 먹어야 매일 먹어야 했던 음식이 특히 너무 싫었다고 했다. 사료용으로 재배되는 퍽퍽한 식감의 옥수수와 낮에 삶아서 딱딱해진 감자, 거기다 끈적끈적한 칼국수를 매일 밤 먹어야 했다니 어린 여자아이로서는 짜증이 날 법도 하다. 엄마는 고집이 센 편도 아니었고 셌다고 한들 그 시대의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던 많은 딸들이 그랬듯이 발언권도 전혀 없었겠지만, 감자+옥수수+칼국수 조합만큼은 참을 수가 없어서 종종 끼니를 걸렀다고 했다. 어릴 적에 이 얘기를 들을 때면 이 대목에선 내가 늘 "나는 감자도 옥수수도 칼국수도 좋아하는데!" 라고 외치면 엄마가 짐짓 한숨을 내쉬면서 엄마가 먹어야 했던 옥수수와 감자와 칼국수의 맛 없음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우리의 정해진 레퍼토리였다. 나는 아직도 저 얘기를 들을때면 가끔 엄마에게 일부러 시골 감자 맛있지 않아? 라고 물어본다.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오로지 엄마가 자세하게 저 조합을 욕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여하튼 엄마의 외할머니는 손자에게만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외손녀야 밥을 굶건 나가서 남의 집 밥을 훔쳐먹건 전혀 몰랐을 사람이었지만 다행히도 엄마의 외할아버지는 어린 손녀가 밥을 거르는 것을 마음 아파한 다정하고 소심한 성격의 남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이면 밥을 하는 가마솥 안에 그날 저녁에 사람들이 먹고 남긴 (분명히 맛이 없어서였겠지) 딱딱해진 삶은 감자를 함께 넣어서 쪄주거나 불에 살짝 구워서 노릇노릇하게 만들어주었다고 하는데, 배가 고픈 손녀를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몰래 감자를 다시 구워주는 사람. 그게 엄마가 외할아버지에 대해 갖고 있는 첫번째 기억이다.

 두번째 기억은 좀 더 이번 포스팅의 주제에 가깝다. 엄마는 외가에 있는 동안 종종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모나 외삼촌 등의 친척집을 방문하곤 했는데 그럴때면 엄마의 외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갓 쓰고 좋은 두루마리를 차려입고 한 손에는 먹을 것과 선물을 들고 길을 나섰다고 했다. 급할 것도 없는 방문에 왜 아침 일찍부터 나서야 했냐면, 엄마의 외가에서 다른 마을로 가려면 긴 기찻길을 건너야 했는데 얕은 강 위로 놓여진 그 기찻길을 엄마의 외할아버지가 건너는 방법이 그야말로 겁쟁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기억에 따르면 그 과정은 이렇다. 한 손에 수박을 든 엄마의 외할아버지가 강 위에 놓여진 기찻길에 다다르면 기찻길 한 칸에 수박을 먼저 놓고 엉금엉금 기어간 다음 다시 수박을 다음 칸으로 옮기고 또 다시 그만큼 기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안전하다 싶으면 어린 엄마에게 손짓을 하고 그러면 엄마는 그 뒤에서 똑같은 자세로, 하지만 수박을 굴려야 하는 부담은 없이, 엉금엉금 따라 기어갔다고. 답답하지 않았냐는 내 질문에 엄마는 듬성듬성한 기찻길 틈으로 밑에서 흘러가는 시퍼런 물이 무서워서 그저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한 기억밖에는 없다고 했다. 그 물이 그렇게 깊었을리가 없었다고 엄마는 말했지만 어린아이의 기억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굴린 수박을 들고 드디어 친척집에 도착하면 한밤중이 다 되었다고 했다. 아마 돌아올때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겠지. 이 정도면 가히 겁쟁이 피라미드의 원조라고 할 만하다. 나는 이런 종류의 겁은 없지만 언니와 엄마는 바이킹만 타도 혼비백산을 하는 사람들인데 핏속의 겁쟁이 증조 할아버지의 유전자가 보내는 경고 때문임이 틀림없다.

  안타깝게도, 나는 엄마의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엄마의 외할머니는 장수하셔서 내가 성인이 될때까지 살아계셨지만 엄마의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셨고 뱀이 들끓어서 어린 엄마를 기겁하게 했던 엄마의 외갓집은 이제 그곳에 남아있지도 않다. 하지만 엄마의 기억 속에서 외할아버지는 감자를 구워주던 모습으로, 갓과 두루마리를 차려 입은 채 수박을 굴리며 엉금엉금 기어가던 모습으로 남아있고, 나는 엄마가 그 얘기를 나에게 들려주면서 터뜨린 웃음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이 겁쟁이 외증조 할아버지를 좋아한다. 이 기억들이 없었다면 엄마가 외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온통 감자와 뱀과 옥수수와 칼국수와 무관심뿐이었을테니까. 겁쟁이 AND PROUD라고나 할까. 뭐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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