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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증언

1893-1914

1929년, 저널리스트, 평론가, 강연, 교사, 그리고 몇 편의 소설들을 써 낸 젊은 소설가로 활동 중이던 베라 브리튼은 동시대 작가인 리처드 알딩턴의 [영웅의 죽음]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평을 쓴다. 1차 대전 중 여성들의 고통을 조롱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평을 시작으로 베라 브리튼은 1920년대에 들어 붐이 일어난 1차 대전을 소재로 한 많은 글들이 남성 작가에 의해서만 쓰여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그들의 글이 여성을 아예 다루지 않거나 수동적이고 슬픔에 빠진 존재로만 그려내면서 조소하고 경멸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여성들도 그들의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가?


1933년 7월에 출간된 베라 브리튼의 [청춘의 증언]은 페미니즘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행간을 읽을 필요도 없다.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호명하는 작가가 명백하게 여성의 목소리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써낸 글이기 때문이다. 1차 대전은 20세기의 최초의 분기점이었고, 1차 대전 이후 어떤 영국인의 삶도 더 이상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 수 없었다. 여성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확신을 바탕으로 30대의 작가 베라 브리튼은 픽션으로 위장하려고 수차례 시도했지만 한 번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이번에는 자서전의 형식으로 써내기로 결심한다.


1893년부터 1926년까지의 삶의 시기를 다루고 있는 [청춘의 증언]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구성이다. 베라는 <청춘의 증언>을 크게 후기 빅토리안 시대-에드워드 시대에 태어나 지방 소도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보낸 성장기- 1차 대전 중 자원봉사 간호사로 일했던 시기- 전후 런던에서 독립적인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성인기로 나누고 있는데, 여성으로서 자신이 직접 겪은 전쟁의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되, 전쟁의 상흔으로만 정의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구성이다. 사실 내가 번역판도 없는 데다가 다소 구식 영국 영어로 쓰여져 있어 읽기도 녹록치 않았던 <청춘의 증언>에 빠져서 끝까지 읽게 된 것도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 이미 소도시 중산층 딸들에게 요구되던 삶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자 했던 베라의 열정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청춘의 증언]이 1차 대전을 다룬 글로 유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을 읽은 전세계의 많은 여성 독자들이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우리는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고.


자수성가한 중하류층 계급 출신의 부유한 사업가의 첫째 딸로 태어난 베라 브리튼의 성장기는 경제적으로는 편안했으나 지적으로는 빈곤했다. 지방의 부유한 여자아이들을 위한 예비 학교에서 제한적인 교육을 받은 베라는 친척이 운영하는 여학교로 옮겨가 훌륭한 여교사들 덕분에 페미니즘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며 학업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지만 좀 더 자유롭고 지적인 세계로 떠날 수 있기를 갈망하게 된다.(베라가 당시 입어야 했던 교복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읽는 것 만으로도 온 몸에 땀띠가 난다). 나는 베라 브리튼이 이 과정을 전쟁 전의 어린 시절 정도로 치부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시도와 좌절을 세세하게 기록한 것에 큰 고마움을 느끼는데 역사적 관점에서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도 베라의 회고는 매우 흥미로운 자료일 수 밖에 없다. 학업에 큰 뜻이 없었고 음악을 하길 원했던 남동생은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도록 전적으로 지원하면서도 지적으로 훨씬 뛰어난 딸에게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따를 것을 강요하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 좀 더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하는 예비학교에 가지 못 했던 탓에 입학 시험을 준비하며 끊임없이 좌절했던 기억(수학과 라틴어는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지방의 소학교에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대학 입학 시험에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등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을 읽고 있으면 그녀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백년도 넘는 시간 차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 시기에 베라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은 그녀보다 두 살이 어렸던 남동생 에드워드 브리튼으로, [청춘의 증언]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베라는 남동생의 존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누나가 들려주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던 차분한 아이 시절부터 부드럽고 쾌활한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내면에 단단한 중심을 가지게 된 다소 거리감이 있는 청년이 될 때까지 에드워드는 베라의 삶에 자유롭게 드나들며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동생이 했던 말, 농담, 성격과 외모 등을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베라는 마치 독자에게 부탁을 하는 것만 같다. 그가 자신의 삶에 늘 존재하고 있었음을 잊지 말아 달라는 듯이.


에드워드는 어핑햄 예비학교에 다녔고 베라는 벅스톤 집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를 보면 어릴적부터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는 친밀한 사이었음이 느껴진다. 늘 음악에 뜻이 있었고 바이올린 연주 솜씨가 뛰어났으며 학업에는 큰 뜻이 없었던 에드워드는 누나의 지적 능력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남을 인정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다. 고집 세고 열정적인 성격을 가진 탓에 늘 가족들과 강하게 충돌했던 자신과는 달리 (성격 탓이라기보다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과 베라가 원하는 것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겠지만) 부드럽고 우회적인 접근방식으로 가족들을 달랠 줄 알았다는 베라의 회상처럼 이 시기의 에드워드가 집으로 보낸 편지들은 17살 소년이 누나에게 보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깊은 공감과 차분한 유머 감각을 보여준다.

누구나 청혼을 부드럽게 거절하는 방법을 연습할 필요가 있으니까 차라리 잘 된 일인 것 같아. 누나는 앞으로도 제대로 된 남자를 찾을 때까지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게 되겠지. 찾을 수나 있다면 말이야. 남자들은 결혼 문제에 있어서 늘 자기 생각들만 하니까 말이야. 남자들은 언제나 "이 여자는 나에게 잘 맞겠군." 이런 생각만 할 뿐이지. "내가 이 여자에게 잘 맞는 짝일까?" 라는 질문은 하지도 않으면서.


-고향 벅스톤에서 받은 청혼을 베라가 거절했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에 에드워드가 보낸 답장 중에서  (1913.9.28. 어핑햄 학교에서)


하지만 누나가 가족의 명예를 세워준 셈이고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해. 옥스퍼드에 입학하게 되면 아주 유리할 거야. 장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한 단계 높은 자기들만의 그룹을 형성하게 되니까. 뭔가를 성취했다는 만족감도 크겠지. 나도 받았다면 좋았을 텐데.

- 옥스퍼드의 서머빌 칼리지에서 부분 장학금을 받게 된 누나를 축하하면서. 에드워드 역시 옥스퍼드의 뉴칼리지에 가게 되었지만 학업에 큰 뜻이 없었던 그는 어떤 종류의 장학금도 받지 못했다. (1914. 3. 25. 어핑햄 학교에서)

1914년은 베라에게 결실과 새로운 시작의 해였다. 옥스퍼드의 서머빌 칼리지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활절 휴가에 에드워드가 집으로 데리고 온 어핑햄 동기인 롤랜드 레이튼과 베라의 인연도 이 해에 시작된다. 유명한 작가의 아들로서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는 것을 평생 봐 왔기에 자신도 페미니스트라고 베라에게 스스로를 소개했을 만큼 진보적인 환경에서 자란 롤랜드 레이튼은 어핑햄 예비학교에서 기존의 기록을 모두 갈아 치우면서 졸업할 예정이었던 장래가 촉망 되는 소년이었다. 그와 에드워드 그리고 빅터는 롤랜드의 어머니가 삼총사라고 부를 만큼 가까운 사이었는데, 그 중 리더격이었던 롤랜드는 처음에 베라에게 오만하고 거리감이 있는 성격으로 보였지만 곧 둘은 다가올 베라의 옥스퍼드 시험과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호감을 느낀다. 베라와 롤랜드는 7월 어핑햄 예비학교의 졸업식에서 다시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9월에 신입생으로서 옥스퍼드에서 함께 만날 날을 약속할 만큼 가까워 진다. 오랜 기다림과 좌절 끝에 베라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8월 4일 독일이 프랑스에 대한 선제 공격으로서 벨기에를 침략하며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어핑햄에서 이미 학사 장교 훈련을 받은 상태였던 롤랜드와 빅터 에드워드는 모두 옥스퍼드를 포기하고 소위로 군에 입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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