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Life in Squares (1)


BBC에서 새롭게 시작한 <Life in Squares>는 1900년대 초중반 런던의 예술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블룸즈버리 그룹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블룸즈버리 그룹은 어떤 공통의 의제나 행동강령을 가지고 있었던 공적인 집단이라기 보다는 케임브릿지의 사교 클럽에서 시작하여 꾸준히 우정을 유지한 취향 맞는 친구들의 모임에 가까웠다. 블룸즈버리 그룹이라는 것은 딱 잘라 정의할수도 없고, 지나치게 부풀려진 신화가 되어갈 때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허구였다는 주장도 있으며, 중 상류층 출신의 엘리트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문학/예술 도당이었다는 비난도 있지만, 어느 쪽이 되었건 구성원들 대부분은 평생 지속되는 우정을 유지했다. 


버지니아 울프와 블룸즈버리 그룹은 워낙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소재라 티비쇼가 나온 것을 기념하여 오랜만에 자막을 만들어봤는데, 스포가 될 만한 내용이 많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읽기 싫으신 분들은 여기서부터는 이제 읽지 마시고 첨부 파일로 올라와 있는 자막만 받으면 된다.

lifeinsquares1.srt

 블룸즈버리 그룹은 어떻게 분류하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지만 구성원이었던 레너드 울프가 60년대에 쓴 바에 따르면, 바넷사와 클라이브 벨, 버지니아 그리고 레너드 울프, 에이드리언 그리고 캐런 스티븐, 리튼 스트래치, 메이너드 케인스, 덩컨 그랜트, 모건 포스터, 색슨-시드니 터너, 로저 프라이, 데스먼드와 몰리 매카시, 그리고 줄리언, 퀜틴과 안젤리카 벨과 데이비드 가너트가 나중에 추가되었다고. 이들 중에는 지금은 물론이고 당대 이미 이름을 날렸던 화가, 소설가, 문학 평론가, 경제학자등도 있었고 색슨-시드니 터너처럼 평생 블룸즈버리의 일원이었지만 평범한 공무원으로 죽은 사람도 있으며 줄리언, 퀜틴, 안젤리카처럼 1세대 블룸즈버리의 아이들인 2세대들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들 역시 처음부터 이렇게 런던의 유명인사들은 아니었으며 드라마 <Life in Squares>는 이들의 불안하고 서툴렀던 청년기에서부터 시작한다.


Ep.1 - <1905-1908>

 가족 중 누군가가 죽을 때마다 집도 잃었다. 줄리아 때는 톨랜드 하우스를, 레슬리 때는 하이드 파크 게이트를, 토비 때는 고든 스퀘어를 잃었다. "더 나쁜 소식, 바넷사와 벨이 약혼했어... 불쌍한 버지니아! 그리고 에이드리언!" 리튼 스트래치는 토비의 죽음을 알고 허전해하는 레너드 울프에게 썼다.

                                                                                          - 허마이오니 리 <버지니아 울프>


 스티븐가 아이들의 청년기는 죽음으로 가득하다. 모성애가 강하고 단호하면서도 관능적이었던 첫째 바네사, 형제 자매들의 우상이자 아버지인 레슬리 스티븐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던 둘째 토비, 예민하고 병약했지만 장난기 넘치고 영리했던 셋째 버지니아, 그리고 가장 환영받지 못했던 우울한 성격의 막내 에이드리언으로 이루어져 있던 네 형제는 제대로 성인이 되기도 전에 여러 차례 가족의 죽음을 겪으면서 위기마다 자신들을 새롭게 정의해야 했다. 빅토리아 시대 '집안의 천사'의 전형이었던 매력적인 어머니 줄리아를 갑자기 세상을 뜨고,, 어머니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였던 이복 여자 형제 스텔라를 뒤이어 죽었으며 <인명대사전>을 편찬한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유명한 지식인이었지만 가정에서는 고압적으로 애정을 요구했고 죽은 부인을 끝없이 애도함으로써 아이들을 진절머리 나게 했던 아버지인 레슬리 스티븐은 길고 고통스러운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남자 형제였던 토비와 에이드리언은 그나마 학교로 도망칠 수 있었지만 어머니 역을 대신해야 했던 언니 바네사와 건강과 재정 문제로 집에서 교육을 받았던 버지니아에게는 숨 막히는 세월일 수 밖에. 그 결과로 바네사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영원히 거두어버렸지만 버지니아는 평생 미움과 애정 사이를 오가며 <등대로>에서 아버지와 먼저 간 가족들을 되살려내기도 했다.


  이 드라마의 첫번째 에피소드는 1904년에 레슬리 스티븐이 세상을 뜬 후, 스티븐 가의 아이들이 켄싱턴 거리에 있던 하이드 파이크 게이트를 떠나 보수적인 친척들의 반대도 무릅써가면서 좀 덜 점잖지만 활기찬 에너지가 넘쳤던 블룸스버리의 고든 스퀘어에서 독립적인 삶을 시작하려던 시점에서 시작한다. 고든 스퀘어로의 이사는 단순한 독립일 뿐만 아니라 버지니아에게는 이복 형제들의 성적인 폭력과 사회적으로 여자들에게 요구되던 압력으로부터의 탈출이기도 했다. 바로 이 집에서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준비중이던 토비는 대학시절 가입했던 유서 깊고 배타적인 것으로 유명했던 캠브릿지의 사교 클럽 <사도회>의 옛 친구들을 다시 모아 목요 모임을 시작했고, 여기에 바네사와 버지니아가 합류하면서 블룸즈버리 그룹의 초기 멤버가 모이게 된 것. 그러나 1910년이 되기까지는 이들은 '블룸즈버리 그룹'이라고 내적으로건 외적으로건 인식되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목요 모임'은 친구들끼리 목요일에 모여 후기 빅토리안-에드워드 시대의 다소 위선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부모 세대의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그러면서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채) 우정을 다지는 사교 클럽에 가까웠다. 평생 블룸버리의 남자 구성원들과 친밀하면서도 그들의 남성 중심적이고 동성애로 결합된 무리 의식에 대항하는 여성 고유의 예술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던 버지니아는 초기에는 오빠 토비가 격찬했던 이 케임브릿지 무리를 냉정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케임브릿지에 졸업시험에 떨어지거나 성적이 좋지 못해 펠로우로 채용되는 것에 실패했으며 아직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대학 시절의 향수에 젖어 있었는데 법조인으로서의 길을 가려고 준비 중이던 토비나 이미 특수 연구원 장학금을 받고 펠로우로도 채용되었던 뛰어난 메이너드 케인즈만이 예외였다. 후에 예술 평론으로 방향을 돌린 클라이브 벨, 아직 작가로서의 자질을 드러내지 못했던 리튼 스트래치, 스트래치의 사촌으로서 좀 더 후에 이 그룹에 들어오게 된 무명의 화가 던컨 그랜트 그리고 식민지 관리로서의 삶을 택한 레너드 울프 등 목요 그룹의 회원들은 혹은 미래의 회원들은 아직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민감하게 느꼈으며 이 변화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버지니아는 이 목요 클럽의 대화가 얼마나 현학적인 동시에 지루했는지, 분위기는 또 얼마나 어색했는지 자주 풍자적으로 쓰고 회상했지만 2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클럽은 점점 더 대학 클럽의 모습을 떨쳐내고 친밀하고 지적인 모임의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스티븐가의 형제들끼리만 떠난 그리스 여행에서 토비가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죽게 되자 친구들은 슬픔과 상실로 인해 좀 더 가깝게 뭉치게 된다. 남은 형제들에게는 끔찍한 시간이었던 애도의 기간에 클라이브 벨은 토비에 대한 헌신과 성실한 애정을 보여주었고, 이에 바네사는 거절했던 그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버지니아에게는 오빠인 토비의 죽음 못지 않은 충격이었다. 2년의 자유로운 생활이 갑작스럽게 끝나고 버지니아는 고든 스퀘어에서 예술적 삶의 정수를 꽃 피우는 듯이 보였던 클라이브와 바네사에 맞서 피츠로이 스퀘어에서 에이드리언과 자신의 삶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버지니아는 훌륭한 안주인 노릇에는 소질이 없었고 늘 침울하고 까다로운 막내 에이드리언과도 마음이 맞지 않았다. 메이너드 케인즈와 던컨 그랜트등의 하숙인을 받고 유일한 여자 거주인으로서 보수적인 친척들을 질색하게 만들 정도로 대담한 생활을 하는 듯 하면서도 버지니아는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마음은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초조함과, 언니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을 보면서 언니를 빼앗겼다는 상실감, 죽은 오빠를 향한 그리움 등으로 온통 뒤죽박죽이었는데, 후에 이 시기를 돌아볼 때면 버지니아는 늘 슬프고 고독했다고 회상하곤 했다. 또한 이 시기에 버지니아는 아이에게 정신을 온통 빼앗긴 바네사에 대한 공통의 불만감을 바탕으로 형부인 클라이브 벨과 미묘하고 위험한 애정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클라이브는 버지니아의 작품을 최초로 읽고 평가해준 인물로서, 친밀하게 챙겨주는 오빠 같은 친구로서 버지니아에게 다소 위험한 구애를 했다. 이후 클라이브는 평생 버지니아에게 일종의 권리를 주장하고 버지니아가 이에 맞서기 시작하면서 둘은 좀 더 악의적이지만 동시에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바네사는 버지니아와 남편의 이런 관계에 특유의 냉담함과 솔직함으로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는데 이런 복잡한 배신은 두 자매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바네사와 버지니아는 평생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지만 둘의 관계는 종종 방어적이었으며 신뢰는 늘 문제가 되었다고.


  전 세대의 보수적이고 암시적인 인간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들은 동성애적 성향이 매우 강하기도 했고 이성애이건 동성애든 간에 자유롭게 열린 관계를 지향하고자 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인지라 이들은 평생 애정 관계에서는 서로를 질투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갈망하기도 하는 복잡한 관계를 맺었다. 후에 남자들은 대부분 그룹 밖에서 평생의 반려를 찾게 되긴 하지만 이 그룹의 가장 대담하고 개성 강한 동성애자였던 리튼 스트레치는 사촌인 던컨 그랜트를 오랫동안 열망했고 ,그가 메이너드에게로 떠나자 절망했으며 던컨은 바네사와 미묘한 감정이 있었다. 클라이브는 위에서 말했듯이 처제인 버지니아에게 아슬아슬한 구애를 했고, 리튼 스트레치는 인도에서 외롭게 고생중이던 레너드 울프와 매우 친밀한 사이었는데 레너드와 리튼은 모두 케임브릿지 시절 토비 스티븐을 강렬한 감정으로 숭배하기도 했다. 리튼과 버지니아, 레너드의 관계도 후에 다소 독특한 형태를 띄게 되는데 이는 다음 에피에 나올 것 같으니 그때 얘기해도 되겠지.


 실제 던컨 그랜트는 1910년이 넘어서야 그룹의 일원이 되었지만 드라마에서는 시간대를 조절해서 좀 더 중요한 인물로 처음부터 소개하고 있다. 던컨은 케임브릿지 동급생도 아니었고 사촌인 스트레치를 통해서 들어온 독특하고 외부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는데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건 그 그룹 모두가 한번쯤은 던컨을 열망의 대상으로 삼았을 만큼 매력적이었다고. 리튼과 메이너드와의 관계 뿐만 아니라 던컨과 바네사와도 좀 더 복잡하게 깊은 관계를 맺게 되는 만큼 앞으로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가 된다.


written words

와조스키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